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는 애국가에 등장한다. 국보 1호 숭례문, 서울 광화문, 수원 화성 등 문화재의 기둥과 서까래, 현판에 쓰였다. 한국 사람은 이 나무 밑에서 태어나 이 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속담도 있다. 뾰족한 바늘 모양 잎의 상록수, 소나무 얘기다. 한국인의 삶, 정서와 뗄 수 없는 이 ‘푸르른’ 나무들이 재선충병으로 최근 몇 년 새 전국에서 ‘붉게’ 말라 죽고 있다. KBS춘천 박상용·최중호 기자는 지난해 12월 초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 <붉은 소나무의 비밀>편을 통해 이 사안을 다뤘다.
취재 전반을 담당한 박 기자는 2일 통화에서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에서 춘천으로 오다 보면 도로변 소나무가 이미 상당히 말라 죽었다. 어릴 적부터 소나무가 곁에 있는 건 당연했는데 이게 사라진다는 생각을 저도 잘 못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릉, 양양, 동해안 지역 산불 재해를 다뤄오며 산림 아이템은 전체 현황, 예산 흐름을 다루는 종합적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유의미한 데이터를 산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가장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재선충병은 임업계에서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려온 병이다. 유충이 소나무에 깐 알이 영양분, 수분이 오가는 관을 막아 치사율 100%로 말라죽게 한다. 1988년 부산 한 동물원에서 쓸 목재를 일본에서 수입했는데 거기서 전국으로 번졌다는 게 유력한 통설이다. 최근 2~3년 새 대구와 경북, 경남에선 재선충병 특별방제지역 지정 움직임이나 수종 변경 시도가 잇따라 나올 정도로 확산세가 심각하다. 2023년 말 <수의계약으로 뭉친 녹색 카르텔> 보도로 산림사업의 문제적 행태를 지적했던 그에게 이 소식이 들려오며 “속편” 준비가 본격화됐다.
1차 원인은 재선충병이지만 이면에 놓인 산림 당국의 관행이나 제도로 방제가 실패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산림사업 전반의 흐름을 보기 위해 2024년 연초부터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매달렸다.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8년 간 사들인 재선충병 방제농약 구입내역 2800여건을 분석해 1000억원 어치 중 약 540억원이 수의계약으로 구입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감사 등에서 ‘특혜’, ‘예산낭비’ 지적이 나왔지만 산림청 행태는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 5년간 전국 지방산림청과 국유림관리소, 지자체가 수행한 산림사업과 전국 142개 산림조합의 수주, 발주 내역 6만4000여건까지 모은 최초의 전수 분석을 1년 간 진행하며 상당 산림사업에서 이 행태가 반복됨도 확인했다.
여기서 데이터는 보도내용을 넘어 취재 지침으로 기능했다. 일례로 효과가 6년 간 지속된다는 1리터에 40만원이 넘는 초고가 농약을 8년간 150억원 어치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했는데 약효 여부를 검증했다. 전국 10여개 지역에서 솔잎과 가지를 채취해 잔류 농약을 확인했는데 검출률은 20%였다. 도입 과정, 현장사용 방식, 약효 실험까지 모두 부실했다. 충청남도 태안군 산속에서 버려진 ‘초고가 농약병’ 100여개를 포착하기도 했다. 박 기자는 “환경오염 예방을 위해 농약병은 반드시 수거해 지정 장소에 폐기해야하는데 산속에 무단으로 버려진 것”이라며 “취재 내내 ‘재선충 방제를 완벽히 수행하면 이듬해 사업이 축소되는 현장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게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데이터란 지도는 존재했지만 발로 뛰는 현장 취재는 별개의 일이었다. 지난해 4월부터 강원, 경기, 충청, 영·호남, 제주 등 전국 20여개 시군 방제지 30여곳을 6개월 간 헤매며 두 기자는 지침에 따라 ‘잔가지를 쳤는지’, ‘감염목 약품처리를 했는지’를 살폈다. 촬영기자 30년차인 최 기자는 “인대가 늘어났을 때도” ENG와 고프로, 드론장비를 짊어지고 깊은 산속 현장을 담는 노장 투혼을 보였다. 그는 1월31일 통화에서 “소나무를 워낙 좋아하는 민족이지 않나. 어릴 적 소풍에,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주변에 늘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었는데 경주에서 석굴암 근처까지 내려온 상황을 보며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전반에서 자태를 잘 담으려 신경 썼다”고 했다.
1976년생인 박 기자는 취재기자로, 1967년생인 최 기자는 촬영기자로 각각 2006년, 1995년부터 KBS춘천에서 일해왔다. 뉴스나 특집은 같이 한 적이 있지만 다큐 프로그램엔 이상하게도 연이 없었다. “이건 선배랑 하고 싶다”는 제안에 최 기자는 “퇴임이 멀지 않아 마지막 다큐가 될 듯했는데 작품을 남기자, 좋아하는 후배랑 상도 받아보자 싶어서 체력 걱정이 있었지만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해당 보도는 최근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412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방제 사례를 살피러 일본 아키타현 출장을 간 둘은 현지 코디네이터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도 겪었다. 금방 회복해 취재에 지장은 없었지만 “도쿄도 아닌 시골에서 국제 미아가 된 오십줄 기자 둘이 공원에 앉아 빵을 뜯으며 ‘어떡하지’ 고민한” 에피소드다. 1년여 준비 끝에 지난해 12월3일 밤 방영된 다큐는 비상계엄령 선포로 중단됐다가 이틀 후 다시 방송되기도 했다.
박 기자는 “지역언론에서 산림 아이템을 메인 이슈로 깊게 다루긴 쉽지 않다. 보이지 않지만 효용이 큰 가치를 다루는 측면에서 뜻이 맞는 기자,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을 나눌 장이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점이 모이면 선이 될 텐데, 일단 저는 앞으로도 산과 숲에 대한 기사를 틈틈이 작성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최 기자는 “희로애락을 함께 한 소나무가 자연재해와 인재가 결합해 더 많이 빨리 죽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다큐를 밑거름으로 방제 정책이 잘 설계돼 저는 없겠지만 나중에 박 기자나 다른 후배가 소나무를 어떻게 살렸는지를 다루는 <푸른 소나무의 기적> 후속편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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