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래?”, “X가리에 뭐가 들었냐”, “네가 잘한다고 생각하냐”, “(술자리에서) 내가 너 같은 X같은 새끼랑 겸상해야겠냐”, “너희 기사 다 X같다”, “그 대학 나온 거 맞냐”, “유산해도 할 일 다 했다”, “오랜만에 보니 살쪘다”, “남자친구랑 휴가 가서 좋았어?”
복수의 언론사 노동조합이 지난 2022~2024년 사이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설문조사 결과에 담긴 언어폭력 사례다. 언론사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최근 MBC에서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숨진 사건이 벌어지며 프리랜서 근로환경, 나아가 언론사 조직문화 전반이 도마에 오른 상황이다. 사내외 제도 마련이 우선돼야겠지만 결국 위계적 집단주의, 남성중심주의, 친소관계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조직문화 개선 없이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13일자 조선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 노조가 지난 10~12일 실시해 조합원 172명 중 54명(31.4%)이 참여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 가장 많이 거론된 유형은 폭언이었다. 상·하급자 간 최소한의 존중 없이 지시란 명목으로 이뤄지는 막말, 단톡방이나 사무실 같은 공개 자리에서 이뤄지는 질책, 후배들에게 과도한 업무 떠넘기기 등이 지목됐다. 언어폭력에 대해 조선일보 노조는 언론계에서 가장 많이, 꾸준히 지적을 해온 쪽이다.
2022년 3월24일자 노보 <우리는 다 같은 직장동료입니다> 기사엔 ‘사무실에서 또는 전화로 폭언·질책하는 데스크’, ‘호통, 면박, 폭언으로 3개월 간 두통약 복용’, ‘여자랑 일하기 싫다는 발언’ 등이 포함됐다. 2023년 2월23일자 노보 <당신의 한마디, 누군가에겐 ‘평생 상처’> 기사에선 “욕설·고성이 들리는 횟수만 놓고 따지면 10년 전보단 줄었겠지만, 후배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언어폭력’ 문화 전반이 결코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2023년 8월25일자 한경노보를 보면 특정 언론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노조가 진행해 조합원 314명 중 119명(37.9%)이 참여한 당시 언어폭력 설문결과에선 10명 중 3명(26.9%)이 최근 1년 내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목격자(20.2%)까지 포함하면 절반이 직·간접 경험이 있었다. 유형별로는 ‘대면 및 전화상 모욕·무시·조롱’이 44.9%로 가장 많았다.
언어폭력, 괴롭힘의 피해자인 기자들은 통상 건강 악화, 근로의욕 저하를 겪고 퇴사를 고민한다. 2023년 1월 당시 연합뉴스노보엔 2018년 입사자 중 11명이 퇴사했다는 결과가 담겼다. 4년차 기자가 퇴사하며 내부에 올린 글엔 “폭언, 욕설, 인격모독 등 전근대적인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만연”하다는 비판이 포함됐다. 괴롭힘, 성폭력 가해자인 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안일한 인사조치에 그해 연말까지 내홍이 이어지며 169명의 기자가 기명 성명을 내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환경에서 때론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2년 말 뉴시스 12년차 기자가 새 부서 발령 7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서장이 가한 직장 내 괴롭힘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사측은 인사위 개최를 예정했다가 부서장이 사표를 제출하자 징계 없이 수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3월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부서장의 언어적 괴롭힘, 차별적 행태 등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진다.
소위 진보 매체에서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된 일은 정치성향을 넘어 언론조직 전반에 깃든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겨레에선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한 기자에게 통상을 넘어선 증빙을 요구했다며 지난해 12월 노동청에 신고가 접수되는 일이 있었다. 사측은 사내외 분란을 사유로 이후 뉴스룸국장에게 경고, 부국장에겐 견책을 각각 결정했고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은 조치에 반발한 100명 넘는 구성원이 연서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돌봄휴직 부당 반려 건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고 “관리자들이 사적 감정으로 권한을 남용하는 관행을 바로잡지 못한 결과”라며 개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는 직장 내 괴롭힘 설문결과를 공개한 지난해 12월9일자 노보에서 친소관계에 따른 조직문화 속에 괴롭힘이 제지 없이 계속되고, 강점으로 알려진 수평적 조직문화가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언론사 노조에선 제도 마련 요구가 이어져왔다. 조선일보 노조의 최근 설문에선 응답자 54명 중 38명(70.4%)이 ‘다면평가 시행’(상향 평가)을 꼽았다. 한국경제신문 노조에선 2023년 조사 당시 ‘부서이동 등 피해자와 분리’(33.7%), ‘견책·감봉 등 징계’(25.4%)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앞선 한겨레 노보에서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노무사는 언론사 내부 조사위원이 피신고인과 가까울 고연차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거론, “언론사야말로 외부 인력이 조사하는 게 맞다”고 했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석연구위원은 “예전 언론사 직장 내 괴롭힘이 성적 폭력 중심이었다면 최근엔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세대, 성별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문제가 됐고, 언론사여서 더 목소리가 더 나오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필요하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연공서열이나 남성중심문화 등의 과거 언론사 조직문화를 결국 바꿔야 한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특히 리더의 결정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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