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기자 생활 17년… "타블로이드지 없는 한국, 낯설어"

[외국인 기자들의 한국살이]
폴 케리 코리아헤럴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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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열리는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선 종종 외국인 기자들이 공을 찬다. 폴 케리 코리아헤럴드 기자도 그 중 한 명이다. 케리 기자는 약 17년간 코리아헤럴드에서 일한 중견 기자로, 현재 수석 카피에디터로서 영문 기사의 교열을 맡고 있다. 교열이라고 해서 단순히 문법만 확인하진 않는다. 외국인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글을 살리는 작업을 한다. 케리 기자는 “정치사회부에 소속돼 관련 기사들의 교열을 본다”며 “때때로 기사 제목이나 사진 설명이 잘못된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05년 한국에 왔다. 친구의 권유로 세계를 구경해볼 겸 가벼운 마음으로 온 나라였다. 한국에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때때로 코리아헤럴드에 글을 기고했다. 그러다 채용 공고가 떴고, 무심코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했다. 그때가 2007년이었다. “원래는 돈을 벌고 다시 영국에서 학업을 이어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예상에 없던 일이 생긴 거죠. 사실 대학에선 화학을 전공했는데 실험실에 몇 시간이고 앉아 실험하는 건 저와 영 맞지 않았어요. 반면 대학교 학보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저널리즘에 관심이 생겼는데,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기자 일을 하게 된 겁니다.”


예상에 없던 일이었지만 일하는 건 즐거웠다. 매일 수십 건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다룬 글을 살피는 건 그에게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코로나19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은 그에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다만 일의 세밀한 영역에선 매번 어려움이 따랐다. 한국어 신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정보를 습득하는 데 취약했고, 문화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영어로 한국 뉴스를 읽고 싶은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테니, 제가 그런 부분에 더 신경을 쓰고 표현을 고치는 게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뉴스룸 구성원들도 매우 친절해서 잘 설명해주기도 했고요. 다만 글이나 대화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 또 표현을 좀 더 잘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그의 시선에선 한국의 취재 문화도 낯설었다. 영국에선 타블로이드지가 개인의 사생활이나 스캔들을 보도하는 게 일상적이지만 한국에선 공적 관심사인 범죄 사건이라도 알 권리보다 법적 제약이 더 강했다. 게다가 한국에선 기자단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 아무리 정부 대변인이라도 쉽사리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흥미로웠다.


특히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에 좌지우지되는 한국의 언론 환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서양에선 사람들이 주로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보는데, 페이스북은 책임을 최소화하려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포털이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폭행당한 피해자 사진에 피가 많다고 바꾸라는 얘기나, 광고가 될 수 있다고 기사에 링크나 주소, 전화번호를 남기지 말라는 지시 등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자살 기사 하단에 상담 번호를 남길 수 있지만 예전엔 그것도 안 됐거든요. 미디어에 돈을 지불하는 방식은 페이스북보다 낫지만 포털이 한국 언론사들의 혁신을 전반적으로 억압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한국 언론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는 아마 한국에서 계속 거주할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재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한국인 아내 및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아내와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취재하다 만나 2014년 결혼했다. 케리 기자는 “편의점과 식당이 근처에 있어 매우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큰 목표보단 작은 목표들이 많다.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한 제 일을 잘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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