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 후 10여일이 지났다. 12·3 비상계엄으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14일 관련 형사 재판에 첫 출석했다. 헌재 선고 후 이어진 절차는 ‘정상화의 시작’이란 측면이 있다. 특히 이 정권에서 여러 방식으로 언론장악·탄압을 겪어온 언론사, 기자들로선 현 국면이 달리 와닿을 수밖에 없다. 탄핵된 정부의 언론관부터 언론계에 남긴 상흔, 언론이 할 일까지, 다시 출발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MBC는 ‘바이든-날리면’, ‘전용기 탑승 배제’, ‘도어스테핑 중단’ 등을 경험했다. 사태 중심에 있던 이기주 MBC 정치부 기자는 헌재 판결에 “사필귀정, 자업자득이란 말이 떠올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임기 초 대통령실을 출입하며 대통령 나토(NATO) 정상회의 순방길에 민간인이 동행했다는 보도 등을 했던 그는 “대통령실 코어 집단은 언론이 국정 홍보 역할을 해야지 발목 잡아선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국민의힘 출입 때 적어도 ‘언론이 비판할 수 있지’였던 것과도 비교된다”며 “3년여 간 사적 관계로 점철된 정권에 대한 헌재 선고를 보며 그간 윤석열과 함께한 제2·3의 최순실, 정체불명 민간 비선들이 같이 파면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출입 당시 ‘전용기 탑승 배제’를 겪은 이정은 MBC 테크앤트렌드팀장은 “언론 본연의 역할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었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여긴” 언론관을 지적했다. 그는 “폐쇄적이고 정보비대칭성이 큰 법조기자실 문화에서 20여년 언론을 대하며 왜곡된 언론관을 지닌 듯 싶다”며 “‘탑승 배제’ 건은 미숙하게만 봤는데, 국민 귀한 줄 몰랐던 이태원 참사 수습을 보며 ‘임기 못 채우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입을 하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데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낸 출입처에 안타까움조차 안 든다는 게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이 기간 KBS는 보도에 따른 탄압 수준을 넘어 존립에 영향을 미칠 위기를 마주했다. MBC와 달리 경영진 교체가 이뤄지며 ‘낙하산 사장 임명’, ‘임명동의제 파기’, ‘세월호 10주년 다큐 등 방송불방’을 겪었다. 특히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으로 주요 재원이 위협받게 된 게 결정적이었다. 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헌재 선고에 “상식적인 판결”이라며 “KBS로선 내란 정권에 맞서 버티는 것을 넘어 국민의 방송을 정상화 할 출발선에 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윤 정부가 “언론의 공공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공론의 장을 원활하게 만드는 언론 기능과 역할을 통치자로서 존중할 줄 몰랐고 다른 생각을 참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분리징수 역시 공영방송 공익성과 닿아있는 수신료를 구독료로 본 것”이라 평했다. “탄핵 시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대한민국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굉장히 비관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왜, 누구 책임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 그는 “당장 대선 국면에서의 감시, 쪼개진 사회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위해 안에서 노력하려 한다. 수신료 제도 정상화, 나아가 근원인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공적 소유구조였던 YTN의 최대주주는 그사이 민간기업 유진그룹으로 바뀌었다. 지속 논란이 된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언론장악과 졸속이란 비판을 받은 절차의 결말이었다. 나연수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파면에 대해 “이제 정상화의 시작이라 본다. 기존 정부의 비정상적 행태 중 YTN 사영화를 비롯해 언론장악으로 규정된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의사결정이 적법했는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한 진짜 이유가 뭔지 수사·검증이 이뤄져야 할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적 구조에서도 정치권력 향배에 따라 부침이 있었고 사영화 시 정치적 독립으로 보도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지만 1년이 지난 현재 경영효율성에 맞춘 조직개편, 인사 등으로 보도 기능에 우려가 나온다. 정권 비판 보도가 위축됐다는 평이 나오는 상황인데 기업이 재산권을 주장하는 어려운 여건에서 공적 구조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이 깊다”고 전했다.
TBS는 최근 1년 가까이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해 폐국 위기다. 지난해 9월부터 월급이 끊겼고 구성원은 370여명에서 180여명으로 줄었다. 광고나 후원이 불가능한 재원구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 등의 주도 하에 예산 지원이 사라졌다. 언론탄압이란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 기존 여당 행보와 같은 궤다. 송지연 언론노조 TBS지부장은 파면 선고에 대해 “TBS가 잊혀져 가는데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고 했다.
평일 낮 직원들은 릴레이 1인 시위,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대선 불출마 선언 후 당에 ‘약자와의 동행’을 핵심 의제로 제안한 오 시장 행보를 두고 14일 기자회견도 열었다. 그는 “파면 선고 날 TBS는 계속 어둠에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지방정권이 바뀌어야 되는 문제여서”라며 “TBS는 내란세력의 1호 탄압대상이었고 취약한 고리에 놓여있었다. 서울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던 수도권 유일 공영방송이 정치적 이유로 정당한 공론 없이 예산권에 의해 사실상 폐국에 이른 사례로서 TBS가 이대로 무너지는 건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했다.
뉴스토마토는 ‘관저 이전 천공 개입 의혹’,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을 파헤친 ‘명태균 게이트’ 보도 등으로 송사, 대통령실 출입정지 같은 고초를 겪은 곳이다. 계엄 당일엔 소속 기자가 국회에서 군인에 체포될 뻔하기도 했다. “(헌재의) 인용을 한 차례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김기성 뉴스토마토 편집국장은 “언론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 정부여서 역설적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체포될 뻔한 기자가 말진인데 계엄군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군사정권 시절 선배들의 경험을 편집국 전체가 몸으로 겪으며 펜의 엄중함, 무게감이 전해진 결과”라며 “1980년 5월 광주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말도 있지 않았나. 그러기 위한 기록이 언론의 일인 것 같다. 기록이 남아야 대통령이 함부로 계엄을 못하고 군이 따르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험을 소중히 받아들고 더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단 마음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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