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한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의 휴대전화를 언론 전반이 ‘황금폰’으로 칭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남성 연예인들의 불법촬영물 등을 저장한 휴대폰을 지칭하며 사용된 단어가 “가해자의 언어”이고 범죄 본질을 가린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최근 SNS 공지를 통해 “언론에서 명태균의 핸드폰을 ‘황금폰’이라고 칭하고 있다. 꼭 ‘황금폰’이라고 불러야 하나”라며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언어가 아닌, 범죄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는 표현을 써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해당 단어는 2019년 집단 성폭력과 불법촬영 등 혐의로 수사를 받은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물을 저장한 휴대전화를 칭하며 사용됐다. 당시 과거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불법촬영물이 저장된 그의 휴대폰을 ‘황금폰’이라고 언급한 장면이 주목받았고, 이후 범죄 핵심 증거가 담긴 기기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2019년 이후 언론에서 비교적 잠잠하던 이 표현은 최근 명 씨 사건을 두고 언론보도 전반에서 재등장했다. 26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황금폰’은 2019년 440건, 2020년 5건, 2021년 15건, 2022년 5건, 2023년 32건, 2024년 526건(12월25일까지) 기사에 나타났다. 2022년 대선 이후 명씨가 사용한 휴대 전화에 대통령 부부 등의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한 증거가 다수 저장돼 있을 것이란 차원에서 언론들이 해당 단어를 적극 사용하면서다.
포털 등에 송고된 관련 기사들엔 최근까지도 이 표현이 지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단어에 대한 환기 차원에서 기사 본문에 “이른바 ‘황금폰’”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가 가장 많지만 발언에 대한 직접 인용이 아닌데도 아예 제목에 ‘명태균 휴대폰’을 ‘황금폰’으로 칭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검찰이 명씨 휴대폰에서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통화 녹취를 확인한 뒤 나온 24~25일 다수의 기사 제목에 황금폰이란 표현이 쓰였다.
이목을 끄는 기사 제목보다 언론 업과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대폰’보다 ‘황금폰’이 포함된 제목이 더 관심을 끌 순 있지만 이는 성폭력 사건이란 배경에서 본격 유통된 단어를 ‘흥미’나 ‘재미’만을 차용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사용하며 종국에 애초 사건의 의미를 희석하는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실제 소수인종이나 여성, 아동들의 성폭력 피해를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미투’ 운동은 폭로란 형식만 떼온 ‘빚투’(연예인이나 가족의 채무불이행)로 언론에서 사용되며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현재 ‘빚투’는 경제지 등을 중심으로 ‘빚내서 투자한다’는 애초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쓰이는 모습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원래 ‘황금’은 좋은 것을 비유하는 데 쓰이고, 처음 정준영의 ‘황금폰’이 언급된 장면에서도 ‘볼거리가 많아 좋다’는 의미였다”면서 “누구의 시선에서 불법 촬영물이 ‘황금’인가. 불법 촬영 등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폭력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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