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화강에선 ‘반지락’이 났었다. 칼국수에 들어가는 조개, 그 바지락이다. 울산에선 이 조개가 펄이 아니라 강에서 잡혔다.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이며 최적의 염분, 수온 등의 환경이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1970년대까진 국내 연간 종패 약 70%를 공급하는 최대 생산지였다. 전국으로, 해외로 팔린 조개는 성패까지 키워져 식탁에 올라왔을 게다. 하지만 2019년, 바지락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울산 사람들조차 낯선 바지락의 ‘전설(?)’. 각각 9년차·5년차인 신섬미·심현욱 울산매일신문 기자는 이런 시점 조개를 추적하고 나섰다. 신 기자는 2일 통화에서 “사회부에서 남구청을 출입한 2022년, 바지락이 사라진 원인을 살핀 연구용역이 있었고 당시 어민들을 취재해 기사를 썼었다. 강에서 바지락을 캐고, 울산에서 자란 또래도 모른다는 게 신기해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8월 기획팀에 오며 지역성 있는 아이템을 고민하다 바지락이 여전히 없다는 걸 알게 된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울산광역시가 2022~2023년 연구용역을 했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태풍, 준설작업 등 설이 있을 뿐이다. 지난 5월부터 매년 태화강에 바지락을 살포하는 대책이 실행됐지만 어장회복 여부는 미지수다. 6년째 생업을 잃은 어민들에 접촉하기 위해 과거 취재했던 태화강 내수면 어업계에 연락부터 했다. 심 기자는 “스무 분 정도 남았는데 한 순간에 일터를 잃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평생의 업을 잃고 허망함이 클 분들 말씀, 심경을 조금이라도 더 담자는 마음도 컸다”고 했다.
한 달여 취재로 9월부터 11월까지 기사 8편, 다큐 영상 1편을 내놨다. 바지락을 쫓았는데 사람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시리즈 2편엔 울산 동구 염포가 고향인 올해 63세 어민 신원수씨가 등장한다. 학교 대신 태화강에서 조개를 캐며 유년기를 보낸 그는 한 때 하루 20kg 포대 수십 자루씩 잡고, 채취 중단과 재개를 몸소 겪으며 50년을 바지락과 보냈다. 설비에 전 재산을 투자했지만 어장 황폐화를 마주했다. 울산으로 시집 와 바지락으로 가족 생계를 꾸린 박희순(70)씨, 멈춘 배를 수리·관리하며 속을 태우는 장상(70)씨의 사연, 옛 사진이 기사에 담겼다.
신 기자는 “6년 간 거의 방치되다보니 초반엔 호의적이지 않으셨다. 매일 일상을 따라다니려 했지만 생계형이고, 자꾸 돈 문제를 물으니 싫어하셨다. 과거 울산의 모습, 그렇게 살았다는 얘기가 흥미로워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인터뷰가 3명 이상이 됐다. 바지락이 주제였는데 잘 몰랐던 지역민의 삶을 캐게 됐다”고 했다.
지역민의 스토리는 울산의 이야기였다. 조개 잡는 생의 부침은 하늘, 땅, 물이 변한 울산의 변화와 닿아 있었다. 일례로 태화강 하구 조개섬, 대도섬이 공업단지 조성 즈음 사라졌다. 기사는 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말, 과거 항공사진과 기업사(史) 기록물을 찾아 울산의 기억을 불러왔다. 심 기자는 “인터넷엔 자료가 거의 없어 박물관에 가 문헌을 뒤졌다. 바지락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니 사라진 조개 관련 지명, 1950년대 태화강에서 바지락을 캐는 사진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십년 태화강에서 바지락을 잡아온 분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였다”고 했다.
“왜 사라졌는지”를 가장 궁금해 하는 어민들 얘기에 간담회도 마련했다. 전문가, 시 관계자, 용역 연구기관이 참석해 바지락 위판장에서 논의를 하고, 배를 타고 나가 태화강 바닥을 긁어 상태를 살폈다. 바지락을 통해 본 지역사와 주민 이야기로 시작해 원인 규명, 정책적 대안을 고민한 기획 전후 시는 살포한 조개 상태를 일단 지켜보겠다고 했고, 시·구의회에선 면밀한 대응 요구가 나왔다. 무엇보다 두 기자로선 “우릴 위해 이런 걸 마련해주고 확인하는 게 처음이라고, 그 자체로 고맙다”는 말을 들은 의미가 크다.
공업도시 울산은 생태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수질오염으로 채취가 중단됐다가 상태 회복으로 다시금 허용된 과정은 일면이다. 다만 조개 채취 선박이 공업단지를 배경으로 떠다니는 기묘한 풍경은 사라진 뭔가를 전제한다. 심 기자는 “여러 득실이 있었지만 인터뷰를 하고, 드론을 날리며 공업도시가 되지 않았다면 바지락이 넘쳐났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이는 반포기 상태지만 실낱의 희망을 가진 어민들 이야기면서 공업화 과정 중 울산에서 사라진, 우리가 잊은 것들에 대한 얘기 아닌가 싶다”고 했다.
신 기자는 “생태도시로 변모한 상황에서 상징적인 자원인 바지락이 없다는 게 정말 아쉽다”며 “자료가 많지 않아 과거 지역 기사에서 많이 도움을 얻었는데 저희 기사를 한참 뒤 다른 기자가 참고할 수 있겠단 생각도 했다. 지역신문 역할로서 지역민 일상과 그때 상황을 적는, 기록의 의미를 돌아본 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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