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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용 제40대 기협회장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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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사주 전위대 되어서는 곤란
보수 가장한 수구세력 발호 경계해야
지역사 실정 감안, 단·중기 연수 확대
남북언론 신뢰쌓기 반석 마련할 터
제40대 한국기자협회장에 정일용 연합뉴스 민족뉴스부장이 당선됐다. 역대 최다 후보가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기자협회장에 선출된 정 당선자는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이 회원 사이의 이해충돌”이라며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많은 역점을 두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정 당선자는 기자협회 규약 제 3조(목적)를 예로 들며 “‘기자의 날’ 제정과 기자의 혼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 분을 선정, 우리의 사표로 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최근 들어 신문과 방송, 신문과 인터넷, 신문과 신문 등 언론계의 반목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언론계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기자협회장으로 당선된 정 당선자를 만나 임기동안 펼쳐나가야 할 목표와 지향점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본보 김진수 편집국장
당선을 축하드린다. 우선 소감을 말해 달라.
뒤늦게 출마를 결심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었다. 너무 늦게 출발했는데 결승점에는 빨리 들어 온 것 같다. 할 일이 많아 어깨가 무겁다.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여러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출마의 결단을 촉구하는 선·후배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께도 마음의 빚을 갚은 듯해 홀가분하다.
함께 경쟁에 나섰다가 낙선한 다른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후보한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결심이 늦어져서 괜한 혼란을 불러 일으킨 것 같고 몇 년씩 준비해 오신 분들께는 특히 죄송하다. 모든 후보들이 한국기자협회가 잘 되자고 출마한 만큼 앞으로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다른 후보들이 제시한 좋은 공약을 수렴하도록 하겠다. 그런 대로 별다른 잡음 없이 선거를 치른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역대 선거 중 가장 많은 후보가 출마했던 선거였다. 선거운동 기간 중 회원들에게 자신을 지지해달라며 강조하거나 호소한 내용은 무엇이었나?
우선 기자의 자긍심, 자존심을 찾자고 호소했다. 한 인터넷 매체에서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지만 모두가 다 기자다는 말은 우리 직업적인 기자들한테는 매우 도전적이다. 기자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정체성을 묻는 심각한 질문이다.
기자의 혼(魂)을 강조했다. 기자의 혼은 기자 정신보다도 더 강렬한 용어이다. 기자협회는 1980년 5월 협회 차원에서 제작 거부 운동을 전개한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기자협회 규약 제 3조(목적)에서 명시하고 있는 대로 기협은 조국의 민주발전을 위해 기여해야 하고 그것은 우리 회원들이 뜨거운 혼을 갖고 기자의 본분을 다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기협에서 제작거부운동을 시작한 날을 기자의 날로 제정하고 기자의 혼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 분을 선정, 우리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우리 직업기자들은 실력을 쌓음으로써 이른바 시민기자와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다른 언론 기구 및 단체와 협력해서 연수 기회를 대폭 확대하고자 한다. 실력 없는 기자는 자연히 퇴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제 연수, 공부하기, 내공쌓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기회가 없어서 연수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 사라지도록 하겠다.
기자의 혼에다 실력을 겸비한다면 우리는 무서울 것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기자협회 회장으로서 역점을 둘 사업은 무엇인가? 가급적 사업별로,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기자협회는 그 동안 임의단체로서 회원 친목단체, 권익옹호단체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규약 3조에는 기협이 해야 할 활동이 명확히 규정돼 있다.
그것은 조국의 민주발전, 언론자유수호, 언론인 자질향상, 조국의 평화통일, 국제교류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물론 친목도모 권익옹호도 포함돼 있다. 다만 지금까지 기협 활동이 어느 한 쪽에 편중되지 않았느냐는 자성을 해 보게 된다. 앞으로 규약 3조를 푯대로 삼아 나아갈 작정이다. 조국의 민주발전은 아직도 미완이며 과정에 있다고 본다. 유신 독재, 친일 반민족 행태가 버젓이 활개를 치는 현실을 두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기자의 혼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작태들이다. 어떻게든 이런 말도 되지 않는 현실을 우리의 힘으로 고쳐야 한다.
