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시달린 세 모녀 집세·공과금 남기고 동반자살
제283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 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07 15: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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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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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처음 사건팀에 들어와 강남·광진라인 1진으로 배치받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입사 후 만 2년이 겨우 지났던 시점이었다.
사건팀에서 여러 라인의 2진을 거치며 훈련을 받을 새도 없이 덜컥 ‘실전 정글’에 내던져졌다. 듣던 대로 보던 대로 강남은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매일 시험을 치르는 학생의 심정이었고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신출내기 사건기자의 눈에 송파는 강남이나 서초보다 비교적 별일 없이 편안해 보였다. 중산층이 주로 사는 주거 밀집지역에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다. 송파경찰서 마와리는 일 이야기보다 신변잡기 수다로 채워졌다. 자연히 마와리는 돌았지만 취재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날들이 계속됐다.
2월27일 아침 보고를 마치고 그날 물 먹은 기사에 대해 캡(사건팀장)에게 깨지고 난 직후였다. 한 취재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기자, 어젯밤 변사가 들어왔는데 엄마랑 딸 둘이랑 한꺼번에 자살했대.” 직감적으로 기삿거리였다.
오전부터 소방, 경찰, 현장 등을 확인해서 기사를 내보냈다. 송파구는 겉보기에 평온한 중산층 동네다. 이런 곳에서 세 모녀가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세상을 등진 사건은 종종 보도가 됐지만 장성한 두 딸과 60대 노모가 한꺼번에 죽기를 결심했을 때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슴 아픈 한 줄 메모였다. 8년여 세들어 사는 동안 공과금과 집세를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던 세 모녀였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이들도 벼랑 끝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기사를 내보내자마자 거의 모든 언론매체와 누리꾼 독자들로부터 반응이 왔다. ‘세 모녀 같은 이웃이 있는지 몰랐던 무관심이 부끄럽다’는 식의 자성의 목소리, 세 모녀를 내버려둔 정부에 대한 비판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때조차 이 사건이 한 달 넘도록 사회를 뒤흔들고 복지제도를 재손질 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 전체의 부끄러운 민 낯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사건기자의 특권이었다. 세 모녀 사건은 내게 분명한 전환점이 됐다.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갈 수도 있는 이웃의 삶을 조명해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것, 고통스럽고 일그러진 모습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 이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기사가 세상을 바꾸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했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끝없이 전하고 싶다. 이 순간에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약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고 잘못된 제도를 감시하는 언론의 취재는 계속돼야 한다.
어리바리한 후배를 끝없이 채찍질해주신 캡과 바이스 이하 여러 선배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편히 쉴 세 모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