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광주매일 기자 박헌주가 실종자 부인 B의 전화를 받은 것은 마감에 쫓기고 있을 때였다. 기사 마감이 임박한 탓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한쪽 어깨로 전화를 받으며 듣는 둥 마는 둥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손가락 끝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용의자 부인이 경찰이 협박해 피 묻은 옷을 빨았다고 말했어요. 얼른 오세요!”
“네? 뭐라고요?” 박헌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B는 며칠 전에 찾아와 용의자 부인을 만났다며 그녀가 경찰에 허위진술을 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는데, 연락이 온 것이다. 박헌주는 용의자 부인이 있는 곳의 위치를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사건캡과 사회부장에게 보고하고 맞은편에 앉은 사건기자 막내 임재식에게 녹음기를 챙겨 따라오라고 했다. 저녁 바람이 선선한 1997년 5월 하순이었다.
광주 외곽에서 만난 용의자 부인은 겁에 질려 있었다. 경찰서 이야기만 나오면 몸을 움츠리며 벌벌 떨었다. 경찰에 불려 가서 한 진술로 그녀는 젖먹이와 네 살배기 딸을 떼어 놓고 집을 나와야 했다.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는 그녀는 울기만 했다. 처음엔 아예 대화가 오가지 못했다. B가 ‘저번에 경찰이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고 했는데, 그거 맞죠?’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가까스로 입을 뗀 용의자 부인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다. 5월12일 저녁 농성파출소 숙직실에서 구타와 협박이 있었다. 형사 2명은 그녀의 팔을 뒤로 꺾어놓고 뺨을 서너 차례 때리며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남편의 범행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그녀는 물론 젖먹이까지 사체유기 공범으로 교도소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경찰은 남편이 범행사실 일체를 자백했다며 피가 묻은 옷과 신발을 빨았는지 계속 물었고, 밤샘 조사에 시달린 끝에 경찰 의도대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재식아, 무조건 보도해야지”
그녀의 충격적인 증언에 시내로 돌아오는 프라이드 왜건 내부는 침묵이 흘렀다. “선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운전대를 잡은 임재식은 박헌주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둠이 깔린 도로를 바라보던 박헌주는 고개를 돌려 임재식을 보고 말했다. “재식아, 나는 처음부터 택시 기사가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들었거든. 무조건 보도해야지.” 사건캡 조옥현은 전날 밤 박헌주가 비장하게 말한 내용을 사회부장 김선출에게 보고하고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물었다. 다음 날 아침, 김선출은 사회부 회의를 소집했고, 용의자 부인의 증언을 토대로 확인 취재를 더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임재식은 용의자 부인을 추가로 만나고, 박헌주는 경찰 쪽을 파고들기로 했다. 그리고 광주매일은 6월7일 사회면 사이드 기사로 ‘남편 범행 자백 강요, 부인 구타·협박/ 경찰 가혹수사 파문’을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는 결코 없었고,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자 사실을 자백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30대 중장비 영업사원 P가 실종된 건 1997년 4월26일 새벽 4시쯤이었다. P는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서 회사 동료 2명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소식이 끊겼다. 함께 술을 마신 동료들은 그를 흰색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고 했다. 박헌주는 이 사건을 회사 직원을 통해 들었다. 총무부 직원은 ‘남편이 실종돼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는데 이야기를 좀 들어주라’며 실종자 부인 B를 소개했다. 작은 체구에 파마머리를 한 B는 남편을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B는 실종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이 수사를 미루고 있다고 했다. 박헌주가 취재를 시작하자 그제야 광주 북부경찰서는 실종 사건을 광주 서부경찰서로 넘겼다. 4월30일 광주매일에 30대 회사원이 사흘째 행방불명됐다는 단신 기사가 나왔다. 석간 신문인 광주일보와 전남일보도 그날 오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용의자, 시신유기 장소 9번 번복
사건 발생 6일 만에 광주 서부경찰서가 확보한 용의자는 P를 태웠던 택시 기사 K였다. 경찰과 실종자 가족은 보상금 500만원을 걸고 택시 기사를 찾는다는 플래카드를 서구 광천동 현대자동차 앞길에 내걸었다. K는 이 플래카드를 보고 자신이 사건 당일 P를 북구 운암동까지 태웠다고 신고했다. 조사 과정에서 K가 사기 전과가 있었고 동생의 신분증을 위조해 사용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그리고 며칠 뒤 택시 기사 K는 30대 영업사원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됐다. 경찰은 K에게 술에 취한 P와 택시요금 시비를 벌이다 홧김에 때려 숨지게 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5월 둘째 주 수요일, 박헌주는 북구 동림동 광신대교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해가 영산강 상류를 연한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다리 아래에선 의경들과 형사들이 탐침봉을 들고 풀밭을 뒤지고 있었다. K가 유기했다는 그곳에선 P의 시신이 나오지 않았다. K는 시신 유기 장소를 동림동 산동교 아래, 화순 이서, 광주호 등으로 9차례 번복했다. 경찰은 그때마다 형사대를 파견해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자백 외에는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경찰은 K를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별건 구속했다. ‘피 묻은 옷을 빨았으며 남편이 두 차례에 걸쳐 P를 살해했다고 말했다’는 용의자 부인의 진술은 그때 나왔다.
