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의 ‘캘리포니아 저널리즘 보존법(California Journalism Preservation Act)’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지역 저널리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지만 법안이 통과됐을 때 정작 지원이 필요한 소규모 매체에 혜택을 주지 못하고 뉴스 전반 품질이 떨어지는 등 오히려 언론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은 30일 미디어정책리포트 ‘캘리포니아 저널리즘 보존법과 플랫폼의 대응: 쟁점과 국내 시사점’(2024년 3월호, 박영흠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을 통해 해당 법안을 둘러싼 논란과 한국 언론에 시사하는 바를 전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지역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차원의 노력이지만 구글 등 플랫폼 기업의 거센 반발은 물론 미국 내 언론시민단체로부터도 비판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 저널리즘 보존법’은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용자 규모를 지닌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뉴스 콘텐츠를 게시하는 대가로 관련 광고 수익의 일정 비율을 뉴스 제공 언론사에 배분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이 해당되며 언론사는 대신 플랫폼에서 받은 수익의 50~70%를 직원들의 급여로 지출해야 한다. 법안은 주 하원을 통과해 상원 의결을 앞뒀지만 논란이 불거지며 최종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안이 나온 후 구글은 지난 4월 캘리포니아 기반 뉴스 웹사이트 링크를 검색에서 제외했을 때 실제 수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테스트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향후 캘리포니아 지역의 뉴스 생태계를 위한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이 법안이 대형 언론사와 헤지펀드에 유리하며 소규모 지역언론엔 불리하다는 주장과 함께 법원 통과 시 헤지펀드들이 법안을 통해 지원받은 자금으로 지역신문사를 인수해 기자를 해고하고 함량 미달 뉴스를 대량 생산해 지역 저널리즘이 붕괴할 것이란 예측도 내놨다.
언론재단은 이 같은 반응에 대해 “뉴스 이용료를 지불하는 선례가 남았을 때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후폭풍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법안이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는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도 어두운 전망이 제기되며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시민운동단체 자유언론행동(Free Press Action)도 해당 법안이 거대 미디어 기업을 위한 지원책으로서 정작 지원이 가장 필요한 언론사들은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지적하며 저널리즘 위기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단체가 지난해 7월 법안 지원자격에 해당하는 언론사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거대 플랫폼을 통해 유입되는 캘리포니아 지역 트래픽의 80% 이상이 20개 대기업 소유 웹사이트로 들어갔고, 지역의 독립‧비영리 미디어는 2% 트래픽을 겨우 차지하며 지원금 대부분이 대기업 소유 거대 미디어와 전국 단위 네트워크 방송사로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어서다.
자유언론행동은 이에 따라 법안이 “‘클릭베이트(Clickbait)와 검색 엔진 최적화(SEO)의 황금시대’를 불러와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에 밀착된 뉴스를 제작하는 독립‧비영리‧커뮤니티 언론을 더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또 이런 문제점이 “거대 언론사나 전국 네트워크를 수혜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 등 입법 설계상의 맹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책 입안자들이 지역 사회 저널리즘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면 더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언론재단은 리포트에서 포털 전재료,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저작권 분쟁 등 국내 언론과 플랫폼 간 갈등을 거론, 양쪽의 인식차가 점점 커지는 현실에서 국내 정책 입안자와 언론계 관계자들에게 시사하는 지점을 언급했다. 언론재단은 “플랫폼에 뉴스 이용자를 빼앗기고 콘텐츠의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언론계 입장에서는 (응당한 조치를 요구하는 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뉴스 회피 현상이 확산하고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언론사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낮아진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논의돼 온 ‘탈포털’보다 포털의 ‘탈뉴스’가 먼저 이뤄질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플랫폼에 언론사 수익을 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방향을 고집한다면 플랫폼의 탈뉴스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고”, 이는 소규모 언론사 생존은 물론 “언론계 전반과 민주주의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재단은 “정책입안자들과 언론계 관계자들은 선의로 마련한 법률이나 정책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준비와 치밀한 설계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언론 생태계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언론이 처해 있는 조건과 환경이 크게 바뀌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언론사들이 아니라 플랫폼이므로, 플랫폼을 비난과 징벌의 대상으로 삼는 정책은 언론사들에게도 부정적 결과를 낳을 위험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어떤 법안이든 추진과 제정 이전에 정책의 타당성, 목표의 실현 가능성, 예상되는 파급 효과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거칠 필요가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다양한 언론 주체들의 목소리를 폭넓게 수렴하고 설득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의 공감 및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특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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