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뒤로 붙는 수식어를 한 번쯤 떼고 싶었다. ‘JTBC 기자’가 아닌 ‘신혜원’의 민낯이 궁금했다. 9일 종영한 웨이브 오리지널 ‘더 커뮤니티 2: 보이지 않는 손’에 신혜원 JTBC 기자가 출연을 결심한 이유다.
더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지닌 참가자들이 생존과 우승을 위해 거래하고 경쟁하는 사회 실험 방식의 심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두뇌 싸움이나 신체 경쟁을 내세운 다른 서바이벌 예능과 달리 상식을 기반으로 한 생산 활동과 토론 형식의 다수편승게임 등이 진행되는데 신 기자는 이 프로그램에 ‘레아’라는 예명으로 출연해 큰 활약을 펼쳤다. 풍부한 상식, 또 수려한 언변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며 다른 참가자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를 따르고 좋아하는 팬까지 생겼다.
다만 8박9일의 촬영 기간 동안 휴대전화도, 시계도 없는 촬영장에서 그를 살린 건 결국 기자로 살아온 13년의 내공이었다. 신 기자는 “처음 출연할 때만 해도 ‘JTBC 기자’란 타이틀을 떼고 제 민낯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그런데 저도 제 인생의 3분의 1을 기자로 살아선지 완벽한 분리가 안 되더라. 이 직업을 원래도 좋아했지만 촬영이 끝난 후엔 기자로서의 저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더 잘해야겠다’, ‘좋은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현직 기자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심지어 더 커뮤니티는 MBC 외부 제작 스튜디오 ‘모스트267’이 만든 작품이다. 섭외는 제작진의 메일에서 시작됐는데, 사전 미팅에선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면접을 빙자한 인간 탐구”가 진행됐다. 신 기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했다. ‘나갈 것인가. 그리고 나갈 수 있는가.’ 프로그램의 첫 번째 시즌은 정치와 젠더, 계급 등 사상 검증이 기반이었다. 기자 생활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한 그이기에 가치관을 드러내면 자칫 괜한 진영 논리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쉽게 오는 기회는 아닐 것 같았고, 또 기자들이 말 한마디로 쉽게 매도되는 시대에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즌 1 출연자인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에게 조언도 구했는데 ‘경계할 건 정파성이지, 기자 개인에게 철학과 가치관이 없는 게 오히려 별로인 것 아니냐’ 얘기해주시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처음엔 조금 우려했지만 다행히 대승적 결단을 내려줘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은 5월 말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임하기 전 그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 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를 둔 것은 사실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었다. 설득과 소통이 중요한 프로그램 특성상 과정이 망가진 우승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가 독백으로라도 자신의 행동을 상세히 설명한 이유다. 다만 승리는 결코 쉽지 않았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다른 그룹에 전쟁을 선포한 날, 그는 일종의 자기 혐오감을 느꼈다. “사실 이기기 위해 전쟁을 선포한 거니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너무 과몰입해서 그런지 게임이 아니라 내 손에 진짜 피를 묻히는 기분이었어요. 목표를 위해 수단이 정당화되는 걸 평소에 되게 싫어하는데, 그걸 하고 있는 저를 보며 자기 혐오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너무 유리해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질받을 수 있는 ‘팩트 땅따먹기’ 게임에선 상대 참가자를 큰 점수 차로 따돌리며 승리했고, 물증 하나 없는 상황에서 군수업자의 정체를 가장 먼저 눈치채기도 했다. 한편으론 손익을 잘게 따지기보다 먼저 내주는 방식을 택하며 먼 미래의 승리를 도모했다. 게임의 마지막 순간, 그에게 배신할 기회가 생겼을 때도 신 기자는 동료들과 상금을 나누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가 내민 보석 지급 전표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영원한 협력도 없지만, 영원한 반목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평화를 꿈꾸며…’
“현실에 너무 이입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전쟁이라는 폭력, 대치 국면을 끊는 게 사실 인류의 과제잖아요. 그 방식이 원자폭탄 같은 압도적인 힘도 있겠지만 그 연결고리를 끊는 ‘실천’ 또한 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타인을 향한 공격보다 신뢰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게 평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눈물을 삼키며 문구를 썼던 것 같아요.”
일부 시청자들은 그의 행동을 두고 ‘위선이다’, ‘착한 척하지 마라’ 욕하기도 했다. 신 기자는 “저를 욕하려면 욕해도 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선도 악도 없고, 척을 할 수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좋은 플레이였는지는 모르겠어요. 말하자면 저의 한계를 확인한 순간이었고, 조금 멋있는 척을 하자면 그래도 마지막까지 원칙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몇 번 원칙을 어겼다고 해서 한 번이라도 지키려는 시도가 전 위선이라 단정하고 싶진 않아요. 사는 게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으니 신념이든 원칙이든 훼손되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래도 끊임없이 성찰해보려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방송 이후 달라진 건 부쩍 10~20대 팬이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누나 멋있어요’, ‘언니 같은 어른이 될래요’ 같은 메시지를 받는 한편 ‘기자 멋있다’, ‘기자 되고 싶다’는 반응도 접하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의 소신을 지키려 고군분투한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해 준 것 같아요. 저의 딜레마를 통해 시청자들이 대리 성찰한 것 아닌가 싶어요.” 기자가 매도되는 시대, 인간적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그렇게 우승보다 값진 결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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