한·중 FTA '상생기금 1조원 오보사태' 유감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FTA 1조 기금, 재계 팔 비틀어 동의받았다” “조폭국가…법에도 없는 자릿세를 국가가 뜯는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동의 조건인 농어민 지원을 위한 상생기금 1조원 조성 방안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비판이 거세다. 상생기금이 법에 근거하지 않는 사실상의 준조세라고 공격한다. 위헌성 제기는 물론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색깔공세까지 편다.


또 여야정이 경제계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국회 비준동의가 임박한 시점에 일방통보해 수용을 강요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 보도가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돼서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관련 보도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재벌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의 이승철 부회장은 “국회 비준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 새누리당과 산업부 등 정부여당에서 1조 기금안에 대한 재계 입장을 물어왔고, 하루 뒤에 내가 직접 동의 뜻을 전했다”고 언론에 털어놨다. 전경련은 처음에는 1조 기금안에 난색을 보였으나, 정부여당에서 대안이 뭐냐고 물어와 주말 내내 검토를 했지만, 야당이 요구하는 무역이득공유제(한·중 FTA로 대기업이 얻는 이득의 일부를 농어민 피해구제에 사용)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어, 결국 동의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수언론들이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반강제적으로 동의를 받았다”거나 “기금 조성 필요성이나, 방법에 대한 의견을 구하지 않고, 비준이 임박한 시점에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했다”고 쓴 기사들은 모두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승철 부회장 자신도 “왜 그런 (사실과 다른) 보도가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는 해당 언론사들로부터 취재전화를 받았냐는 질문에 “받은 적 없다. 밑의 실무진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경련 실무진들은 이에 대해 “언론에서 확인요청을 받았지만, 경위를 잘 몰라 제대로 답을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오보들의 소스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의문은 이어진다. 전경련이 언론들의 오보사태에 즉각 정확한 경위 설명을 했다면 혼란은 조기에 수습됐을 것이다. 하지만 전경련은 그런 노력을 안했다. 오히려 보수언론에는 전경련 관계자가 “여야정이 1조원이라는 목표치까지 정한 것을 자발적 기금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비판한 내용이 실렸다. 또 전경련 산하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 오정근 초빙연구원은 여러 언론 인터뷰와 토론회에서 “말도 안되는 정치권의 ‘생떼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다.


결국 상생기금 오보사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보도를 쏟아낸 언론과,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고 뒤에서 딴소리를 한 전경련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부인하기 힘들게 됐다. 개봉 19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내부자들’이 파헤친 ‘정-경-언 유착’이 새삼 떠오른다.


상생기금 1조원은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경제계가 한·중 FTA 연내 비준동의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농어민 피해를 우려하는 야당을 설득해 타협을 이룬 ‘차선책’이었던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노력의 결과를 무력화시키고, 우리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그것이 언론으로서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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