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아저씨' 김석훈이 버린 옷, 어떻게 말레이까지 갔을까

[인터뷰] 헌옷 153벌 GPS 달아 이동경로 추적... 한겨레 박준용 기자·조윤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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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의 이동경로를 살피던 한겨레21 취재팀은 해외로 간 헌 옷이 재활용이 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현지 취재도 진행했다. 사진은 추적기 위치를 따라 타이 아라냐쁘라텟 매립지에서 한국 옷을 찾는 박준용 기자의 모습. 동행한 조윤상 PD는 다큐 제작을 위한 영상, 사진촬영 등 역할을 맡았다. /한겨레 제공

우리가 수거함에 버린 옷들은 어떻게 될까. 칠레 아타카마 사막이나 가나 아크라 해변에 ‘헌 옷 쓰레기 산’이 있다는 뉴스는 봤던 거 같다. 수거함까지 마련돼 있는데 누군가 잘 다시 쓰지 않을까. 이 선의(善意)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박준용 한겨레21부 탐사팀장, 조윤상 뉴스영상부 PD는 이걸 알아보고자 했다. 헌옷에 GPS를 심고 국·내외 이동 경로를 아예 ‘추적’했다. 최근 발행된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545호 커버스토리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는 그 결과물이다.


2023년, 한 탐사보도 컨퍼런스에서 독일, 슬로베니아 매체가 쓰레기에 추적기를 달고 따라간 사례를 알게 되며 박 팀장은 “한국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세계 헌 옷 수출 5위 국가인데, 이동경로를 밝힌 자료가 거의 없었고, 선진국 옷이 개발도상국에 넘어가 오염을 유발할 여지는 충분한 명분이었다. 다만 ‘추적’을 가능케 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였다. 조 PD는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지 기획단계가 가장 난관이었던 아이템”이라고 2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특정 업체, 업자가 수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취재팀은 헌 옷 153점을 전국 수거함에 나눠 넣었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의류 수거함에 박 기자가 추적기 달린 옷을 넣는 모습. /한겨레 제공

국경 너머까지 위치가 확인되고 적정 크기․가격인 추적기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유럽 언론이 썼던 기기는 한국에 맞지 않았다. 검색 끝에 열쇠나 반려동물에 부착하는 ‘스마트태그’를 찾았다. 반경 120m 내 갤럭시 사용자가 있으면 세계 어디든 위치를 알 수 있다. “실험 차 지난해 2월, 베트남에 있는 조 PD 친구에게 보내 봤는데 ‘되겠다’ 싶었다. 옷 세 벌에 스마트태그를 붙여 수거함에도 넣어봤다. 인도, 필리핀, 페루로 간 경로가 잘 보여 확신을 했다.”(박 팀장) 재시도 끝에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예산도 마련됐다. 스마트태그 98개, GPS 55개를 확보하고 대여하는 데만 회사 예산까지 1200여만원이 들었다.


헌 옷을 구하며 “눈길을 끌 방법”을 고민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인 연예인 등 수백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5인에게 기부를 받고 인터뷰를 했다. 동료 기자와 가족, 외부 단체에서도 옷을 받았다. 이제 기기를 153벌 옷에 부착할 차례였다. 지난해 7월 채윤태․곽진산 기자까지 회의실에 모아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렸다.” 의류 종류․소재 정리, 라벨링, 추적기와 휴대폰 연결, 추적기가 들어갈 옷 소매 올 따기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미싱엔 옷 리폼 취미가 있던 박 팀장의 배우자가 투입됐다. 타사 기자인데 연차를 내고 와서 미싱기를 돌렸다. “먼지 탓에 목이 아프고 두통이 오는” 환경에서 작업은 5일 간(30시간) 이어졌다.

