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주필도 극찬한 KBS '추적60분', 왜 결방돼야 했나
'중국인 간첩 체포설' 가짜뉴스 기원·확산 전말 살펴
KBS, 한 차례 결방 후 7일 방영... 편성 순연이유 해명 안돼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 최근 칼럼에서 “KBS ‘추적60분’이 언론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보도를 했다”며 극찬을 했다. 기자 경력 40년이 넘는 ‘대기자’가 자신의 기명 칼럼에서 타사 언론 보도를 이처럼 높이 평가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양 주필이 언급한 추적60분은 7일 방송된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편이다. 해당 방송은 ‘계엄의 기원’ 2부작의 후편으로, 전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던 ‘부정선거’ 주장의 기원과 진실을 추적한 데 이어 ‘가짜뉴스’가 확산하고 믿음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좇았다.
추적60분이 주목한 건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설’이었다. 12·3 계엄 당일 계엄군이 선관위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해커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는 음모론. 미군과 우리 정부가 모두 허위라고 했음에도 이런 주장은 중국의 선거 개입을 보여주는 증거로, 따라서 계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명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가짜뉴스로 ‘매도’하고 보도하지 않는다며 레거시 미디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유튜브로 몰려가고 있다.
‘소설’이 유튜브로 확산, 언론 보도가 되기까지
중국인 간첩 체포설의 기원은 어처구니없게도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살이 붙고, 유명 유튜버와 정치인 등이 확성기 역할을 하면서 소설은 ‘합리적인 의심’이 됐고, 마침내 1월16일 스카이데일리가 <[단독]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됐다>란 제목의 기사로 보도하면서 ‘사실’로 굳어졌다.
양상훈 주필은 스카이데일리에 대해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어떤 매체”라고 했지만, 엄연히 네이버·카카오와 검색 제휴를 맺은 언론사이며,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광고만 4억원 넘게 수주한 ‘종합일간지’다.
이 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수많은 유튜버가 ‘스카이데일리에서 보도했다’며 사실인 양 말을 옮겼고,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변호인도 1월17일 2차 변론에서 해당 보도를 언급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엄청난’ 보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추적60분은 해당 보도의 핵심 취재원이라 주장하는 안병희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안씨가 스카이데일리 기자와 주고받은 130여 건, 1200분에 달하는 전화통화 녹음과 메시지 등을 분석해 총 7건의 기사가 안씨를 통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안씨가 아무 근거도 없이 던진 말을 기자가 “얘기되네요”라며 기사로 받아쓰고, 안씨에게 기사 교정과 검수까지 받은 정황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더 놀라운 건 안씨가 이 모든 게 다 “거짓말”이라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미국 CIA 요원’이라 소개하고 정치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던 안씨는 제작진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다 속인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여론조작을 넘어 “여론 형성까지 성공”했다면서 정치인과 언론은 물론 정보기관 출신까지 속였으니 “저한테는 좋은 그림”이라고 했다. 이런 능력이 있는 자신은 정보기관에서 데려갈 만한 “인재”라며, 만족스러운 표정도 지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등이 ‘사기 탄핵’을 주장하며 중국과 공산당을 강력 규탄하는 근거로 활용된 보도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언론”이라며 치켜세운 그 매체의 보도가 조작된 것이었음이 핵심 당사자의 고백으로 드러났다. 물론 스카이데일리는 특정 정보원의 얘기만 가지고 기사를 쓴 게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다른 근거를 대지도 못했다.
편성 순연의 진짜 이유, 아직 알 수 없어
추적60분은 이처럼 허무맹랑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확산해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기록해 보여줬다. 특히 안씨의 거짓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며 마침내 진실을 털어놓게 한 제작진의 그 인내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48분짜리 풀영상엔 2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PD님 비위가 진짜 좋으시네”부터 “제작자분들의 용기에 정말로 큰 박수를 보낸다”, “존경하고 감사드린다” 등의 상찬이 넘친다.
