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논문심사에서 깨달은 것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모두 여섯 차례 두 학기에 걸쳐 받았다. 심사위원이 다섯 사람이니 어림잡아도 서른 뭉치의 지적 사항이 있었다. 이 가운데 헌법과 법률을 구분하라는 지적을 두 차례나 받은 일이 기억난다. 정확히는 헌법적 권리와 법률적 권리를 구분해 논지를 전개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적한 심사위원은 수업에서도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이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률가이지만, 이들 역시 헌법적 권리와 법률적 권리의 차이를 드물지 않게 놓치는 셈이었다.
나의 학위논문은 일제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과 그 후손인 재일조선인의 참정권에 관한 것이다. 이들이 일본 국적자는 아니지만 일본 헌법의 기본권 주체인지, 특히 참정권의 주체인지 검토했다. 그런데 일본 헌법과 이론을 보면, 선거권은 헌법상 권리이지만 피선거권은 법률상 권리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재일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 국적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헌법상 권리는 국회가 입법하지 않으면 위헌이지만, 법률상 권리는 국회가 주어도 그만, 안 주어도 그만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일조선인에게 어떠한 참정권이 있고 없는지를 논증했다.
법률상 권리의 특징은 헌법재판소에 호소해서는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률상 권리를 헌법재판소에 요구한다면 이런 답을 받을 것이다. “법률상 권리를 정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므로 재판소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다. 국회에 요구하는 게 맞다.” 그래서 국회에 로비하거나 압력을 넣어서 법률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국회가 마음을 바꿔 권리를 없애면 맥없이 보고 있어야만 한다. 이처럼 법률상 권리는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가 정한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자기지배이고 민주주의이다.
어떠한 권리가 법률상 권리이고 헌법상 권리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법적 권리는 법률에 조문으로 적혀 있어야 효력이 생긴다. 그런데 법률에 적혀 있는 권리라고 해도, 헌법상 권리를 구체화한 것인지, 헌법상 권리는 아니지만 국회가 법률상 권리로 만든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반대로 법률에 정해지지 않은 권리라고 해도, 헌법상 권리여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지만 위헌적으로 빠진 것인지, 아니면 법률적 권리이기에 그냥 빠져도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을 만들 수도 있나
남성 김 아무개 씨는 2021년 여성 안 아무개 씨와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여성 안 씨는 다른 남성과 혼인 상태에 있었다. 이에 남성 김 씨 혼자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주민센터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아이를 낳은 여성 안 씨의 남편 도움이 있어야, 김 씨가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유는 이 아이가 안 씨 남편의 아이로 추정된다는 민법의 친생추정 조항 때문이라고 했다.
친생추정이란 아이 어머니의 남편을 아이 아버지로 추정하는 것이다. 아이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임신과 출산이란 사실 때문에 명확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못해서다. 아버지를 정하는 방법을 민법에 정해 두었는데, 우선 어머니의 남편이 나의 아버지다.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제844조 제1항). 이것이 친생추정이다. 친생추정은 자녀의 신분상 지위를 빠르게 확정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사유가 있는 것을 안 날부터 2년 안에 친생부인 소를 제기해야 친생추정을 깰 수 있다(제847조 제1항).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친생자를 확인할 수 있게 됐지만 국회는 친생추정 조항을 폐지하지 않았다. 가족은 혈연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정서공동체이고 사회공동체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 제도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생추정은 과학적 한계가 아니라 사회적 선택이라고 했다(2016므25). 가족은 자연이 아니라 제도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씨 사례에서도 이 아이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아이를 낳은 여성의 남편 도움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를 내 확정판결을 받아야 했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김 씨의 아이와 같은 사례에 적용되는 내용이 없는 가족관계등록법이 위헌이라고 했다(2021헌마975). 이를 위해 먼저 이 아이에게는 출생 등록될 권리라는 헌법상 권리가 있다고 확인하고, 이 아이의 권리를 구체화하지 않은 가족관계등록법이 위헌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 김 아무개 씨가 제기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부실한 가족관계등록법 때문에 헌법상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부모가 아이를 출생 등록시킬 권리는 헌법상 권리가 아니라고 했다.
헌법이 토씨까지 정한 대통령의 서약
이처럼 헌법과 법률을, 권리를 적은 문서라는 측면에서 보면 둘은 차원이 다르다. 헌법상 권리는 국회도 침해하지 못하며, 국회가 국민의 대표라는 점을 생각하면 헌법상 권리는 국민도 침해하지 못한다. 입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주적 정당성 위에 헌법적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 다수가 민주적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 9명이 헌법적으로 파면하는 것이다. 거칠게 보면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것이지만 정확히는 민주주의를 보완하여 완성하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을 통제 규범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둘은 각각 통제하는 대상이 다르다. 법률은 사람을 통제한다. 그리고 이 법률 뒤에는 국가가 있다.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법률을 완전하게 실현한다. 민법에 따라 꿔준 돈을 받으라는 판결문을 민사법원에서 받았다면 국군도 동원할 수 있다. 민사집행법에서 “집행관은 경찰 또는 국군의 원조를 요청할 수 있다(제5조 제2항).”라고 정하고 있다. 형법에 따라 형사법원이 사형을 선고하면, 국가는 피고인의 목숨을 어려움 없이 끊을 수 있다.
사람을 통제하는 법률과 달리 헌법은 국가를 통제한다. 헌법은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는 문서인데, 이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위반 여부를 가리는 모든 헌법소송의 상대가 국가뿐이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헌법은 입법부와 행정부를 헌법재판으로 통제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회의 위헌적인 법률에 위헌을 선언해 폐지하고, 정부의 위헌적인 공권력 행위를 중단시킨다.
특히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행정부 수반은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기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즉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까지 요구한다. 구체적인 문구까지 헌법에 정해 놓았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제69조)”이다. 이에 더해 국민이 뽑은 선출직 공무원 가운데 탄핵 대상은 유일하게 대통령인 것도 같은 이유다(제65조 제1항).
국가가 헌법의 통제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헌법이 정한 헌법상 권리는 법률상 권리를 없애거나 만들 만큼 중요하지만, 이를 보장해야 할 국가권력은 오히려 헌법상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가장 크다. 이유는 법률이 국민을 통제하는 일에는 물리력을 보유한 국가가 나서지만, 헌법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에는 국가를 강제할 물리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강제할 물리력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의 규범력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시작 단계다. 이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무력한 선언이 된다면, 국가는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눈먼 폭력이 된다. 그때는 헌법재판소를 협박하는 극우도 안전하지 못하다. 지금 극우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아직은 헌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필자 약력]
이범준 = 헌법학 박사.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2009)>, <일본제국 vs. 자이니치(2015)> 등이 있다. 기자 시절 대법원 사법농단 비리, 검찰 디지털 개인정보 무기한 저장, 대법원 전자법정 입찰 비리 등을 보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에서 기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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