지난해 7~8월, 취재팀이 회의실에 모여 기부받은 헌 옷의 재료와 중량 측정, 라벨링, GPS와 휴대전화 연결 등을 하고 바느질을 통해 추적기를 옷에 심고 있다. /한겨레 제공

전국 150여개 수거함에 옷을 나눠 버리고 나니 8월 중순이었다. 옷이 국외로 가는 덴 1~2개월이 걸려서 기다려야 했다. “다른 회사 일을 하며 중간중간 체크를 했다.” 개발팀의 지원, UX디자인팀의 정리로 더 수월히 파악된 이동경로는 국제적이었다. 일례로 배우 김석훈씨에게 받아 서울 마포구 수거함에 버린 검정 바지는 3개월 후 말레이시아 항구에 있었다. 서울 강서구 수거함에 넣은 어린이운동화는 4개월 후 볼리비아에서 발견됐다. 전체 옷 중 20.3%(31벌)가 말레이시아(10개), 인도(8개), 필리핀(6개), 타이‧볼리비아(각 2개) 등에 가 있었다.


위치 데이터를 따라 지난해 10월 말, 다수 스웨터가 넘어간 인도 파니파트로 갔다. 4박5일 간 관광으론 절대 가지 않을 ‘세계 헌 옷의 수도’를 취재하며 “한국에서 온 헌 옷이 소각되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차라리 한국에서 태우는 게 친환경적”이다. 헌옷 표백 공장 폐수가 흘러드는 강 인근 마을 심라구지에선 막연한 환경오염이 아니라 정말 사람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었다. 곧장 타이 아라냐쁘라텟으로 넘어가 5박6일 동안 쓰레기 매립지도 살폈다. “쓰레기에 압도당하는 느낌과 냄새, 시각적 충격”, “살짝 튀면 피부병 걸릴 것 같은 곳”에서 한글이 적힌 옷, 가방을 봤다. 2~3일차 둘은 나란히 A형독감에 걸려 심한 통증과 고열 상태로 취재를 해야만 했다.


“타이 두 번째 매립지에서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신고 다가온 3~4살 꼬마가 있었다. 근처 판잣집에 사는 아이 얼굴이 돌아오는 내내 잊히지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도 많고 누릴 권리도 있을 텐데 저 아이는 처음 만난 세상이 이 쓰레기 산이구나, 거기 우리가 가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조 PD)

헌 옷 153벌에 GPS를 심어 이동경로를 추적한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커버스토리가 실린 한겨레21 1545호를 들고 박준용 기자, 조윤상 PD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회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기획엔 애초 더 많은 기자가 참여했지만 지난해 하반기 여러 이슈가 터지며 가장 많이 이번 기획에 관여한 둘을 인터뷰했다. /한국기자협회

해당 호 전체 104페이지를 할애한 기획은 사회 전반의 소비습관 변화를 촉구한다.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파타고니아의 유기농 목화 플리스도, 프라이탁에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도 아니다. 지금 내 옷장에 있는 옷”이어서다. 추적이 강조됐지만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의류는 왜 빠졌나>, <“기업 재고 소각 금지 등 정부 관리 필요”>처럼 의류산업과 환경의 공존을 위한 정책․제도(손고운 기자)부터 재활용 기술, 전문가 의견, 의류산업 종사자 설문 등도 함께 담긴 구성이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어 재사용을 기대한 누군가의 선의가 배반당하는 현실에서 갈 길이 멀다.


1년여 간 준비된 기획은 잡지로 나가고 신문에 요약 버전으로 실렸다. 유튜브를 통해 다큐(27분 분량)로도 선보인다. 조 PD는 “개인적으론 패스트 패션 기업을 더 많이 검증 했으면 싶었는데 돌아온 후 국외로 수출된 걸 확인해 아쉬움이 있다. 다큐는 사람들과 연결을 가장 고민했고 그러기 위해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출했다. 추적하는 콘셉트에서 쓰레기산을 향하는 여행 콘텐츠로 다가가고자 했다”고 귀띔했다. 박 팀장은 “환경 기사를 더 보게 할 방법이 뭔지, 환경 이슈로 탐사 보도가 가능한지 고민하며 기획을 준비했다. 유럽이나 미국 언론은 자국이 개발도상국에 어떤 해를 끼치는지 체크한다. 명실상부 선진국인 한국의 언론도 그런 책임에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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