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그룹이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의 불법과 편법은 다시 한 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최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는 게 상식이고 절차적으로 맞다. 거기부터가 정상화의 시작이다.”
25일 낮 12시쯤 서울 마포구 YTN 사옥 6층 노조 사무실. 점심시간 테이블에 모여 앉은 기자, PD 6~7명이 은박지에 싸인 김밥 하나씩을 든 채 회사 걱정을 한다. ‘MB정권 언론인 해직 사태’, ‘돌발영상’으로 YTN을 기억하는 시청자에겐 낯설 지난 1년이 모인 이유다.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란 비판 속 유진그룹이 YTN 최대주주가 된 게 지난해 2월, 새 사장이 온 게 4월이었다. 그 정부는 파면됐지만 어떤 상흔은 남아있다.
전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장은 이날 본보와 인터뷰에서 “이전에도 낙하산 사장을 겪는 등 정치 권력에 독립적인 구조가 아니었기에 선한 자본에 대한 기대감이 내부에 있던 것도 사실이다. 1년 만에 다 정리가 됐다. 정치와 자본 권력 모두에 취약한 방송사가 됐다는 인식이 공통적”이라며 “국민, 공적소유로 가는 게 공공성이 생명인 보도전문채널 YTN이 다시 바로 서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요구가 나올까. 지난해 3월 말, 노조와 시청자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사장추천위원회가 폐지되고 유진그룹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보수 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 이사장 출신 김백 사장이 선임됐다. YTN 보도가 편향됐다며 사과방송부터 한 그는 보도 독립성을 위해 보도국장 임명 시 보도국 구성원 신임을 묻도록 한 임면동의제를 무시한 채 인사권을 행했다. 단체협약 위반이었다. “기존 YTN 지우기”란 평가가 나온 대규모 인사, 프로그램 폐지가 이행되며 출신 노조, 정치성향에 따른 발령이 이뤄지기도 했다.
당장 보도국에서 가장 큰 변화는 “금기가 생긴 것”이었다. “김건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11일 YTN 법조팀이 쓴 <檢, ‘김건희 여사 소환’ 관측에 “필요한 수사 진행 중”> 기사가 <‘정치적 민감 사건’ 질문에 檢 “필요 수사 진행 중”>으로 바뀌었다. 제목과 내용에서 ‘김건희’란 이름이 빠졌다. 같은 해 1월 나간 <檢, 1년 전 “김건희·최은순 모녀, 22억 수익” 확인> 보도 하단엔 그해 6월 사과문을 붙였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영상 사용불가 지시’, ‘김건희 여사에 명품백 준 최재영 목사 녹취구성 삭제’ 등이 이뤄지며 YTN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등장했거나 윤석열 전 대통령을 풍자한 ‘돌발영상’이 불방·삭제되기도 했다.
“필요없는 뉴스가 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나가야 할 뉴스가 안 나가는 건 훨씬 치명적이다. 특정인 검증보도를 막아버리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권력의 편을 들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점차 YTN이 시청자들에게서 지워지고 있다. 권력 비판을 하면 못 나가니까 보도국에선 시도 자체가 줄고 사기저하, 보도 질 하락의 악순환이 초래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일반 국민 등에게 YTN 뉴스 신뢰도, 영향력 등을 물은 시사저널, 한국갤럽의 조사에선 지표가 추락한 결과가 나왔다. 2021년 이후 해마다 14~18개의 상을 받아왔지만 수상실적도 대폭 줄며 지난해 4월1일부터 11월1일까지 수상작은 5건에 그쳤다. 그마저도 2건은 김백 사장 취임 후 2~3주 만에 폐지된 탐사프로그램 <탐사보고서 기록>의 수상이었다.
지난해 YTN 영업이익은 -267억원으로 경영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조직 운영면에선 지난 1년 새 “구성원들이 적게는 3번, 많게는 5, 6번 인사발령을 겪었다. 인사가 안정적이지 않다보니 근무지정으로 땜빵식 인력 배치가 이뤄지고 있다. 자괴감이 크다.” 특히 최근엔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른 기술-영상 조직을 한데 묶은 조직개편이 단행되며 분사를 위한 사전작업이란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전 지부장은 “매일 아침 로비에서 구성원들이 개편 철회 피케팅 중인데 지난 30년을 돌아볼 때 이게 YTN을 위한 조직개편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며 “지금 경영진은 YTN이 아니라 유진그룹을 위한 경영을 하고 있다. 이번에 본부장 자리를 줄였는데 간부들 충성 경쟁을 시키는 거라 본다. 결국 유진그룹이 최대주주인 한 YTN은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민영방송 YTN은 공적 소유구조를 지닌 방송사가 민간자본에 넘어간 첫 사례다. 그 결과였던 지난 1년에 더해, 원인이 된 민영화의 절차적 문제도 더 조명되는 상태다. 2022~2023년, 정부는 당시 YTN 대주주였던 한전KDN, 한국마사회 지분을 자산 효율화를 이유로 매각한다며 ‘통매각’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이 YTN 지분을 시장에 팔도록 공공기관을 압박하고, 관리감독 부처를 통해 협박을 하는 불법적 혐의로 점철됐다며 YTN지부는 23일 윤 전 대통령 등 전직 관료 1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위법적 절차로 지난해 2월 유진그룹을 최대주주로 승인한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 고발됐다.
YTN이란 보도전문채널이 우리 사회에 어떤 언론으로 남을지 중요 국면이다. YTN 이사회 구성을 바꾸고, YTN 지분율을 높이며 유진그룹이 대선 이후에도 영구 장악하려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지부장은 “YTN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에게서 뺏어 판 장물이고 회수해서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대주주 자격을 박탈하면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어도 권한 행사를 못한다”며 “그때부터 다양한 가능성이 열리는데 가장 바람직한 YTN 지배구조에 대해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가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 핵심은 공적 소유와 국민에 대한 설명, 합의다.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개선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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