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도 예상 못한 계엄… 예정됐던 신년기획 급수정

종합일간지 9곳 중 6곳, 신년기획으로 '개헌·대통령제 개편'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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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는 언론사들의 신년기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기치 못한 정치적 격변에 언론사들은 당초 준비했던 기획을 철회했고, 서둘러 정치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춘 신년기획을 취재해 선보였다. 그 결과 9개 종합일간지 중 무려 6곳에서 ‘개헌’과 ‘대통령제 개편’을 다룬 기획이 나왔다.


언론사들은 관련 기획에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새로운 정치 체제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국민일보는 ‘리뉴얼 대통령제’란 이름 아래 현행 대통령제·선거제의 문제점과 개혁 방안, 권력 구조 개편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신년기획으로 선보였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계기로 1987년 개헌 이후 유지돼 온 지금의 정치 체제가 중대 기로에 섰고,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 헌법의 시효가 다 됐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남도영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지금의 정치 체제가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고 한 번쯤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계엄 사태가 논의를 촉발시켰다”며 “앞으로는 임기 5년을 마무리하는 대통령이 나오기가 힘든 구조가 돼버렸다. 지금의 체제를 어떤 식으로든 바꿔야 되지 않을까, 마침 학자들 사이에서도 개헌 이야기가 나와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도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신년기획으로 ‘대통령제, 새로고침’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했다. 내란이라는 역대 최악의 헌정 위기가 과연 인물의 문제인지, 제도의 문제인지, 아니면 두 문제가 만난 비극인지 분석하는 기획이었다. 이번 기획엔 엑설런스랩 기자 6명 전원이 투입됐고, 이들은 약 2주간 전문가들을 취재해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김혜영 한국일보 기자는 “계엄 사태 이후 준비하고 있던 신년기획 혹은 관련 기획을 중단하고 1월1일자는 다른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뉴스룸의 고민이 있었다”며 “이런 문제를 다루다 보면 결국 법이나 제도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자칫 학계에서 이미 오랫동안 논의돼 왔던 문제를 다시 소개하는 낡은 기사가 되기 쉽다. 그동안의 진전된 논의 위에서 좀 더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을까, 그 부분을 제일 고민하고 에너지를 많이 쏟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며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도 눈에 띄었다. 특히 세계일보는 각계의 1945년생 해방둥이 6명을 만나 한국 사회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한편 ‘디아스포라’에 천착해 재외동포의 현 상황을 조명하는 기획을 선보였다. 디아스포라는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타국에서 살아가는 집단이나 공동체를 일컫는 말로, 세계일보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재일동포, 중국 조선족 등을 현지서 직접 취재했다.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특파원들이 출장을 가기 용이하다 보니 도쿄, 베이징 특파원이 기획에 참여했고 사회부에서도 한 명이 중앙아시아 출장을 갔다”며 “사실 이전엔 디아스포라 개념도 잘 몰랐는데, 인터뷰를 해보니 이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여러 특수성을 고려할 때 낯선 환경을 포용하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 디아스포라처럼 우리 역시 평화적 공존, 다원성,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더욱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 화두였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은 신년기획을 통해 트럼프 재집권이 한국 경제와 세계 질서에 미칠 영향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또 일부 언론사들은 올해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의제를 신년기획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인공지능(AI), 서울신문은 잘파(Z세대+알파세대), 한겨레는 헌 옷, 한국일보는 K뷰티에 주목했고, 이를 토대로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치밀하게 포착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1995년 농산물 시장 개방 이후 30년간 쌓여온 한국 농업의 위기를 심층 취재를 통해 신년기획으로 풀어냈다. 전남 신안 쌀농가, 충남 홍성 양돈농장, 경북 김천 포도농가, 경남 남해 마늘농가를 찾아 수입 농산물, 초고령화, 기후위기로 촉발된 ‘복합위기’가 우리 먹거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는 “사실 기획 취재를 시작한 게 지난해 10월 말인데 얼마 뒤 트럼프가 당선되고 또 계엄 사태까지 일어나 신년기획이 바뀔 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농민들이 먹거리 위기 해결을 촉구하러 12월22일 트랙터로 남태령을 넘고, 2030 여성들이 이들과 연대한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랍고 반가웠다. 그래서 더욱 남태령을 넘어온 농민들의 이야기를 도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단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팀원들도 모두 농촌 기사를 쓰겠다고 손든 지원자들이었고, 특히 박채연 기자는 농촌서 한 달 살이를 해 곧 전북 순창 두지마을 명예주민이 된다”며 “연재가 8회분인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남은 회차에서도 30년 동안 누적된 농민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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