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패싱이라는 안온함

[언론 다시보기] 이상원 뉴스민 편집국장

국민의힘 대구시당과 경북도당은 5일 이재명 정부가 대구·경북 지역을 차별하고 있다며 규탄대회를 열고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에서 경북대가 제외된 점 등을 비판했다. /국민의힘 대구시당 제공

대구·경북이 들끓고 있다. 대구·경북이 정부로부터 차별당하고 있다는 분노다. 이른바 ‘TK패싱’이다. 6월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됐을 때 ‘욱’ 하던 분노는 경북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첫 패키지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왁’ 하고 터졌다. 그러잖아도 되는 일이 없어 울고 싶은데 뺨 한번 시원하게 맞았다는 듯이 너도나도 ‘TK패싱’을 입에 올린다.


그 선두에는 지역 정치권과 언론이 있다. 지역구 25석을 모두 석권한 정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중진 국회의원이 나서 “이재명 정권의 대구·경북 지역 차별이 노골적이고 반복적”이라며 “지역 차별을 넘어서 의도적인 지역 탄압에 가깝다. 한두 번이 아니다. 민주당이 대구·경북에서 표가 많이 안 나온다고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것”이라고 차별을 말하고, 언론은 받아썼다.


흥미로운 건 그날 현장의 분위기다. 규탄대회가 열린 당사 건물 앞에는 화환이 늘어섰고, 규탄대회장으로 준비된 대강당 옆 작은 방에선 잔치 음식이 준비됐다. 새로 선출된 경북도당 위원장 취임식이 규탄대회 다음 일정으로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두 개 일정이 같은 장소에서 겹친 탓이겠지만, 그 덕에 당장이라도 대구·경북이 망할 것처럼 날 선 비난을 입으로 뱉어도 현장 분위기가 그리 험악하진 않았다.


그러고 보면 ‘TK패싱’은 참 편리한 말이다. 손쉽게 지역이 중요 사업에서 탈락한 이유를 설명하고, 지역민의 분노까지 모아내면서, 그 분노가 향해야 할 대상까지 정해준다. 또 다른 분노의 대상,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지역 정치권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다. 자신들이 그동안 무얼 했는지는 따지지 않고 곧장 ‘대구·경북을 차별하는 무도한 정부’로 화살을 돌릴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지역 주요 대학의 미래뿐 아니라 지역 청년들의 미래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이니 상실감과 우려를 가볍게 볼 순 없다. 정부에 선정의 공정성과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차별을 의심하는 것과 차별을 모든 원인으로 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자는 검증의 출발점이지만 후자는 검증을 끝내버린다. 정부가 TK를 차별해 제외했다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으면, 어떤 준비가 부족했는지, 누구의 설득이 실패했는지, 다음 기회를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지역 주도 성장, 지역 균형발전이다. 균형발전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정책 대상을 선정할 때 정량적 평가보다 정성적 평가에 무게 중심을 둔다는 게 내포되어 있다. 정량적으로 발생하는 현재의 불균형을 정성적 요소를 가미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게 정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량적으로 어느 한쪽이 압도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엇을 더 중요하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결과를 좌우한다. 대구·경북이 그런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익을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책적 판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럴 때야말로 힘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역의 정치력이다. 지역 정치권이 사업 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 지역의 필요와 가능성을 설득하고 관철해 낼 책임과 임무가 생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읽고 사업이 결정되기 전에 누구를 만나 무엇을 설득했는가?


정치의 역할에는 불리한 조건을 바꾸는 일도 포함된다. 정부와 정치적 거리가 멀어졌다면 협상과 설득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차별의 증거가 있다면 이를 제시해 바로잡고, 사업계획이 부족하면 보완하고, 정책의 설계 자체가 불합리하면 다른 지역과 힘을 모아 고쳐야 한다. ‘우리가 차별받고 있다’는 선언 뒤에는 다음 행동이 있어야 한다. 설령 정치권이 피해 호소에 집중하더라도, 언론만큼은 이 점을 묻고 지적해야 한다.


행정 통합, 신공항 사업에 이어 메가프로젝트, 서울대 10개 만들기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허탈감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과 같은 정당이 중앙정부 권력까지 쥐고 있던 시절에도 행정 통합이나 신공항 사업은 진척되지 못했다. 대통령 권력을 배출하고도 진척시키지 못했고, 그 권력을 지켜내지도 못한 채, 빼앗긴 후에는 차별한다며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인은 지역민과 함께 분노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듯 보일 수 있다. 대표자로서 결과를 설명해야 할 자리에 서는 대신, 지역민과 나란히 피해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 ‘TK패싱’이 안온하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TK패싱을 외치는 목소리가 크다고 TK의 힘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협상력으로, 항의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 ‘왜 우리를 빼놓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동안 안온한 건 지역의 미래가 아니라 지역 정치인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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