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기사 삭제 비판 성명' 배후자 색출 나섰다

성명 올린 기자들에게 "배후자 누구냐"
김상열 회장 "진실 가려보자" 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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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가 누구냐.” “배후가 누구냐.” 지난 19일 서울신문 기자들은 데스크들에게 이런 질책을 들었다. 데스크들은 2019년 특별취재팀이 보도한 ‘호반건설 대해부’ 기획 기사 50여개를 일괄 삭제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비판 성명을 낸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기사 삭제 조치에 지난 18일 2019년 입사한 서울신문 52기의 기수 성명을 시작으로 48기, 50기, 47기 기자들의 성명이 속속 이어졌다.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의 책임 있는 해명과 편집권 독립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지 물었다.

“사주와의 관계를 고려해 기사 게재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할뿐더러 그 자체로 자본 권력에 의한 편집권 침해”(52기 성명) “이번 사태는 기자들의 노고가 언제든 사측의 의지로 ‘무화’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일”(48기) “기사를 삭제한 2022년 편집국은 2019년 편집국의 총의가 담긴 기사를 ‘악의적 오보’로 규정한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면 구성원의 총의를 무시하면서까지 기사를 삭제할 이유는 없다”(50기) “편집권은 발행인과 편집국장 등 소수의 구성원에게만 귀속되는 권리가 아니다.”(47기)

기자들의 상식적인 비판에도 사측은 책임 있는 해명 대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색출 작업과 같은 비상식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스크 급에게 전화를 받은 서울신문 A 기자는 “성명을 낸 기수들은 2011년 이후 입사자들이다. 순수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주니어 기자들을 누군가 부추겨 현 경영진을 흔들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제는 ‘우리가 배후다’ 이런 해시태그 운동까지 해야 하는 거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임 경영진 때 합의 된 사안”이고 “대주주에 대한 악의적 기사”이니 기사를 삭제해도 정당하다는 인식은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과 곽태헌 사장의 입장문에서도 드러났다. 김상열 회장은 지난 19일 회사 알림에서 기사 삭제 조치에 대해 “문제가 된 기사들의 시작은 무엇 때문이었고, 목적은 무엇이었냐. 어떤 사유 때문이었던 간에 그 당시 4개월이 넘게, 반론의 기회조차 없이 지속된 일방적 기사들로 인해 호반그룹은 큰 상처를 입었다”며 “기사를 썼던 기자나 이번 건에 대해 성명을 올리신 구성원 중 누구라도 원하신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서 기사의 사실 관계에 대해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그 기사들의 진실성이 밝혀진다면 회장의 직권으로 해당 기사를 다시 게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곽태헌 사장은 이날 보직부장 이상 75명이 모인 경영설명회에서 “호반 관련된 기사를 삭제한 것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내부분열을 하려는 것도 있는 것 같다”며 “사장된 순간부터 호반 기사를 빼려고 했다. 호반이 최대주주인 회사에서 호반에 대해서 악의적으로 쓴 기사도 많이 있는데 그 기사 자체가 서울신문에 그대로 남아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5월 고광헌 사장, 박홍기 편집담당 상무, 안미현 편집국장, 박록삼 사주조합장, 장형우 노조위원장, 박홍환 호반TF팀장이 회의를 해서 기사를 다 삭제하기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며 “그 때 경영진인 고광헌 사장이 삭제를 하면 괜찮고 제가 삭제를 하면 안 되냐? 내로남불”이라고 했다.

A 기자는 “김상열 회장은 당시 서울신문 보도가 악의적이였다고 주장하는데 그럼 왜 이런 언론사의 사주가 된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결국 호반에 안 좋은 기사를 삭제하기 위해, 본인 입맛에 맞는 기사를 내게 하기 위해 사주가 됐다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임 경영진때 기사 삭제를 합의했다며 억울해하는 포인트가 황당하다. 그때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9년 6월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보유했던 서울신문 지분 전량을 사들여 3대 주주가 되자, 서울신문은 특별취재팀을 꾸려 그해 7월부터 11월까지 ‘호반건설 대해부’ 기획을 이어갔다. 취재팀은 시리즈 첫 회에서 “서울신문은 호반건설의 이번 서울신문 주식매입을 언론 사유화 시도로 규정짓고 호반건설의 도덕성과 기업 행태 등을 조목조목 분석하기로 했다. 호반건설이 과연 언론사 대주주로서 적합한지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지난해 10월 호반그룹은 우리사주조합 지분 전량을 매입해 서울신문의 1대 주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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