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밤 10시23분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시간 혹은 나중에 어딘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모두가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이후 시시각각 벌어진 일들이 기록으로 남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그날 밤의 기억은 그보다 또렷했다. 국회의사당에 군인들이 난입했다. 시민들이 맞섰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그걸 봤다. 긴 밤이었다.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박재혁 강원도민일보 기자에게 그 밤의 일을 질문했다. 돌아보면 ‘12·3 계엄 당일 새벽 양구군청 진입한 전방부대 군병력’ 연속보도 첫 기사 취재의 시작이 이때였다. 퇴근하니 오후 8시, 씻고 밥 먹고 동호회원들과 온라인 보드게임을 하다가 계엄 소식을 접했다. “가짜뉴스 그만”, “술 마셨냐” 면박을 줬는데 휴대폰에 뉴스 알림이 잇따랐다. ‘일이 났구나’ 싶어 바로 데스크에 전화를 걸었다. “바로 회사로 가나요?” “혹시 모르니 회사로 오지 말고 밖에서 군 동향부터 알아봐.”
전방지역인 강원도 양구 주재기자로서 동부전선 관할 부대인 3군단과 21사단에 연락부터 해봤다. “특이 동향 없다”는 답을 들었는데 새벽 1시라지만 여러 부대 참모들과 연락이 안 되는 게 찝찝했다. 비상계엄 해제를 뜬눈으로 지켜보며 밤을 넘겼다. 춘천에서 양구까지 통근은 차로 1시간쯤 걸린다. 출근길 차에서 군에 다시 연락해 “당직상황실에서 근무를 서느라 휴대폰을 두고 와서 전화를 못 받았다”는 답을 들었다. 육군에서 복무한 기자는 ‘요즘 휴대폰 없이 근무하는 간부가 어딨어’라고 생각했다. “그냥 넘길 수 있었는데 ‘나한테 거짓말 하네’ 싶었던 게 본격 덤빈 계기”가 됐다.
곧장 양구군청과 양구군의회 공무원, 경찰 관계자 등에게 전화를 돌렸다. “군부대원이 군청을 점거한 사상 초유의 사태”를 그렇게 알게 됐다. 12월5일자 보도엔 12월3일 밤 10시50분쯤 21사단이 양구군청에 전화를 걸어 “CCTV관제센터와 군경합동상황실을 점거하겠다”고 통보했고, 4일 새벽 0시10분쯤 실행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애매모호한 해명”을 하고 “점거 인원 수도 틀리게 얘기했던” 군부대들은 그가 확보한 출입명부의 출입시간, 계급, 이름 등을 읽어주자 뒤늦게 진입을 시인했다. 이후 경계태세 2급 발령에 따른 사전 현장 확인이고 점거는 아니라고 군은 해명했다.
첫 보도 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기사 관련 질의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며 반향이 일었다. 이번 비상계엄 시도가 비단 서울 여의도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낸 의미도 있었다. 추가 취재에선 서울본부와 함께 국회의원실에 협조를 구해 CCTV 영상 등을 확보, 이날 총기를 든 병력이 진입(12월23일자)했고, 3군단 예하 부대 22사단도 이날 고성군청에 진입(12월11일자)한 사실을 드러냈다. 한국신문협회는 이 보도들을 최근 2025 한국신문상 뉴스·취재 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박 기자는 “상을 받으려 쓴 게 아니라 그냥 제 할 일을 한 건데 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 내가 쓰는 글이 가볍지 않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꼈다”며 “국회에 헬기가 내리는 일만큼 지역에서 일어난 일도 중요하단 걸 새삼 실감했다. 여기가 대한민국 축소판이라 생각한다. 하루종일 있으면서 딥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주재기자라 특장점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1995년생 기자는 2023년 7월 강원도민일보 입사로 언론 경력을 시작했다. 서울서 자취하며 광고기획사를 다니다 건강악화를 느꼈고, 은퇴 후 춘천에 터를 잡은 부모님을 따라 내려왔다. 대학 전공인 언론학을 살려 구직을 하려다 채용 공고가 없던 현 회사에 불쑥 전화를 걸었다. “사람 안 뽑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끝에 “너처럼 뽑힌 애는 처음”인 기자가 됐다. 사회부에서 경찰출입을 하다 지난해 4월 양구 주재기자로 발령이 났다. 젊은 기자들을 보내보잔 방침이 있던 때였다. “양구의 모든 게 출입처라 거의 매일 공무원, 단체장, 이장님, 군 관계자를 만나고 명함 돌리고 얘기 듣기 바쁜” “맨땅에 헤딩”이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그 긴 밤을 지켜낸 이들 중엔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한 어떤 기자들이 포함된다. “왜 같은 군단인데 어떤 사단은 (군청에) 들어갔고 어딘 안 들어갔는지”, “결국엔 군의회 차원이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나서서 밝혀야 하는 것 아닌지” 할 일과 의문은 아직 많다. 박 기자는 “비현실적인 일로 상을 받고, 기사로 전방부대 군인들이 많이 위축된 게 있어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며 “어려운 여건의 지역언론사에 힘이 됐다면 좋겠다. 고작 1년9개월 된 기자라 부족함이 많은데 그걸 늘 잡아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많이 배워서 막힘없이 기사를 쓰는 그런 선배들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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