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이 사내벤처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부 공모를 통해 아래로부터 아이디어를 받고, 외부 투자 업계 전문가들로 꾸려진 심사를 통해 사내벤처 선발부터 사업화까지 지원해주는 시도들이 최근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내벤처를 통해 언론사는 신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구성원은 기존 업무·조직의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외부 전문가 심사로 선발, 사업화까지 지원… 언론사는 성장 동력 확보
지난해 12월 MBC는 사내벤처 공모에서 지식·교양·정보 콘텐츠 사업을 제안한 ‘딩딩대학’과 메타버스·K콘텐츠 라이브쇼 특화 조명 기술 서비스를 내건 ‘메타로켓’ 2팀을 선발했다. 지난 2020년 사내벤처제도를 도입한 이후 두 번째 공모였다. 앞서 1기로 선발된 ‘바이트일레븐’팀(게임엔진 애니메이션 활용 IP 전문회사)과 ‘koy’팀(방송 콘텐츠 기반 한국어 교육 플랫폼 사업) 모두 독립분사하고 외부 투자를 유치해 언론사 사내벤처로는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2기 사내벤처로 선정된 딩딩대학과 메타로켓도 1년 간 육성 과정을 거친 후 분사 여부가 정해진다.
한겨레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사내벤처 공모를 실시해 지난 3일 소통형 연구 플랫폼 ‘초록(Abstract)’을 최종 선정했다. 선발팀은 한겨레 이노베이션랩실 소속으로 자리를 옮겨 1년간의 활동을 심의 받은 후 본사 사업부화, 독립 분사, 사업종료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YTN도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사내 스타트업 공모를 진행했다. 1차 심사에서 5개 팀을 선정했지만 사내벤처로 독립시키기에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NFT 플랫폼 구축 사업’ 아이디어를 낸 팀에게 우수상을 수여했다. YTN은 이번 공모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사내 스타트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사규 제정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많은 언론사 내에서 사업다각화를 위한 방안으로 사내벤처나 별도 법인이 출범한 바 있다. 한겨레도 자회사를 설립해 블록체인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창간했고, 기자의 자발적인 기획으로 만들어진 사내벤처 ‘팩트스토리’를 최근 콘텐츠 제작사인 엠스토리허브에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이 있다. 사내벤처가 지속가능성을 보인 사례도 있지만, 헤럴드경제의 ‘인스파이어’, ‘리얼푸드’와 같이 수많은 사내벤처가 편집국 내로 흡수되거나 사업을 철수하는 일도 반복되곤 했다.
조직 문화 활성화도 추진 계기… “지속되려면 편집국과 완벽한 분리부터”
이전과 달라진 건 당장의 수익보다 ‘육성’에 초점을 맞춰 공모 과정부터 세심한 준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MBC는 카카오벤처스, 신한벤처투자 등 외부 인사로 구성된 투자심의위원회를 통해 사내벤처팀 평가·선발, 교육, 분사 여부를 결정한다. 한겨레는 공모에 앞서 사내벤처 지원자들을 위한 스타트업 창업 전문가 강좌를 진행했고, 선발 이후 6개월 간 외부 전문가의 맞춤형 멘토링을 지원하기로 했다. 두 언론사 모두 1년 간 전업 기회를 주고, 독립 분사 후에도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MBC와 한겨레는 사내벤처팀에게 초기사업자금으로 각각 3억원, 1억5000만원을 지원한다. 사내벤처팀 구성원들은 사업자금보다 회사에서 제공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얻어가는 게 많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관련기사: MBC '딩딩대학'과 한겨레 '초록', 사내벤처 도전한 이유는)
MBC 사내벤처 딩딩대학팀의 염규현 기자는 “그냥 회사 내부에서 ‘네가 잘할 것 같다’며 지목해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실제 필드를 뛰는 전문가들이 직접 평가를 해주고 사업 조언까지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라고 본다”며 “내 아이디어가 시장에선 어떻게 평가될지도 너무 궁금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겨레 사내벤처 팀으로 선발된 서혜빈 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 연구원은 “평가위원 5명 중 4명이 외부 전문가였는데 모든 지원자들의 제안서에 피드백을 남겨주셨다. 저희 팀도 처음 지원했을 때보다 제안서 내용이 확 바뀔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전문가 멘토링과 투자자 미팅 기회도 있어 개인 발전에도 도움이 돼 의지가 생긴 것도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지원 내용에 실제로 언론사 구성원이 사내벤처 창업에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MBC 사내벤처 공모의 경우 1기 70여명, 2기 40여명이 지원했고, 한겨레는 14개팀 22명이 공모에 참여했을 정도다. 기존에 버티컬 매체처럼 미디어 분야에 집중돼 있던 사업 아이템도 기술, 교육, 플랫폼 분야로 다양해졌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신사업 발굴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 활성화도 언론사들이 사내벤처를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양시영 MBC 혁신투자팀장은 “사내벤처제도가 박성제 사장이 취임하면서 생긴 건데 취임 이전엔 1000억대 적자를 내고 있기도 했고, 미디어 환경이 크게 변화하면서 내부 분위기가 침체돼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며 “회사 전체가 변화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기존에 일하던 방식이나 관점을 바꿔 도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겠다는 취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내벤처 팀 선발 권한을 외부의 전문가들에게 넘겨준 부분도 경영진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만큼 내부에선 혁신의 기운을 불러 일으키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언론사 사내벤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편집·보도국과 완벽한 분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헤럴드경제 사내벤처에 참여했던 한 기자는 “당시 사내벤처로 3개 팀이 생기면서 기자만 10명이 투입됐다. 어느 언론사나 인력 부족은 만성적인 문제일 텐데 사내벤처 팀의 존재감이 떨어지면 편집국에선 ‘기자 복귀 시켜서 지면이나 잘 만들자’ 식의 논의가 계속 나오곤 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사내벤처가 생겼다면 일단 관여하지 않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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