언론자유 수호 또한 여전히 과제이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현실을 두고 언론 자유가 만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국보법은 우리 기자들에게 치욕이며 수치이다. 국보법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악법이라는 사실을 떠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자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우리는 이 법이 21세기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국보법은 빠른 시일 안에 없어져야 할 법이고 기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정보공개법 또한 개선해야 한다. 국정감사 때마다 느끼지만 왜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요청하면 내놓고 기자들, 또는 시민들이 자료 공개를 요청하면 그렇게 안 되는지 의문이다. 우리도 정보공개를 요청해서 그것을 기초 자료로 삼아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기자들, 특히 우리 회원들은 자중자애(自重自愛), 스스로 처신을 잘 해야 한다. 본인들은 잘못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회원으로서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
언론인 자질향상에 대해서는 기자의 혼을 불러 오는 것과 함께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실력쌓기에 주력하겠다.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것은 언론의, 기자의 막중한 역사적 소명이다. 남북 언론 간의 이해를 통한 신뢰쌓기는 그대로 평화통일에 직결된다. 이 분야는 그 동안 수 년 동안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임기 안에 확고한 반석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
국제교류는 제 3세계를 개척해 보려 한다. 우리의 안목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자협회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많다. 앞으로 기자협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구체적인 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큰 원칙 또는 골격을 제시해 달라.
기협 운영을 놓고 말들이 많다. 부회장을 맡아 온 본인으로서도 책임을 통감한다.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라는 요구들이 많은 만큼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협회의 사단법인화를 구상하고 있다. 사단법인화는 이전에도 몇 번 거론된 적이 있는데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따라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 이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그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방사 회원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특별한 정책이 있다면 말해 달라.
이번에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중앙이라는 말은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손바닥만한 땅덩어리에서 중앙, 지방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지역 회원들을 위해 특별히 배려해 달라는 주문이 많았지만 중앙, 지방 개념이 아예 없는 사람한테 특별대우라는 것도 자리잡기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다만 이런 약속은 했다. 연수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사 실정을 감안해 단기·중기 연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겠다고 했다. 동료가 빠져 나가면 업무가 빡빡해지는 것이 현실 아닌가. 또한 해외 연수도 외국어 실력 위주가 아니라 기자로서 본분을 지키는지, 기협 활동 예를 들어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는지 등을 주 평가 요소로 삼도록 하겠다. 추천권도 기협 지회장, 시도협회장에게 일차적으로 부여할 것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누구를 위한 특별한 정책이 아니다. 회원은 모두 회원으로서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대우할 것이다. 특별대우를 요구하기 전에 동등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지금 한국의 기자사회는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DMB와 같은 뉴미디어의 등장, 방통융합과 같은 새로운 키워드는 기자들에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매체를 둘러싼 외부의 환경도 기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나? 혹은 어떻게 지혜를 모아나가야 하나?
언론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기자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언론은 인간의 삶이 있는 한 존재해야 하고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위기가 아니라 언론사의 위기이며 기자의 위기가 아니라 언론사주의 위기이다.
기자들이 경영진의 입장에 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애사심까지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기자는 기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회사를 살리는 길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언론 종사자가 수 만명에 이르는 데도 왜 이렇듯 문제가 많은지 되돌아 봐야 한다. 모든 언론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매체 융합이 되고 있다지만 그래도 각 매체는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있다. 서로가 특성을 살려 분업을 하는 가운데 저절로 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계 전체로서는 대단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비슷비슷하다는 데 언론계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고유의 특색을 살려 나가는 것, 이것이 어쩌면 우리 기자들의 상생의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론계 갈등의 골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방송과 신문, 신문과 신문, 신문과 인터넷 등 각 매체가 갖고 있는 이념적 스탠스에 따라 서로 대립하고 있는 형국인데 이러한 갈등구조는 내년 지자체 선거,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런 언론계의 갈등 구조 속에서 기자들은 소모품 또는 정쟁 대리인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기자는 한 사회의 진로를 헤쳐 가는 데 맨 앞장에 서 있다. 곤충의 더듬이에 비유할 수 있다. 역사를 염두에 두고 사관의 심정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더듬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누구의 선봉대, 특히 그것이 사주의 이익을 위한 전위대가 돼서는 곤란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보수 계층은 말이 보수지 실제로는 수구일 뿐이다. 변화를 싫어하고 옛 것 그대로를 지켜 나가려 몸부림치는 수구적 인식은 기자의 본성과는 도대체가 맞지 않는 것이다. 보수를 가장한 수구세력의 발호를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동족을 증오하는 보수주의가 대체 언제 어느 때 존재 했는지 의문이다.
끝으로 회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회장을 맡게 되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회원 사이의 이해충돌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로가 권익옹호를 외칠 때 분열은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자로서 가져야 할 공명정대한 시각, 역사의식을 잊지 않는다면 합일점을 찾게 되리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합리적 설득, 충분한 대화로써 해결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