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효성 일가 법적분쟁 기사' 삭제 이어 해명도 논란

[뉴스룸국장 지시로 삭제, 내부 파문]
데스크·기자 동의 안 받고 이뤄져
효성 임원, 삭제 전 한국일보 방문

국장 "균형감 상실한 기사라 삭제"
기자들 "이러면 기업 취재 어떻게 하나"
노조 "내부 절차 어기고 편집권 독단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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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일가의 법적 분쟁을 다룬 한국일보 기사가 뉴스룸국장 지시로 온라인 출고 약 6시간 만에 삭제된 사태를 두고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담당 데스크와 취재기자 동의가 배제된 절차, 기사 ‘몰고’ 판단의 적절성, 삭제 전 효성 측의 한국일보 방문 등을 두고 편집권 남용 비판이 거세다.

8월28일 오전 4시30분 온라인 출고된 한국일보 <[단독] ‘지분 압박’일까 ‘결별 통보’일까…효성 형제 녹취·편지 봤더니> 기사가 이날 오전 10시12분 삭제됐다. 강철원 뉴스룸국장은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에게 전화·카카오톡으로 삭제 방침을 통보한 뒤 직접 콘텐츠 유통 부서에 삭제를 지시했다. 앞서 이날 오전 효성 임원들이 한국일보를 방문해 국장·사장을 차례로 만났고, 취재기자의 입장을 듣기 전 몰고가 결정됐다. 해당 기사는 조현준 효성 회장에 대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강요미수 혐의 재판과 관련해 동생이자 피고인 조 전 부사장 측이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한 것이었다.


내부가 들끓던 상황에서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 산하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는 국장이 내부 절차를 어기고 편집권을 독단 남용했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4월 ‘현대차 정의선 회장 장남 음주운전 보도’ 삭제 사태 당시 현 국장단 주도로 만든 가이드라인은 ‘이해관계자의 수정·삭제 요청 시 국장이 데스크, 해당 기자와 상황을 공유’하게 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정상 절차를 거쳐 출고된 오보가 아닌 기사를 삭제하는 게 옳았는지, 효성 방문 후 이뤄진 삭제에 경영적 판단 개입은 없었는지도 지적했다.


강 국장은 5일 사내 게시글에서 해당 가이드라인엔 삭제시 기자 동의를 의무화한 조항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일 오후 2시에 피고인 조현문 재판이 예정돼 있고, 취재기자들이 기사 삭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데스크에게 삭제 방침 통보 후 조치했다”며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라고 했다. 민실위는 이를 “가이드 마련 취지와 목적에 배치되는 해명”이라 비판했다.


강 국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기사를 삭제한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법조기자를 오랫동안 해온 입장에서 보면, 특정 취재원에 경도된 기사, 반복적으로 피고인을 두둔하는 기사, 부당하게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기사, 균형감을 상실한 기사라는 게 뉴스룸국장이 내린 결론”이라며 “전날 기사 출고 자체를 막았어야 하는데,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 국장의 가장 큰 불찰”이라고 했다. 효성 측 방문 영향은 없었고 “삭제 과정에서 누구와도 상의한 바가 없다”고도 했다.


민실위는 이번 사태를 “한국일보의 취재와 편집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본다”며 삭제 절차 잘못 인정과 사과, 기사 복구, 삭제 관련 가이드 보완을 요구했다. 강 국장은 추가 설명을 듣기 위한 본보의 전화와 문자에 응답하지 않았다.


사내 게시판 댓글과 블라인드 등에선 설명에 납득 못한 일선 기자들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일보 A 평기자는 “취재기자 입장에서 맥이 빠진다. 출고된 기사가 설명 없이 삭제됐다. 출고 전 보강취재를 지시받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라며 “앞으로 기업 취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냐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해명 내용과 방식이 부적절했고, 리더십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연차 B 기자는 “국장의 해명과 그간 평판을 볼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고 (기사 삭제를) 독자적으로 판단했다는 설명도 의심할 건 아니라 봤지만 ‘과정의 관리’가 안 돼 일을 키웠다는 중론에도 동의한다”면서 “앞서 부장단에 ‘국장을 잘하려고 왔지 오래 하려고 온 게 아니다’란 입장을 공유했는데 감정적이고 무책임해 보였다. ‘후배들이 기사를 잘못 써서 그렇다’는 해명이 책임 전가일 수 있는데 옳은 방식이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데스크급 C 기자도 “사회부장을 오래 한 국장이 여전히 사회부장 일을 하는 게 근원이라 본다. 해명글만 해도 저는 특정 기사에 대한 공개 데스킹으로 보였다. 삭제 역시 잘잘못을 가릴 게 아니라 사회부장을 어떻게든 소통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설사 기사가 잘못됐어도 관리자가 직접 기사에 진심을 발휘해 관여하기보다 데스크에 맡기는 게 맞다. 관리자로서 실수라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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