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국가를 강제하는 문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헌법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국가가 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헌법으로 국가가 아닌 국민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러다 군사정부가 무너지고 시민들이 헌법을 새로 썼다. 이 헌법으로 우리는 국가를 통제해 왔다. 그런데 지금 시민이 만든 헌법이 무력화하고 있다. 헌법을 지키려면 헌법을 알아야 한다. 언론인 출신 헌법학자 이범준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과 함께 헌법을 읽는다. [편집자주]
이재명 후보자와 대통령 불소추 특권의 범위
불법 비상계엄을 이용한 12·3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은 대통령이 무슨 내란이냐고 한다. 가령 전직 검사 황교안 같은 이는 “대통령이 무슨 내란을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헌법은 내란을 저지르기 가장 쉬운 사람으로 대통령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 소추를 금지하면서도 내란과 외환은 예외로 뒀다. 이들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너무 커서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헌법 제84조가 정한 이유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은 형사소추되지 않는다. 내란과 외환만 예외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파면된 윤석열은 민간인이어서 불소추 특권이 없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내란 이외의 범죄도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된다. 오히려 헌법을 시험하는 것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재명의 불소추 특권이다. 여러 형사재판을 받는 이재명 같은 이가 대통령이 되는 일이 없었기에, 불소추 특권을 정한 헌법 제84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지금껏 깊이 논의된 적 없는 불소추 특권의 내용과 범위를 사법기관이 정해야 한다.
헌재 “대통령 권위와 나라의 체면 깎여서야”
형사소추란 무엇일까. 기소와 재판을 가리킨다고 헌법학자들은 설명한다. 이효원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이 취임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중에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 이는 형사절차에서 공소의 제기와 재판을 의미한다(이효원, 대한민국 헌법강의, 2024).”라고 했다. 다른 학자들 견해도 같다. “원칙적으로 형사재판을 받지 아니한다(성낙인, 헌법학, 2020).” “소추를 전제로 하는 형사재판도 할 수 없다(김하열, 헌법강의, 2018).” “범죄수사·공소제기·형사재판권의 행사 등을 모두 포함한다(한수웅, 헌법학, 2022).” 등이다.
이러한 헌법학계 다수의 설명을 두고도, 이재명처럼 이미 기소된 사건의 재판까지 중단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왜 불소추 특권을 인정하는지 살펴보면 그런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이유를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하여 나라의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94헌마246).” 즉, 수사와 재판에 시간을 빼앗겨도 안 되고, 대통령 권위와 나라 체면이 깎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고려하면 대통령 선출 이전에 시작된 재판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법령 위반 전원합의체 회부
대법원이 최근 이재명 선거법 위반 상고심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보냈다. 다수 언론보도와 달리 대법원 재판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가 원칙이고, 대법관 4명이 참여하는 소부 판결이 예외이다.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은 “대법원의 심판권은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합의체에서 행사하며,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된다. 다만, 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에서 먼저 사건을 심리하여 의견이 일치한 경우에 한정하여 … 그 부에서 재판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99.9% 사건을 소부에서 처리한다. 그렇다면 소부 판결이 보편이고 전원합의체 판결이 특수인 셈이다.
이재명 사건이 전원합의체에서 심리되는 것은 조희대 대법원장 뜻인데, 석연찮은 과정을 거쳤다. 대법원 설명은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의 뜻을 듣고 전원합의체 심리를 정했으며, 근거는 법원조직법과 전원합의체의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법령을 따르려 해도, 연구관 보고와 주심 대법관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를 거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 사건 항소심 선고(3월26일), 대법원 상고 접수(3월28일), 검사 상고이유서 제출(4월10일), 피고인 이재명 답변서 제출(4월21일), 주심 지정(4월22일) 날짜를 따져보면 그렇다. 만약 연구관 보고와 주심 대법관 검토를 거쳤다면 더 문제다. 대법원이 항소심 선고와 동시에 검사 상고와 전원합의체 회부를 염두에 두고, 연구관 보고를 지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원이 저울질하는 두 카드
조희대 대법원장은 헌법 제84조 논란을 피해 대통령 선거일인 6월3일 전에 이재명 선거법 사건을 선고하기 위해 서둘러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가져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이재명 사건을 좌지우지할 재판장이 됐다. 이 사건이 통상 사건처럼 소부에 있었으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재판에 관여할 수 없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020년 3월 대법관에서 퇴임하면서 그해 7월에 나온 이재명 선거법 상고심 결론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재명에 대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내심이 공개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현직 대법관 가운데 2020년 이재명 사건에 참여한 사람은 당시 유죄를 주장한 노태악 대법관이 유일한데 이번 사건에서 회피했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이유이지만 다른 선거 사건 상고심에는 모두 참여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원에는 두 가지 카드가 있다. 첫째는 검찰의 상고를 기각해 이재명의 무죄를 확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무죄를 파기하고 양형을 정해 유죄를 확정하는 것이다. 둘째 방법이 이른바 파기자판이며, 형사소송법상 가능하다. “상고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에 그 소송기록과 원심법원과 제1심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판결하기 충분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피고사건에 대하여 직접판결을 할 수 있다.”라고 형사소송법 제396조 제1항이 정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무죄를 유죄로 파기하면서 양형까지 정해 확정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이밖에 무죄인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면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은 생각하기 어렵다. 만약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새로운 검찰총장 지시로 검사가 공소 유지를 사실상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은 주요 사건에서 얕은수를 썼다가 검찰에까지 굴욕을 당하는 상황을 맞고, 대법원 권위는 크게 훼손된다. 더구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상황 전개가 불투명한 파기환송이나 하자고, 즉 6월3일 이후에 재상고심을 할 심산으로 법령을 무시해 가며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경우 헌법 제84조 문제가 있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 넘은 사법의 정치화 시도
이재명 사건을 6월3일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결론 내려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의도는 하나다. 자신과 대법원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우선 헌법 제84조에 따라 상고심 정지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이재명에게 무죄 확정이라는 선물을 주려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과 대법원 숙원 사업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이게 아니라면 파기자판으로 이재명을 유죄로 만들어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이다. 어느 경우이든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재명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는 정치적 포석이며, 사법의 정치화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헌법 제84조 대통령 불소추 특권 위에 대법원의 판결을 올려놓는 기술을 쓰고 있다.
[필자 소개] 이범준
헌법학 박사.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2022)>,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2009)> 등이 있다. 기자 시절 대법원 사법농단 비리, 검찰 디지털 개인정보 무기한 저장, 대법원 전자법정 입찰 비리 등을 보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에서 기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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