문제는 이 뛰어난 방송을 하마터면 보지 못할 뻔했다는 것이다. 원래 2월28일 방송이 예정됐던 것을 KBS 경영진이 하루 전 편성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처음 들은 이유는 “3월1일 방영 예정이었던 <다큐온> ‘3·1절 특집’ 내용이 좋아 하루 일찍 방송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다음에 들려온 이유는 “3월1일 광화문과 여의도에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추적60분 방송이 극우단체를 자극해 그들이 KBS로 몰려와 난동을 부릴 것이 걱정된다는 설명”이었다고 한다.
시제까지 3·1절 당일 방송에 맞춰 기획·제작된 다큐를 굳이 하루 앞당겨, 하필이면 추적60분 시간대에 방송하겠다는 결정은 다큐온 담당 PD조차 납득하지 못했고, KBS PD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KBS는 아직 제작이 완료되지 않아 시사도 하지 못한 3·1절 다큐가 “수작”이라는 이유를 붙여 추적60분 ‘편성 순연’을 통보했다.
물론 한 주 늦게 전파를 탔지만, 2월28일 방송이 ‘결방’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결정된 과정과 이유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 이에 언론노조 KBS본부가 임시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KBS PD협회도 사태의 전모를 확인하기 위해 긴급TV위원회를 열 것을 요구했으나 KBS 사측은 방송법 4조가 규정한 ‘편성의 자유’를 주장하며 “편성 책임자의 고유 권한인 방송 편성권에 해당”하는 사안이어서 공방위나 편성위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편성권을 인사권·경영권과 같이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비슷한 일이 10년 전 KBS 보도국에서도 있었는데, 편성규약에 따라 KBS 기자협회장이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한 것을 두고 보도국 간부들이 “편집권 침해”라 주장했던 일이다.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정지환씨는 현재 KBS 감사로 내정된 상태다.
그러나 방송법에는 편성권이나 편집권이란 표현은 물론이고 이것이 ‘누구’에 속한 것인지를 명시한 규정이 없다. 그 주체는 ‘방송사업자’이고 이를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편성 책임자’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는 경영진의 배타적 ‘권한’이 아닐뿐더러, 애초에 방송법 4조 자체가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제작자의 문제 제기 자체를 차단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방송법 4조4항은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해 공표하도록 하고 있고 그래서 KBS 편성규약에도 “KBS는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고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하여 ‘편성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운영한다”는 규정이 있다. KBS본부와 PD협회가 각각 요구한 공방위, TV편성위도 이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KBS PD협회가 11일 성명에서 지적한 대로 편성위는 일방의 요구가 있으면 “지체 없이” 개최되어야 하며, 긴급을 요하는 경우 “24시간 이내에” 열어야 한다. 편성 관련 안건은 다룰 수 없다는 사측 설명도 맞지 않다. 해당 규약 10조엔 편성위 기능으로 “편성·보도·제작 과정에서 제작 자율성의 침해 논란이 있는 경우” 등이 포함돼 있다.
오히려 관련 규정에 근거한 합당한 문제제기를 무시하는 것이 방송법 등 취지에 어긋나는 것일 수 있다. 공정방송도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며 MBC노조 파업에 무죄를 확정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방송이 “절차적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을 두고 있음에도 “사용자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하여 방송의 제작, 편집 및 송출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 관련 규정에서 정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아울러 재판부는 어떤 결정에 대해 “방송제작 업무 종사자의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이 경우 제기된 문제점이 당사자가 합의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비로소 방송의 공정성이 준수되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합의한 절차’에 따른 ‘합리적인 문제 해결’이 박장범 KBS 사장이 최근 창립기념사에서도 강조한 ‘공정’ 방송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예정일에 방송되진 못했지만, 어쨌든 방송은 정상적으로 나가지 않았냐며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미 예고까지 나간 방송이 제때 방송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사정이 있었다면, KBS는 그 이유를 제작진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합리적으로 이뤄졌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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