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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곧은소리'의 주인공 정경희 선생을 15일 여의도 자택에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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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쓰고 있는 칼럼이 ‘곧은소리’라서 고지식한 원로 언론인이려니 생각했다. 꼿꼿하면서도 엄격한 그래서 대하기가 어려웠던 그런 분들과 같겠지 했다. 막상 만나보니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손수 커피 물을 끓여내셨고, 외출이 힘든 몸인데도 배웅을 나올 정도로 따뜻하기만 했다.
선생은 매일 4시간씩 신문 스크랩을 하신다고 했다. 우리사회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개의 신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지점이 극명하게 다른 신문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세상을 해석한다. 헤드라인에 가린 속셈을 갈파하는 건 50년이 넘도록 언론인의 정도를 굳건히 지켜온 선생의 내공이기도 하다.
선생은 삼성 사태의 본질은 금권과 언론권력의 유착이라고 말했다. 내부고발자인 김용철 변호사를 보호하는데 언론이 헌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언론권력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왜곡 보도도 문제지만 그들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독자들이 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경희 선생과의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본보 김신용 국장과의 대화 형식으로 이뤄졌다.
- 미디어오늘에 11년째 ‘곧은소리’ 쓰고 있는데. 아이템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신문을 통해서 아이템을 찾고 있다. 매일 조선일보와 한겨레 두 가지를 스크랩 하는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면 하루해가 다 진다. 매주 되풀이하니 힘들다. 인터뷰한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상당히 걱정이다.
- 후배 기자들에게 던지는 대선배의 메시지 정도로 했으면 한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히틀러가 독일 국민을 탄압한 게 아니고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 기꺼이 복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 독일 치하를 빗댄 이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언론독재인 조중동이 나쁘기 보다는 조선일보가 말한 것처럼 말하고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그런 얼간이 독자들이 문제가 있다.
-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로 온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 사회의 보기 드문 사건이다. 내부자고발은 우리사회에서는 좀처럼 없었는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내부자 고발이 이번에 실현된 것이다. 양심선언을 한 김변호사뿐만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의 중계역할이 큰 힘을 실어줬다.
-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겨레, 경향의 경우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지만 나머지 신문들은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거나 물타기 보도를 했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은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이다. 정치적인 의미도 내포하지만 금권에 의한 최고의 권력이다. 감히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언론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다.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중앙일보다. 중앙일보 창업주가 삼성이다. 대다수 언론매체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광고주에 감히 저항할 수 없다. 이 나라 여론을 지배하는 과점신문들은 운명적으로 삼성과 유착이 돼 있다.
- 기자 초년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신념은 무엇이었나. 나 나름의 세 가지 준칙이 있다. 지식인으로서 행동의 근거인 ‘억강부약(抑强扶弱),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다음은 만사를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않은 것으로 구분해 판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과 대화를 한다. 이 세 가지를 준칙으로 여기고 살았고 그렇게 글을 썼다. 우리 사회는 품위 없고, 양식도 없는 폭력집단이 됐다. 걸핏하면 소송, 테러가 난무한다. 몽둥이로 덤비는 테러도 있지만 말로 하는 테러가 있다. 그 테러는 몽둥이로 하는 것보다 결코 약한 테러가 아니다. 사람을 폭력으로 때려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 자신과 대화하면서 동시에 그런 자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 정치권은 삼성 비리 의혹과 관련한 특검 문제로 시끄럽다. 특검을 어떻게 보나.
중간절차가 빠졌다고 본다. 검찰 내부의 어떤 흐름이 있을 텐데, 그것을 미처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특검 얘기로 가버렸다. 특검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절대로 삼성 성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할 것이다. 삼성에게 불법 선거자금을 차떼기로 받은 집단이 과연 특검에 순수하게 응할까. 응한다고 해도 특검이 수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검찰이 어떻게 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김용철 변호사를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미국과 같은 내부고발자보호법이 없다. 그러면 내부고발자를 누가 보호하나. 제발 우리 언론은 이번에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데 헌신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하나의 상식적인 시민으로서 우리나라 언론에 그걸 요구해야 된다고 본다.
-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관련한 글을 쓰신 것으로 기억한다.
