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강원 소재 터미널, 지역민들 기억 조각 모아보니

강원도민일보 '정거장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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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의 위기가 날로 심화되는 가운데 지역 내 터미널에 대한 기록인 강원도민일보의 <정거장 세상을 잇고, 추억을 품다> 기획이 눈길을 끌고 있다. 거대 문제의 구체적 양상으로서 특정 공간에 주목하고 거기 얽힌 지역민의 기억을 되살려 조용히 소멸 또는 여전히 건재한 지역 정거장·터미널의 소사(小史)를 남긴 시도로 볼만하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올해 2월부터 <정거장 세상을 잇고, 추억을 품다>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올해 2월부터 ‘정거장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지나는 길목”이자 “뜨거운 삶의 현장이기도 했고 마을 사랑방”이기도 했던 지역 내 정거장의 과거와 현재, 이와 맞물린 강원도민의 기억을 함께 담았다. 매체는 첫 기사에서 취지와 관련해 “터미널은 누구에게는 만남과 기대, 누구에게는 이별과 기약의 공간으로 남아있다”며 “우리가 지나가는 버스와 함께 놓쳐버린 혹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삶의 공간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2023년 말, 상봉터미널이 개장 38년 만에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지며 기획의 주요 계기가 됐다. 강원도 거주민과 군인 등에게 서울행 관문 역할을 해온 고속버스 기종점은 1985년 개장 후 한때 하루 평균 이용객이 2만명을 넘었지만 인근 동서울터미널 개장, 코로나19 등에 따라 극심한 위기를 겪어왔고 결국 폐업을 확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편집국장으로부터 강원도 전역의 정거장, 오래된 터미널의 이야기를 돌아보자는 제안이 나온 게 시작이었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올해 2월부터 <정거장 세상을 잇고, 추억을 품다>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각 시군 주재기자들이 2~3주 주기로 연재를 진행하며 강원도 홍천군, 양양군, 고성군, 정선군, 태백시, 철원군, 원주시, 동해시 등의 8개 정거장·터미널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회차별 차이는 있지만 지역 문화원이나 시·군청 보유 사료를 바탕으로 버스 터미널이 만들어질 당시 사회·역사적 배경, 과거부터 현재까지 터미널의 역할과 모습 변화상을 담고, 여기 지역인사, 터미널 운영 관계자, 근처 여인숙이나 칼국숫집을 운영한 지역민을 직접 인터뷰해 자료 공백을 채우는 한편 해당 공간과 맞물린 주민의 삶을 되살려낸 구성이다.


예컨대 홍천편의 경우 홍천터미널 대신 작은 버스 매표소라 할 ‘차부집’(車部, 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 네 곳 중 두촌면 자은리 금강슈퍼마켓을 찾아가 전·현직 대표들에게 ‘겨울 5일장에 온 생선장수들이 화로에서 불을 쪼이고 고맙다며 줬던 명태와 꽁치의 맛’, ‘하교 후 몰려든 학생들이 물건을 집어간 일’, ‘버스표 1묶음(100장)을 한 달이 지나도 못파는 요즘’ 등 얘기를 듣고 담았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올해 2월부터 <정거장 세상을 잇고, 추억을 품다>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기사를 쓴 3년차 유승현 강원도민일보 홍천주재기자는 “로컬적이고 더 작은 이야기를 찾으려다보니 대표 터미널이 아니라 차부집이 눈에 들어왔고 무작장 인구가 적은 곳을 찾아가 얘길 들었는데 생소했지만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근처에 살았다’, ‘물건 훔치던 까까머리가 나다’ 같은 반응이 오며 지역에서 새 이야기가 나온 계기가 된 듯한 경험도 새로웠다”고 했다. 이어 “대표적인 홍천터미널만 해도 사진 등 자료가 많지 않았다. 지역신문 주재기자로서 검색을 해도, 생성형 AI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사를 더 많이 쓰고 싶다. 사라져가는 터미널이란 지역 현실과 맞물려 시의적절하게 가닿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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