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보고 위탁가정 20곳이라도 늘어났으면..."

[인터뷰] '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기획한 손지연·강동용·김예슬 서울신문 기자

올 초 유독 눈에 띄는 신년기획이 있었다. 가정위탁 제도를 심층 보도한, 서울신문의 ‘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기획이다. 서울신문은 이번 기획을 위해 24명의 위탁부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위탁부모 170명과 전문가 114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위탁가정의 헌신, 또 표류하고 있는 가정위탁 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손지연 서울신문 기자는 “지난해 영아 출생 미신고와 유기·사망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드러났을 때 그 대안으로 거론된 것이 가정위탁 제도”라며 “당시 관련 기사를 쓰는데, 공무원들도 이 제도를 잘 모른다는 멘트가 있었다. 그걸 보고 전 사회부장께서 키워보자는 말씀을 하셔서 이번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취재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사회부 사건팀 전원이 투입됐고, 그 중에서도 지난해 2월 입사한 손지연·강동용·김예슬 기자가 중심이 돼 현장 취재가 이뤄졌다. 기자들은 아동권리보장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을 통해 위탁가정을 섭외하고 지역을 나눠 취재원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관련 통계를 수집하고, 담당 공무원과 관련 교수들을 인터뷰하며 보완할 내용도 쌓아나갔다.

서울신문은 가정위탁 제도를 심층 보도한 기사, '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를 이달 초 신년기획으로 선보였다. 기획엔 사회부 사건팀 전원이 투입됐고, 그 중에서도 지난해 2월 입사한 김예슬(왼쪽부터)·손지연·강동용 기자가 중심이 돼 현장 취재가 이뤄졌다.

취재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담당 ‘라인’을 챙기면서 기획 취재를 병행하는 것부터 녹록지 않았다. 20년치 통계를 정리하는 일이나 알음알음 설문조사를 돌리는 일도 매번 힘에 부쳤다. 1년차 기자가 심층 인터뷰를 한다는 것도 어려웠다. 강동용 서울신문 기자는 “인터뷰라고 해봤자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 또는 전문가와의 짧은 전화가 다였는데, 특정 인터뷰이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하니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인터뷰 후에도 고민이 많았다”며 “한편으론 저 역시 관련 취재를 했음에도 이 제도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해체됐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결국 가족의 규모만 변화했을 뿐 혈연 중심의 결합 방식은 그대로인데, 제 인식마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이번에 실감했다”고 했다.


기자들이 취재하며 마주한 가정위탁 제도는 특히나 부실해 보였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시설에 보내는 대신 가정에서 키우는 가정위탁 제도는 친부모의 양육 능력이 회복되면 원래 가정으로 돌려보낸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아 보였다. 다만 사회적 관심과 홍보가 부족한 탓에 도입된 지 21년이 지났음에도 제도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고, 위탁가정 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지원책 역시 부실해 지자체나 정부가 오로지 위탁가정의 헌신에 기대고 있었다.


손지연 기자는 “39개월짜리 아이를 안고 인터뷰를 하신 분이 있는데, 물리적 학대를 당해 뇌손상이 생긴 아이를 병원을 통해 위탁하게 되신 분이었다”며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는데 토하면 닦고 또 토하면 닦고를 2시간 내내 반복하시더라. ‘학대당한 아이가 뇌손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짤막한 사건 기사 뒤편은 이렇구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이 올해 신년기획으로 선보인 '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기사 갈무리.

그래서인지 기자들은 이번 취재를 통해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워나갔다고 했다. A4 용지로 300장, 거의 책으로 낼 수 있을 만큼 취재 내용을 쌓고 또 그걸 출력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으며 핵심을 기사로 뽑아내는 과정은 난생 처음 했던 작업이었다. 입사 후 첫 신년기획에 이름을 올리고, 사건팀으로선 방대한 분량의 기획을 도맡은 것에 자부심도 느꼈다. 김예슬 서울신문 기자는 “처음 기자가 됐을 땐 좀 멋있는 기사, 드라이하면서도 정치권에 파급력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기사를 쓰면서 그 생각이 많이 깨졌다”며 “너무 감정에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걱정도 많았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4개월간 여러 부침이 있었고 선배들께 혼도 많이 났지만 기획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획을 쓰면서 기자들은 많은 이들에 빚도 졌다. 흔쾌히 취재를 허락하고 십시일반 도와준 위탁가정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밤낮 가리지 않고 고생하는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게도 많은 협조를 받았다고 했다. 회사 내에선 사건팀 선배들을 비롯해 사진부, 편집부, 그래픽팀 선배들이 좋은 기사를 만들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줬다. 손지연 기자는 “이분들 덕분에 저연차 기자인 저희들이 신년기획을 쓸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기획을 시작할 때 목표가 있었다. 이 기사를 보고 위탁가정이 20곳만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친구 어머님이 기사를 보고 정년퇴직 후 위탁가정을 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변화의 시작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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