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포로 인터뷰한 기자 "국정원 기획설? 정부엔 비밀로"

정철환 조선일보 특파원, 러 파병 북한군 포로 세계 첫 인터뷰
연이틀 1면 보도 이어 21일 취재기 공개
"편집국 가용인맥 총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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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에 파병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 두 명을 인터뷰 한 조선일보 기사가 지난 19~20일 큰 파장을 일으켰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의 세계 첫 언론 인터뷰’를 두고 일각에선 국정원 기획설 등까지 제기하는 가운데 실제 인터뷰를 진행한 정철환 조선일보 유럽 특파원은 21일 “모든 과정은 한국 정부에 비밀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취재기(<키이우 4번 찾아...대통령 인터뷰보다 값졌던 포로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음모론을 일축했다.

19일자 조선일보 1면에 담긴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인터뷰 기사.

정 특파원은 이날 기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매체, 한국정부, 미국, 나토까지 북한군의 파병 및 전투 참여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이를 날조라고 주장하는 ‘가짜 뉴스’가 퍼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기자의 일은 현장에 있다. 아무리 뛰어난 AI가 나와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취재 이유를 밝혔다.

이날 취재기엔 첫 인터뷰 기사에서 “북한군 포로 인터뷰는 복잡한 협의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로 간략히 설명됐던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도 부연이 이뤄졌다. 정 특파원은 “북한군 포로를 직접 만나기 위해 우크라이나 취재 경험이 있는 편집국 내 여러 기자들이 총동원됐다. 이들이 가진 우크라이나 내 인맥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와 언론, 재계 인사들과 전방위로 접촉하며 북한군 포로에 접근할 방법을 물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사가 나간 후 일각에서 ‘국정원 기획’ 인터뷰라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모양이지만, 사실 이 모든 과정은 한국 정부에 비밀로 했다. 국내 정치 상황들이 빠르게 바뀌면서 관련 부처들이 북한군 포로 취재와 관련해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인상을 받아서다. ‘우리 정부가 연관되어 봤자 이 취재는 물론 정부에도 민폐가 된다’는 판단이 취재팀 내부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21일자 조선일보 2면에 담긴 북한군 포로 인터뷰 취재기.

이후 정 특파원은 프랑스 파리에서 비행기와 기차 등으로 총 15시간 거리의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넘어가 “10여일간 북한군 포로 문제에 가까운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정 특파원의 키이우 방문은 네 번째였고, 그 중 한 번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한국 언론 최초로 인터뷰한 기회였다.

정 특파원은 “과정에서 알게 된 많은 우크라이나 내 친한(親韓) 인사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며 “우크라이나의 한 지한파 유명 언론인은 ‘젤렌스키 대통령실의 아무개가 ‘키’를 쥐고 있다고 한다'며 ‘북한군 포로를 만나려 전 세계 여러 유명 매체들이 집요하게 그를 접촉 중인데, 꿈쩍도 안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줬다. 이런 조언과 도움 하나하나가 발판, 그리고 사다리가 됐다”고 했다.

특히 “어렵사리 마련된” 우크라이나군 고위 인사와 만남이 결정적이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대화 과정에서 “북한군 파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들도 있다”고 전하니 해당 인사가 “여기 우리가 생포한 포로도 있는데 무슨 소리냐”, “직접 포로를 만나 보겠느냐”, “오늘 중엔 힘들 것 같고...연락을 줄 테니 좀 기다려 보라”고 제안했다는 것이었다. 정 특파원은 “그렇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고 적었다.

20일자 조선일보 1면에 담긴 북한군 포로 인터뷰 기사.

실제 만남과 대화 내용, 분위기는 먼저 출고된 인터뷰 기사에 담긴 대로다. 한국의 기자는 20대 초중반 북한군 청년과 만나 “다른 생각은 일절 말고 일단은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자”고 했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 또 올 수 있냐. 바깥 소식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취재기에 적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김치 컵라면, 초코파이를 공수해 챙겨갔다는 정 특파원은 기사 말미 “한국에선 흔해 빠진 담배와 라면, 초코파이 몇 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7000km 떨어진 유럽의 전장에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두 청년에겐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전해 줄 작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그들에게 끈질기게 살아야 할 희망을, 또 더 많은 북녘 젊은이들에게 죽음이 아닌 생명을 전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포로수용소의 두 청년을 만나야 할 이유로는 충분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지난 19~20일 러시아에 파병됐다 지난달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두 북한군 청년과 단독 인터뷰를 선보였다. 20대 초중반의 리씨, 백씨를 각각 인터뷰한 <“北에서 포로는 변절, 한국 가고 싶다” 전장서 붙잡힌 북한군 인터뷰>, <“내가 전쟁터에 있는지도 모르는 홀어머니, 모시러 돌아가고 싶지만...”> 등 기사다. 해당 보도는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에 첫 언론 인터뷰란 의미를 지닌다. 파병 북한군이 모두 폭풍군단 소속으로 알려져 온 것과 달리 두 청년은 “정찰총국 소속 병사”라고 밝혔다.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쿠르스크의 북한군을 감시·통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한국군이 무인기로 북한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혔다.

특히 인터뷰 과정에서 두 포로는 각각 “우선은 난민 신청을 해가지고 대한민국에 갈 생각입니다. 내가 난민 신청을 하면 받아줄까요?”, “물론 첫 째는 고향에 가고픈 생각이고...고향으로 가지 못할 경우에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그것도 생각해서...”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요청 시 전원 수용한다’, 유엔인권기구는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송환에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각각 밝히는 등 파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2년 5월20일자 조선일보 사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이들 지역을 취재한 정철환 조선일보 유럽특파원을 인터뷰한 기사가 담겼다. /조선일보 사보

해당 보도를 두고 포로의 얼굴 공개 등에 대해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 편집자주를 통해 “보도 과정에서 포로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일부 정보 역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며 “전쟁 포로에 관한 국제법 규정 등에 따라 포로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진·동영상은 이미 우크라이나 정부가 두 사람 얼굴을 여러 차례 드러냈고, 한 달 이상 세계적으로 퍼져 모자이크 등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판단해 편집 회의를 거쳐 모자이크 없는 사진과 동영상을 쓰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린다”고 덧붙였다. 또 “공개한 포로의 개인 신상 관련 정보 중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공개하지 않은 사실은 없다. 모든 인터뷰는 한국 기자임을 밝히고 진행했다”고 했다.

1975년생인 정 특파원은 2002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2006년 조선일보로 이직해 사회부 경찰기자, 사회정책부를 거쳤고 주로 경제부와 산업부에서 일해왔다. 2020년 12월부터 조선일보 주말 프리미엄 경제섹션인 위클리비즈 편집장으로 약 1년간 일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 말 조선일보 유럽 특파원으로 인사발령이 난 후 프랑스 상주 근무를 시작했고, 그간 젤렌스키 단독 인터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쟁, 튀르키예 대지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위험지역 현장 취재를 적극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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