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서부지방법원에서처럼 또 한 번 폭동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경찰이 선고 당일 벌어질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지만 서부지법 폭도들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현장 기자들의 불안은 높다. 구체적인 취재 지침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 기자들의 위험취재를 위한 행동 지침은 전무하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여성기자협회 등이 2023년 공동으로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을 제정했고, 한 해 앞서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초점이 트라우마 예방과 관리에 맞춰져 있다.
1월 서부지법 폭동 이후에는 그나마 방송기자연합회와 영상기자협회가 현장에서 지킬 몇 가지 유의 사항을 발표했다. 국제언론단체인 국제기자연맹(IFJ)과 국경없는기자회(RSF), 아시아태평양방송연합(ABU), 해외 저널리즘 연구기관인 다트센터(Dart Center) 등은 집회·시위와 폭력 사태 취재를 위해 현실적이고 세세한 행동 지침을 제안하고 있다.
지침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위험할 때는 기자 신분을 감추라는 부분이다. 국제기자연맹은 “기자증은 항상 가지고 있되 불필요한 관심을 끌면 숨기라”며 “군중을 더 자극하게 되면 기자라고 하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는 “눈길을 끌지 않게 가능하면 메모를 적게 하고 소속사 로고가 있는 노트를 쓰지 말라”고 한다.
경찰이 가까이 있다면 보호받기 위해 기자 신분을 드러내는 완장이나 조끼를 착용하고 아니라면 재빨리 떼어내야 한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은 신분을 숨겨야 하는지 혼란을 겪었다. 일부는 시위대처럼 보이려고 태극기를 들고 다닌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렇다고 시위의 일부가 돼서는 곤란하다.
행동 지침은 “상황을 볼 수 있다면 군중 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시위대 옆을 따라 걸으라”고 조언한다. 인터뷰도 시위대 외곽에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탈출도 쉽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사이에 끼면 크게 다칠 수 있다. 논쟁적이거나 도전적인 질문도 피해야 한다. 군중에 휩쓸리면 강물에서 빠져나오듯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대각선으로 나와야 한다.
이 외에도 국제언론단체들은 하루 먹을 음식은 챙기라거나 최루탄은 매우 뜨거우니 땅에 떨어지면 잡지 말라는 등 기초 상식도 제시한다. 일단 폭동이 벌어지면 무언가라도 줍는 행동이 공격 오해를 사 체포될 수도 있다. 콘택트렌즈를 끼면 최루가스가 눈을 더 많이 손상할 수 있어 안경을 쓰되 스트랩을 착용하는 편이 낫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트라우마 저널리즘 분야를 연구하는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여러 지침을 종합해 우리 상황에 맞게 정리(링크)하기도 했다. 서부지법 폭도들은 카메라를 부술 뿐만 아니라 촬영본을 뺏어갔는데 여분의 메모리카드를 챙기고 휴대전화를 추가로 챙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중요 정보는 백업하고 잠금장치를 해둬야 한다.
정 이사는 “평화적인 집회·시위 문화가 생긴 건 최근 들어서일 뿐 한국에서도 과거 최루탄과 화염병, 투석, 강압적 진압이 오랫동안 행해졌다”며 “집회·시위 취재는 늘 위험하다는 게 중요한 전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껏 행동 지침이 없었던 데 대해 “위협당하는 것을 언론 직무의 일부로 감내해야 한다는 의식을 바꾸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에서 의료진 폭행은 가중해서 무관용으로 처벌한다”며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진을 폭행하면 다른 환자와 보건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를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기자 개인에 대한 공격은 민주주의를 받치는 언론의 기능을 저해하는 것이고 시민이 언론을 통해 얻는 권리에 대한 폭력”이라고 말했다.
정찬승 이사가 정리한 ‘집회 및 시위 취재를 위한 안전 가이드’ 전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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