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효성 기사' 삭제 파문…"뉴스룸국장 독단적 편집권 남용"

효성그룹 측 항의·방문 후 데스크·취재기자 동의 없이 삭제
노조 민실위 "기사삭제 가이드에 배치… 사유 납득 어려워"
뉴스룸국장 "효성 영향 아냐… 저널리즘 관점서 부적절했다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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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일가의 법적 분쟁을 다룬 한국일보 기사가 뉴스룸국장(편집국장) 지시로 온라인 출고 약 6시간 만에 삭제됐다. 기사 삭제 전 효성 측이 한국일보를 방문했고, 국장이 담당 데스크와 취재기자의 동의 없이 기사를 지운 것으로 드러나며 ‘몰고’ 자체와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취재 독립성 훼손, 편집권 남용 비판이 나오고 있다.

8월28일 오전 4시30분 온라인에 출고된 한국일보의 <[단독] ‘지분 압박’일까 ‘결별 통보’일까...효성 형제 녹취·편지 봤더니> 기사가 이날 오전 10시12분 강철원 뉴스룸국장의 지시로 삭제됐다. 본보 취재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국장은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에게 전화, 카카오톡을 통해 삭제 방침을 통보하고 직접 콘텐츠 유통 담당 부서에 삭제를 지시했다. 새벽에 나간 기사에 대해 이날 오전 효성그룹 임원들이 한국일보를 방문해 국장과 사장을 차례로 만났고, 취재기자의 입장이나 취재 과정을 확인하기 전 몰고됐다. 해당 기사는 조현준 효성 회장에 대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강요미수 혐의 재판과 관련해 동생인 조 전 부사장 측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녹취록을 입수해 단독 보도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사옥.

기사 삭제일인 8월28일 오후, 비번이던 사회부장이 출근해 뉴스룸국장에게 항의 뜻을 전했고, 8월31일 면담에서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가 국장에게 기사 복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노조는 1일 전체메일·공지를 통해 사태를 조직 전반에 공유했다. 2일 편집제작평의회 후 노조 산하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 차원의 조사가 시작됐고, 4일 기사 삭제 경위와 이에 대한 입장을 담은 <취재기자 배제한 무단 기사 삭제, 뉴스룸국장의 독단적 편집권 남용을 규탄한다> 성명이 나온 게 현재다.

특히 내부 기사 삭제 절차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의 취지와 목적을 어기고 뉴스룸국장이 편집권을 독단적으로 남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실위는 이날 성명에서 “어느 조항에도 뉴스룸국장 한 사람에게 독점적인 기사 삭제 권한을 부여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뉴스룸국장은 기사 삭제 전 취재기자에게 효성 측의 항의내용이나 자신이 문제라고 판단한 지점을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며 “데스킹하고 출고를 승인한 사회부장 역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가이드라인이 전제한 ‘상황 공유’와 ‘뉴스룸국장과 데스크의 판단’이 사실상 생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4월 ‘현대차 정의선 회장 장남 음주운전 보도’ 삭제 사태 당시 현 국장단 주도로 재발 방지책 차원에서 기사 수정과 삭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이해관계자의 기사 수정·삭제 요청이 있을 때 뉴스룸국장은 데스크, 해당 기자와 상황을 공유한다’(4조), ‘요청이 사실에 근거해 합리적이고 공익에 부합하거나 타당하게 판단되면 국장과 데스크는 기사를 수정 또는 삭제할 수 있다’(5조) 등 조항이 포함된 내부 규정이 마련됐는데 준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사 삭제 후 국장·부장단에만 제한적으로 입장을 설명했던 강 국장은 5일 사내 게시판에 전체 사태 경위를 담은 입장문을 올렸다. 삭제 전 사회부장과 법조팀장에게 전화·카카오톡을 통해 삭제 방침과 이유를 통보했고, 가이드라인이 기사 삭제 시 기자 동의를 의무화하지 않은 만큼 위반도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강 국장은 “동의를 받아서 삭제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당일 오후 2시에 피고인 조현문 재판이 예정돼 있고, 취재기자들이 기사 삭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데스크에게 삭제 방침 통보 후 조치했다”며 “취재기자 및 데스크와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중략) 뉴스룸국장 입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애초 기사 삭제가 유일한 대안이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사회부 법원팀 기자들의 취재와 기사작성, 보고 및 회의, 사회부장 데스킹 등 정상적 절차를 거쳐 출고된 기사였고 오보도 아닌데 효성 측 반론 추가 등 다른 선택지가 아닌 삭제 조치를 취한 게 옳았냐는 지적이다. 민실위는 공판에서 증거로도 채택된 녹취를 ‘조현문 전 부사장 측에서 나온 자료’로만 보기 어렵고, 재판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미공개 녹취를 보도한 것도 아니며, 그간 효성 측에 여러 차례 사실 관계와 입장을 확인해 불균형한 보도로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강 국장은 기사 삭제 이유에 대해 “법조기자를 오랫동안 해온 입장에서 보면, 특정 취재원에 경도된 기사, 반복적으로 피고인을 두둔하는 기사, 부당하게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기사, 균형감을 상실한 기사라는 게 뉴스룸국장이 내린 결론”이라며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기사가 부적절하다는 판단 떄문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론 △기사가 피고인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이 제공한 재료를 토대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게 주된 내용인데 피해자를 공격하는 형사재판 기사가 일반적이지 않고 △기사 출고 당일 피해자 조현준이 피고인 조현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데 한국일보가 피고인을 감싼다는 인상, 재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단독 입수 자료이지만 조현문 전 부사장의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어 수사·공익적 측면에서 보도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국일보 로고.

강 국장은 “(지면은 물론) 온라인에도 기사를 출고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지만 취재기자가 ‘단독’으로 올린 점을 감안해 사회부장에게 해당 기사를 신중히 다뤄 달라는 취지로 주문했다”며 “(초고에 문제가 있었지만) 사회부장이 저녁 늦게까지 데스킹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최종 출고된 기사를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중략) 제목과 내용이 초고보다 톤다운 됐지만 기사 작성에 쓰이게 된 재료와 기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날 기사 출고 자체를 막았어야 하는데,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 국장의 가장 큰 불찰”이라고 덧붙였다.

효성 측의 방문 후 삭제된 기사를 두고 “대기업의 강한 항의와 방문 직후 기사가 삭제된 만큼 그 과정에 경영적 판단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강 국장은 “(효성 측이) 일방적으로 회사를 찾아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해서 곧바로 돌려보냈다. (중략)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힌다”, “기사 삭제 과정에서 누구와도 상의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민실위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을 이끈 뉴스룸국장 자신이 “수개월만에 대기업의 강한 항의가 이어진 상황에서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며 “기사는 뉴스룸 국장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취재기자, 데스크, 국장이 협업한 산물이다. 이미 독자에게 전달된 기사를 없애는 것은 한국일보에 대한 신뢰도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일을 단순한 기사 한 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이해관계자의 항의 앞에서 한국일보의 취재와 편집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본다”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삭제 결정의 절차적 잘못 인정과 사과 △해당 기사 복구 △기사삭제 시 취재기자와 담당데스크의 의견청취 및 근거 기록 의무화 보완 등을 요구했다.

강 국장은 이번 사태 관련 입장을 듣기 위한 본보의 4일과 7일 전화와 문자에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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