간접화법으로 얘기합시다. 노무현 정부가 가장 민감한 문제를 두 가지 했다. 하나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추진이고 다음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다. 한미 FTA는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 이웃나라 일본은 6~7년 동안 FTA를 연구하면서도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치고 나갔다. ‘과연 이게 괜찮나’라는 의구심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 주변 나라들은 임박한 남북한 통일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정작 준비를 안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한국만 무덤덤하다. 중국은 13억명이고, 한국은 5천만명이다. 일본은 1억3천만명이다. 이 거대한 인접국가 틈새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초강대국이란 동맹국이 필요하다. FTA는 정치군사적인 동맹을 경제적인 끈으로 더 묶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FTA 자체가 우리 국익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 이상으로 큰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민간단체나 언론들은 복잡하게 얽힌 이런 맥락을 생각하지 못한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정치 스타일이다. 노 대통령은 “미국과 FTA를 추진하겠다”고 의제를 제기한 뒤 국민을 납득시켜야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황금덩어리라도 공짜로 준다고 할 때 받는 사람도 있고 거절한 사람도 있다. 취재선진화도 똑같다. 취재선진화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사전에 논의하고 토론하며 설득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다만 공무원과의 면담에서 사전 약속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이다. 언론탄압과는 관계가 없다. 개인적인 생각은 양쪽이 타협했으면 한다.
- 조중동의 문제점이랄까. 수구언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편파언론이 제일 문제다. 논리적으로 매사를 판단해야 하는데 논리가 없다. 군사독재의 유산상속자 집단은 스스로 권력화해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 전부 조중동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조중동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조중동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한다.
여론조사의 폐해도 이런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에게 압도적 지지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적 여건에서 민주적으로 형성된 여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권력이 만든, 언론독재가 창출한 허상이다. 전혀 여론으로서 권위를 부여해선 안된다. 그런데 어느 매체도 이 점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한 신문이 없다.
- 진보매체인 한겨레, 경향의 보도태도도 아울러 말해달라. 한겨레는 몇 번 비판했다. 국제적인 문제는 덮어놓고 반미다. FTA나 평택 미군기지 문제 반미라고 깔아뭉갠다. 국제관계는 힘의 관계다. 강대국의 틈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해야 한다.
- 지금 후배 기자들을 바라볼 때 느낌이 어떠하신지.
저널리스트는 큰 틀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 ‘어떤 놈이 간통을 했다’거나 ‘어떤 놈이 사기를 쳤다’라는 보도는 사실 보도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국가 장래, 우리 민족의 장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간접 체험을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매사를 역사적인 간접체험과 비교해 생각하고, 아카데믹한 연찬을 해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아쉽게도 그런 기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식인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후배들이 없다. 언론권력인 조중동은 비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그런 후배들만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부끄럽지만 삼성의 돈에 매수된 언론인들이 언론사 내부에 상당수 포진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삼성장학생들이다. 어떻게 보나.
낫살이나 먹었다고 후배들에게 훈계하겠어요? 이렇게 얘기합시다. 우리는 지식인이어야 한다. 지식인의 전통은 첫째, 돈을 탐내서는 안된다. 연암 박지원도 양반은 돈을 만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고 적어도 지식인이라는 긍지를 가진 사람은 돈을 만져선 안되요. 근데 너무 헤프지 않나 싶어요. 몇 푼 안되는 돈봉투, 명절에 오는 상품권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권력집단과 골프 치는 재미에 푹 빠져 목에 힘주는 언론인들을 경멸한다.
- 언론인으로 가장 보람있을 때 또는 회의적일 때는 언제였나.
현업에 종사하면서 팬레터를 받았을 때다. 공포의 시대였던 유신독재와 5공 치하에서 나는 내 양심에 거리끼는 칼럼을 쓴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응원의 팬레터를 보내올 때가 가장 행복했다. 특히 외국 교포들의 격려 편지들이 많았다. 가장 어려웠을 때는 2002년 6월 한나라당으로부터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받았을 때다. 한나라당은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에 대한 비판적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는데 개인인 나로서는 매우 힘들었다. 우리나라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다면 힘들어하지 않았겠지만 나 나름대로 재판부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정신적으로 어려웠다.
- 후배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평생을 언론의 현장에서 뛰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엄격하게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부처님이 되라는 얘기는 아니다(웃음). 상식의 선에서 어떤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최소한 용기는 가져야 된다. 기자들이 공명정대한 지식인이 되었으면 한다. 특종도 중요하지만, 지식인으로서 여론의 선도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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