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농구 최대 화두는 ‘해외 진출’이다. 남자 농구에선 이현중과 최준용이 미국 진출 문을 두드리고 있고, 여자 농구에선 박지현이 미국 무대에서 활약 중이며 강이슬 또한 재도전을 선언한 상태다.
한국 남자 농구가 마지막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건 무려 3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다. 농구 대통령이라 불리던 허재를 비롯해 강동희, 문경은, 정재근, 이상민, 전희철, 현주엽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출격했지만, 7전 전패로 짐을 쌌다.
이듬해인 1997년 프로농구 KBL이 출범하고, 이후 하승진이 2004년 미국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지명을 받아 한국인 1호 NBA 리거가 되면서 한국 남자 농구는 잠시 활력을 얻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끝으로 한국 남자 농구는 사실상 긴 침체기에 빠졌다. 아시아에서조차 존재감이 사라졌고, KBL 인기도 지지부진했다.
KBL을 두곤 스타 부재는 물론 선수들의 자유투 성공률이 기대보다 떨어진다는 등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KBL 사정에 밝은 한 농구 관계자는 “한국농구연맹은 제도적으로도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게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때 시행했던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장신 200㎝·단신 186㎝)이었다. 농구라는 종목에서 높이를 제한하는 게 말이 되나. 종목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리그 재미를 반감시킨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남자 농구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꾸준히 기대를 모으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2호 NBA 리거 탄생 시점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는 이현중이 꼽힌다. 그는 2025-2026시즌 일본프로농구 B.리그 나가사키 벨카 소속으로 정규리그 평균 17.4득점 5.6리바운드 2.7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특히 플레이오프(PO)에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일본 무대가 좁게 느껴진 그는 지난달 NBA 서머리그에 샌안토니오 스퍼스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5경기에서 평균 약 17분을 뛰며 9.2득점 3.6리바운드 1.2스틸 0.8블록을 기록했다. 유타 재즈전에선 22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를 거쳐 20일까지 보스턴 셀틱스의 미니 캠프 일정도 소화할 예정이다.
이현중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여자 농구 은메달리스트 성정아 대한민국농구협회 이사와 실업팀 삼성전자에서 농구 선수로 뛰고 삼일고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윤환 한국중고농구연맹 부회장의 아들이다. 성정아 이사는 과거 기자에게 “나는 가드나 포워드를 맡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훌쩍 크면서 센터가 됐다. 덕분에 폭넓은 농구를 할 수 있었는데, 아들인 현중이도 비슷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삼일중 3학년 때 키가 훌쩍 커 190cm를 찍었던 이현중은 스물여섯 살인 지금은 202cm에 이른다. 정교한 슈팅 능력을 갖춘 그는 공을 갖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도 좋다. 농구 지능까지 훌륭하다.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 반경을 오가며 자유자재로 득점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
물론 NBA 진출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 일본에서와 달리 미국 본토에서 이현중의 키는 그리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현지에서 이현중보다 신장과 기본기, 운동 능력 등이 뛰어난 선수들은 사실 넘쳐난다. 하승진의 경우엔 신장(221cm)에서 크게 경쟁력이 있었다. 그는 한국인 1호 NBA 리거가 됐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출전 시간이 지극히 적어 득점과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최준용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NBA 하부 리그인 G리그 입성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갈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 농구가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최준용은 2021-2022시즌 KBL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2023년 부산 KCC로 이적한 뒤 2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기여했다. 이현중에게 자극을 받았다는 최준용은 NBA 무대를 향해 원 없는 도전을 이어가려 한다.
국내 여자프로농구 최고 슈터로 꼽히던 강이슬은 미국 무대 재도전을 결정했다. 그는 2022년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을 노렸지만, 최종 로스터 진입에 실패한 바 있다. 그는 최근 피닉스 머큐리와 캠프 계약을 맺고, 다음 시즌 후 미국 무대 재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WKBL을 떠나 호주를 시작으로 뉴질랜드, 스페인을 거쳐 올해 4월 LA 스파크스와 계약하며 WNBA에 입성한 박지현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박지현은 2003년 정선민, 2018년 박지수에 이어 한국인 3호 WNBA 리거가 됐다. 식스맨으로 활약 중인 박지현은 6월18일 미네소타전(13득점)과 8월3일 포틀랜드전(12점)에선 두 자릿수 득점포도 가동했다. 미네소타전 13득점은 한국인 선수로는 첫 WNBA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이었다. 박지현은 미국 무대에 도전 중인 2000년생 동갑내기 이현중을 향해 "다시 기회를 얻어 나간 것에 대해 친구로서 정말 기분이 좋다. 잘 되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한국 남녀농구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해외 진출 선수들이 늘어나는 건 한국 농구의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선수 개인에게도 최고 리그를 향한 도전은 성장의 과정이 돼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야구나 축구에 비해 농구는 신체적 조건이 기량의 한계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동양인으로서 그 한계선을 넘기는 결코 쉽지 않다. NBA에선 과거 2011-2012시즌 대만계 미국인이자 신장 191cm의 제레미 린이 6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올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어쩌면 이현중이 꿈꾸는 모습일 수 있다.
도전을 택한 한국 남녀농구 선수들은 미국 무대 진출에 실패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충분한 깨달음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도전의 가치는 아무도 폄하할 수 없다. 꿈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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