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추적60분’ <계엄의 기원 2부-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예고편 화면. 28일 방영 예정이었으나, 방송 하루 전 편성본부로부터 추적60분 제작진은 편성 삭제 통보를 받았다.

28일 방영 예정이던 ‘추적60분’ <계엄의 기원 2부-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편이 전날 오후 사측의 결정으로 급작스레 편성 삭제됐다. ‘프로그램 내용이 극우 집회 세력을 자극해 KBS가 물리적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게 추적60분 PD들에게 전달된 편성 삭제 이유였다. “공영방송인 KBS가 일부 폭력성향 단체들의 공격이 두려워,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맞느냐”는 추적60분 제작진 일동 성명과 KBS PD협회 성명 등이 28일 발표되고, 결방 조치를 규탄하는 긴급 피케팅이 사내 곳곳에서 진행되는 등 내부 반발이 거세다.

편성 삭제된 추적60분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은 '계엄의 기원 2부작' 중 마지막 편으로, 일부 시위 현장에서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대중들에게 퍼져나가는지를 추적한 내용이다. 추적60분 제작진, 언론노조 KBS본부 성명 등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 제작은 거의 완료됐으며, 추적60분을 담당하는 교양다큐1국장까지도 방송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28일로 방송 날짜가 고지된 예고편도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계엄의 기원 2부작의 첫 편, 부정선거 음모론을 다룬 <선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높은 추적60분 시청률을 기록해 KBS 내부의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기도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사측의 '추적 60분' 편성 삭제 결정에 항의하는 피케팅을 진행했다. /박성동 기자

하지만 방송을 하루 앞둔 27일 오후, 추적60분 PD들은 편성센터(멀티플랫폼센터)로부터 삭제 통보를 받았다. 제작진이 전달받은 삭제 사유는 △3월1일 방송 예정이던 <다큐온> ‘3·1절 특집’ 프로그램의 내용이 좋아 하루 일찍 방송하고 싶다는 것 △3월1일 광화문과 여의도에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추적60분 방송이 극우단체를 자극해 KBS로 몰려와 난동을 부릴 것이 걱정된다 등 2가지였다.

이에 KBS 구성원은 “비상식적이고 어이없는 결방 조치”라고 반발했다. 28일 추적60분 PD 15명은 일동 성명을 내어 “특히 편성 삭제 논의 과정에서 국장, CP를 포함한 교양다큐센터의 제작진은 철저히 배제됐다. 제작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비상식적 결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편성 삭제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 성명에서 “공영방송인 KBS가 일부 폭력성향 단체들의 공격이 두려워,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맞느냐. 마치 서부지법 사태를 예측한 판사들이, 난동을 피하고자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결정을 미루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결국 회사가 원했던 건 어떤 반향도 없는 조용한 방송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언론노조 KBS본부가 진행한 ‘추적60분 편성삭제 규탄’ 피케팅에서 추적60분 제작진인 김민회 PD는 “혹시라도 제작진이 반응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제작진이 감당할 몫이지 경영진들이 예단해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며 “이번 같은 선례가 남아 저희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넘어가면 다음에는 더 쉬운 이유로, 더 작은 이유로 방송을 막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추적60분 제작진은 KBS 신관 7층 편성전략본부장실 앞에서 항의 피케팅을 벌였고, KBS PD협회는 KBS 본관 사장실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KBS '추적60분' 제작진이 28일 아침 서울 여의도 KBS 신관 7층 편성전략본부장실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KBS본부는 사측에 추적60분 결방 관련 긴급 공방위 개최를 요구했으나, '편성 사항에 해당돼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 언론노조 KBS본부도 이날 관련 성명을 내어 “편성 측에서 일방적으로 추적 60분 편성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편성 삭제 내용은 제작진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심각한 제작 자율성 침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편성 삭제가 이뤄진 당일(27일), 임원회의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방송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지금으로부터 1년 전 KBS에서는 '다큐인사이트-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가 벌어졌고, 다시 계엄을 다루는 추적60분이 편성에서 삭제됐다. 낙하산 사장이 가고 권력에 아부해 사장 자리를 꿰찬 박장범이 왔지만, 여전히 KBS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