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대통령 지지자들이 취재진을 상대로 조직적 폭력을 행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취재 장비가 파손되거나 10여명의 취재진이 부상을 입는 등 피해가 발생했고, 일부 언론사는 폭동 가담이라는 악의적 허위사실이 유포되며 또 다른 방식의 온라인 공격을 당했다.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지지자들은 구속영장 발부 직후 법원 후문 인근에서 지나가는 기자를 상대로 언론사 소속을 확인한 뒤 조직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이들은 “어디 방송국이냐”, “명함을 달라”며 기자를 둘러싼 뒤 집단구타를 했고, 취재 영상이 담긴 메모리카드를 뺏거나 휴대전화를 강제 초기화하는 등 취재 내용 말소를 시도했다.
언론사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MBC였다. MBC는 18일 오후 4시40분 서부지법 건너편 건물에서 취재하던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이 첫 폭행을 당한 데 이어 19일 새벽 3시쯤에는 또 다른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이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 사고로 영상기자는 뒤통수와 목, 허리, 왼손에 찰과상을 입었고 함께 있던 오디오맨은 얼굴 부위를 장시간 구타당해 왼쪽 눈이 부어오르는 피해를 입었다. MBN 취재진도 비슷한 시각 지지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취재진은 이 폭행으로 얼굴 열상 및 손목과 발목 인대 파열 등의 부상을 입었고, 영상기자는 전치 3주의 상해 진단을 받기도 했다.
KBS 영상기자와 오디오맨 역시 같은 시각 10여명의 시위대에게 약 2분간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영상기자는 이로 인해 무릎 내측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고, 이 과정에서 장비 일부가 파손됐다. KBS 영상기자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몇 명은 무슨 의도인지 카메라를 뺏으려 했고 그걸 막는 과정에서 머리채도 잡히고 얼굴도 좀 맞았다”며 “과열된 집회에 가면 지나가다 한두 대 맞는 일은 좀 있었는데 이렇게 구타를 당한 건 처음이다. 나름대로 멘탈 관리를 하고 있지만 비슷한 현장에 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기자들도 폭언과 협박에 시달렸다. 한 사진기자는 20~30명의 시위대에 둘러싸여 멱살이 잡히고 밀쳐지는 등 “가벼운 폭행”을 당했다 증언했고, 사회부 기자 한 명도 길모퉁이로 끌려가 휴대전화 초기화를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회부 기자 역시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폭언과 협박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취재 장비 피해도 상당했다. MBC는 삼각대와 메모리카드 4장, ENG카메라 배터리 2장을 시위대에 빼앗겼고, 취재진의 안경과 휴대전화까지 탈취 당했다. KBS는 새 카메라가 심하게 훼손되는가 하면 송출장비 케이블이 파손되고, 사다리를 분실하는 피해를 입었다. MBN은 메모리카드를, 연합뉴스는 사원증을, 한겨레신문은 사다리를 탈취 당하기도 했다.
한편 현장 폭력과는 별개로 온라인상에서는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언론사 공격도 이뤄졌다. ‘소화기를 들고 유리문을 부수려 한 인물, 판사 집무실 문을 발로 차고 난입한 남성이 JTBC 기자’라는 허위 정보가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JTBC는 이에 즉각 입장문을 내고 “해당 시각에 거론된 기자들은 서부지법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취재 중이었음이 명확히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또 이미 해당일 촬영 원본을 법원에 제출했다며, 허위사실 유포자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론계 역시 폭행 가담자들에 대해 일제히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향후 일주일간 피해 상황을 접수받은 뒤 미디어 전문 로펌을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호재 사진기자협회장은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폭행 장면이 담긴 사진 등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영상기자협회도 각 사별 대응 추이를 지켜본 뒤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은 “향후 서울구치소와 헌법재판소, 국회 등에서 유사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취재진 안전 확보를 위해 경찰 등 당국과 구체적인 대책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각 언론사들도 입장문을 통해 폭력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KBS는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는 취재진을 폭행한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MBC는 “단순 폭력이 아닌 헌법적 핵심 가치를 유린한 폭거”라며 “폭도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역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태”라며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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