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폭염이 전국을 달군 8월,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면서 시청자에게 여름이 왔음을 생생한 ‘그림’으로 전달하려는 기자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피서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담아내는가 하면, 각양각색의 소품을 동원해 저마다의 시선으로 더위를 ‘그려내고’ 있다.
여름철 제주도 기자들에게 크록스와 수영복은 취재 필수품이다. 해변, 계곡 등 피서객이 몰려드는 현장에 언제든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윤지원 YTN 영상기자는 아예 회사에 수영복을 가져다 뒀다. 그는 “제가 물에 빠져야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서 “함께 장난을 치고 얘기를 나누며 라포르(상호신뢰)를 쌓으면 자연스러운 인터뷰가 나오다보니, 가까이서 호흡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이렇게 취재한 기사는 최근 시청자들에게도 ‘핫’한 반응을 얻고 있다. 바로 제주 이호테우 해변에서 모래찜질을 하던 시민 조훈화씨 인터뷰다. 모래에 파묻혀 얼굴만 빼꼼 내밀고, 가슴께 마이크를 올려놓은 채 인터뷰하는 모습은 숏폼 콘텐츠 등으로 재생산되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윤 기자는 “인터뷰를 재밌게 하긴 했지만 기사가 이렇게까지 큰 호응을 얻을 줄은 몰랐다”면서 “모두 조훈화씨의 매력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이처럼 보는 이에게 시원함을 전하는 피서지의 풍경을 담아내기까지 무더위를 온몸으로 견디는 기자의 노력이 숨어있다. 김동민 연합뉴스 사진기자는 경남 양산이 사상 최고 기온인 42.5도를 기록한 2일 물놀이장을 찾았다. 김 기자는 “분수대 물이 뿌려져 사진으로 느껴지는 시각적 이미지는 시원하지만 현장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촬영하다 물이 튀어 옷이 젖어도 몇 분 만에 바싹 마를 정도”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특히 다양한 구도로 사진을 찍기 위해 바닥에 앉거나 엎드릴 때면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틀 연속으로 물놀이 분수대를 찾았던 김 기자는 “40도가 넘으면 그냥 다 똑같이 더운 줄 알았는데,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체감 기온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평소에는 로션도 잘 안 바르는데 이땐 차에 들어갈 때마다 선크림을 덧바르고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무더위 보여줄 ‘색다른 아이템’ 찾아
전형적인 ‘더위 스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싸움도 치열하다. 무더위 속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더위를 견디는 시민들, 열화상 카메라로 본 붉게 달궈진 도심의 모습 등 비슷한 취재가 이어지며 새로운 장면을 만들기 어려워진 탓이다.
선배와 함께 지면에 넣을 현장 스케치를 고민하던 이지훈 서울신문 사진기자는 문득 ‘아이스크림’을 떠올렸다. 그는 “아이스크림이 녹는 과정을 타임라인 형식으로 배치해 더위를 직관적으로 보여주자는 아이디어였다”며 “시각적으로도 재밌고, 사진을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햇볕이 가장 뜨거운 오후 1시, 손 모델이 되어줄 동료 기자와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녹은 아이스크림으로 바닥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으려 신문지를 깔아두고, 선배가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뛰어오자마자 셔터를 연속으로 눌렀다. 이 기자는 “이날 최고기온이 37도 안팎이었다. 세 명이 불볕더위에 그늘 없는 광장에서 땀 흘리며 취재했다”며 “그래도 지면에 크게 실린 사진을 보니 뿌듯함이 컸다”는 소감을 전했다.
폭염에 달궈진 자동차 안을 오븐처럼 활용한 이색적인 기획도 눈길을 끌었다. 박상현 조선일보 기자는 땡볕 아래 밀폐된 차량 내부에 크레파스와 쿠키 반죽, 베이컨을 올려두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약 2시간 만에 베이컨이 노릇해졌고, 4시간 만에 하얀색을 제외한 모든 크레파스가 형체를 잃고 녹아내렸다. 쿠키 역시 오븐에 구운 듯 노릇해졌다.
사실 이 실험은 유럽과 미국에선 매년 진행하는 유명한 실험이다. 시동이 꺼진 차량이 얼마나 빠르게 뜨거워지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한국에서는 고온다습한 여름 날씨 탓에 폭염이라고 하더라도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경우가 적어 이러한 실험이 이뤄지지 않았다. 박 기자는 “한국도 40도 가까운 폭염이 이어지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실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면서 “차량에 아이나 반려동물을 남겨두는 것이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어렵다’고 말해달라 부탁… 늘 죄송하죠”
당연하게도, 기자들이 찾는 현장이 늘 피서지처럼 유쾌한 곳일 수는 없다. 특히 방송 뉴스는 화면을 통해 현장을 생생히 전달해야 하는 만큼, 폭염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이나 재난 취약계층의 거주지에서 온종일 중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때 더위에 지친 취재원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는 것은 늘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윤형섭 연합뉴스TV 기자는 “비닐하우스 촌이 모여있는 과천 꿀벌마을을 갔을 때였다. 그늘막을 만들고 계시는 어르신께 인터뷰를 요청했었는데 대차게 거절을 당했다”면서 “덥고 힘든데, 현실적으로 언론 인터뷰가 당장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어렵게 산다’고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할 때면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꼭 폭염 현장을 취재하지 않더라도 여름이면 기자들의 체력적 부담이 커진다. 마땅히 쉴 곳 없는 현장에서 온종일 대기하며 취재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지훈 기자는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거나 원하는 구도가 안 나오면 5kg이 넘는 장비를 둘러메고 걸어 다닌다”며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 땡볕 아래 기다리고 있으면 땀이 옷을 적실 정도로 줄줄 흐르고 정신도 몽롱해진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더위를 딛고 현장의 생생함을 전하는 일 역시 기자의 몫이다. 윤형섭 기자는 “시청자들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이고자 여름에도 칼라가 있는 티셔츠를 입는 등 신경을 쓴다”면서도 “기자가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습 역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하는 요소라 생각해 꾸밈없이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
기자들은 함께 고생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환경과 기후를 6년째 취재 중인 박상현 기자는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화하다 보니 해가 지날수록 업무가 밀려드는 것 같다”면서도 “정확한 보도를 위해 기자만큼이나 기상청 직원들도 고생한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다. 데이터가 시시각각 변해 예보가 틀릴 때도 있지만, 어려움과 노고가 있다는 사실을 국민께서도 알아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