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반도는 이상기후를 크게 체감했다. 인명피해가 나온 폭염, 폭우는 물론 작황 부진에 따른 ‘기후플레이션’까지, 여러 징후가 나타났다. 근원인 ‘기후위기’를 다룬 여러 보도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당장의 사건사고에 밀려나고 마는 여건에서도 이런 기사들은 틈을 비집고 나온다. 이 진행형의 이슈는 2025년, 뉴스룸에서 더 주목받을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당시 경제부 소속이던 김수영·김형래·박예린 SBS 기자는 <‘날씨, 밥상을 뒤엎다’-기후 흉작 보고서 시리즈를 선보였다. 국내 올리브유 수입량의 70%를 의존하는 스페인, 세계 코코아 생산량 60%를 담당하는 가나, 대표적 커피 생산지 중 하나인 베트남 등을 찾아 현지 상황을 생생히 보도했다. 가뭄, 폭염, 폭우, 돌풍, 곰팡이성 전염병으로 피폐해진 농장, 농부의 이야기, 유통 과정을 방송 매체 장점을 살려 전했다. 싱가포르의 ‘스마트팜’을 취재하며 대안도 제시했다. 방송뉴스 분량 제약을 넘고자 추가로 6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에서만 약 180만 조회 수를 올리기도 했다.
김수영 기자는 “(이상)기후 때문에 가격이 오른다는 건 흔히 떠올릴 수 있지만 현지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가격상승이) 현실화되는지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동떨어진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우리 먹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란 걸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제부에서 기후위기를 다루는 게 당연해진 상황이다. 어느 한 분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 만큼 뉴스룸에서 중점 아젠다로 설정하고 부서별로 기획을 하는 시도 등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사회부에서 꿀벌 실종, 야생동물 사망, 바다 생태계 변화 등 아이템을 통해 보도되던 이슈는 최근 몇 년 새 완연히 다른 형태로 경제부(유통 분야)에 자리 잡았다. 일례로 디지털타임스 유통팀(김수연·이상현 기자)의 지난해 11월18일 <제주산 빠진 감귤 주스...기후변화에 국내 먹거리 비상> 기사는 제주감귤을 재료로 쓰던 일부 감귤주스 제품이 제주산 100%에서 제주산 19%, 호주산 81%로 수급이 바뀌며 제품명이 달라진 변화를 전했다. 밥상, 가계 영역까지 넘어온 이슈는 특수한 사건사고가 일상이 된 측면을 드러낸다.
여러 심각한 징후를 ‘새롭게’ 보여주려는 고민은 언론사 기후위기 보도의 핵심이다. 개별 출입처를 넘어 대안 모색에 집중한 기획에선 특히 ‘다른 접근’이 주된 과제가 된다. 지난해 8~11월 서울신문 기획취재부가 선보인 <계절식물: 식물은 답을 알고 있다> 기획은 대표 사례다. 기사는 시간축을 거슬러 한반도 ‘식물’의 과거를 살피고, 동시대 전 세계 식물 식생의 상태를 함께 전하며 이 이슈에 천착했다.
100여년 전 한반도 식물이 채집가, 신부, 선교사 등에 의해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로 옮겨졌고, 고유 식물인 금강인가목 등이 그곳에서 유일하게 보전되는 상황을 짚으며 식물 주권 문제를 제기했다. 전 세계적 식물 생태계 파괴 현장을 전하고, 식물에서 답을 찾은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의 대안적 도시모델을 알리는 한편 영국 에든버러 식물원, 매기센터의 치유정원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은주·김성은·홍희경 서울신문 기자는 서면 인터뷰에서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인류 역사, 철학, 사회학, 도시계획 등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식물의 다층적 성격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며 “환경보호라는 무거운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아닌 일상의 식물 가꾸기, 정원박람회 참여 같은 즐거움이 곧 기후위기 대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일회적 한계를 넘기 위해 국회·정부와의 협업, ‘식물외교’ 관점의 후속 보도, 기자 간 교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국내 기후변화 및 관련 보도에 대한 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 47.6%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기료 추가 납부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관련 정보는 언론에서 주로 얻지만 보도량이 부족하고(71.4%), 내용이 반복적이고 새롭지 않다(67.3%)는 지적도 있었다. 한겨레의 지구환경부, MBC의 기후환경팀처럼 전담 부서를 둔 매체가 여전히 드문 현실에서 언론 전반과 시민들의 인식에서 거리가 확인된다.
최원형 한겨레 지구환경부장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기간 영국 가디언이 행사 타임라인을 설정하고 마치 계엄 보도하듯 따라가는 걸 보며 국내 보도와 차이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 전문성을 과학 저널리스트 수준까지 높이지 못하면 따라가기 급급해지는데 이게 제일 어려운 과제”라며 “기자들 생각보다 시민들, 특히 젊은층의 기후위기 관심이 매우 높아 놀라고 있다. 언론이 부응 못하는 지점과 맞물려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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