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이른바 ‘방송4법’을 잇달아 재발의하고 있다. 일련의 계엄 사태, 또 윤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모든 논의가 선거로 몰리기 전 서둘러 방송4법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언론현업단체 역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방송4법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단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법안을 좀 더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2월18일부터 잇달아 방송4법을 재발의했다. 방송4법은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와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방송3법에 방통위법 개정안을 포함시킨 법안으로, 현재 9~11명인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다양한 주체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 발의된 법안에선 이사 수와 그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21명까지 늘었던 이사 수는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 의견을 반영해 13~15명으로 줄었고, 추천 단체도 법안을 발의한 의원마다 달라졌다. 한민수 의원처럼 이사 13명의 추천 권한을 모두 국회(여당 7명, 야당 6명)에 몰아준 의원이 있는가 하면 이훈기 의원처럼 국회 몫은 3명으로 줄이고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3명), 시청자위원회(2명), 과반 근로자 대표 단체(3명), 방송통신위원회(2명)로 잘게 쪼갠 의원도 나왔다. 한편으론 폐기된 법안과 거의 유사하게 언론 직능단체에 추천 몫을 주거나 대한변호사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가인권위원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아예 새로운 단체에 추천 권한을 부여한 의원도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와 특별다수제 내용에도 변화를 줬다. 폐기된 법안은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한 100명의 사추위가 공영방송 사장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고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선임하는 특별다수제 내용을 담았는데, 일부 의원들은 사추위나 특별다수제 내용을 아예 삭제했다. 한민수, 노종면, 조인철 의원은 관련 법안에 사추위 구성을 넣지 않았고, 노종면 의원은 사장 임명제청의 경우 재적이사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토록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민주당은 향후 이 법안들을 과방위에서 병합 심사해 대안을 도출할 방침이다. 1월 중으로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올려 논의하고, 나온 대안을 조기 대선 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단 계획이다. 언론현업단체들도 방송4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 8개 단체는 12월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 사태 앞에 더 이상 공영방송 정치독립을 미룰 수 없다”며 “다시는 내란 부역자들이 민주주의의 감시자인 공영방송에 발붙일 수 없도록 제도적 방어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토론 과정이 좀 더 정교해야 한단 주문도 나왔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논의가 선거판으로 빨려들기 전 방송4법 논의에 착수해 조속히 처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종합과 토론 과정이 이전보다 조금 더 속도를 내더라도 정교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방송4법을 재추진하는 대신 ‘방송법 범국민협의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2월16일 논평을 내고 “대통령 탄핵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이 가까스로 열렸는데, 이 소중한 기회를 팽개치고 공론 없이 추진한 졸속법안을 재차 밀어붙이겠다니 찬성할 수 없다”며 “범국민협의회에서 방송4법과 그에 맞물린 방통위 정상화 방안을 조속히 논의하고,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10월31일 방송법 범국민협의회 준비모임을 발족하고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위원장) 포함 위원 4인을 위촉했다. 우 의장은 애초 양당과 함께 협의회에서 방송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여야가 위원 추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개문발차’ 형식을 취했다. 준비모임은 지금까지 세 차례 회의를 진행했으며, 여야는 지금까지도 위원 추천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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