박헌주는 5월 중순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광주전남기자협회 봄철 축구대회에 나갔다가 무릎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남부경찰서를 출입하던 임재식은 서부경찰서 사건을 거들어야 했다. 그가 서부서 형사과에 가면 형사들이 “어이, 그거 아니여. K가 범인 맞아야!”라고 하거나 다른 기자들을 모아 놓고 “광주매일 저것들 애먼 짓 하고 있다”는 식으로 소곤거렸다. 그는 거의 매일 병원에 있는 박헌주를 보러 갔다. 당시 사건기자들은 회사에서 마감하고 저녁을 먹은 뒤 경찰서에서 늦은 밤까지 대기했다. 밤 10시쯤 관내 사건·사고 현황을 점검해 사건캡에게 보고하고 주요 병원 응급실로 가서 체크하고 보고하고 퇴근하는 일상이었다. 박헌주가 입원한 보훈병원은 임재식이 맡고 있는 남부경찰서 인근에 있었다. 그는 다리에 깁스를 댄 박헌주 옆에서 그날 있었던 일을 떠들어댔다. 박헌주는 병원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1994년 입사하고 3년째 서부경찰서만 출입했던 터라 전화 취재가 가능했다. 임재식이 실종자 부인을 만나거나 경찰 정보를 물어오면 박헌주는 자신의 취재 내용을 더해 기사에 녹였다. ‘30대 회사원 살해범은 정말 택시 기사일까’라는 6월12일자 기사도 병원에서 썼다. 그는 기사에서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하나하나 따졌다. K가 살인범이라면 왜 도주하지 않고 제 발로 경찰에 출두했는지, 실종자를 태우고 가는 과정을 분초까지 기억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지 등을 물으며 실종자 가족들이 전면 재수사를 경찰에 탄원했다고 보도했다.
◇누군가 계속 사용한 실종자 휴대전화
광주매일 보도에도 경찰은 “범인은 K”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실종자 부인 B는 경찰 수사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안고 백방으로 다녔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사건에 매달렸다.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K를 면회하고 K의 부모를 찾아가고 집을 나온 K의 부인도 만났다. 그녀의 끈질긴 설득에 택시 기사 부인은 경찰이 허위자백을 하라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남편 휴대전화가 용의자 K가 구속된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그녀는 경찰에 휴대전화 사용 내역 수사를 탄원했지만, 경찰은 내역조차 조회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통신사에 요청해 받았더니 용의자 구속 이후 10일 동안 휴대전화가 27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전까지 경찰은 용의자가 P의 휴대전화를 시신과 함께 유기했거나 사용하다가 구속된 뒤 중단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실종자 부인이 자체 조사를 벌여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셈이지만 경찰은 수사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수사 초기에 휴대전화 사용 내역을 제대로 추적했다면 수사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K가 진범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었다. <하편에 계속>
※이 기사는 1997년 당시 광주매일 기자로 일했던 박헌주씨(전남광주 중앙한의원 원장)와 임재식씨(국토교통부 순천국토관리사무소 운영지원과장) 인터뷰와 언론 보도를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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