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을 동원해 압박하던 방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 윤석열 정부는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KBS·EBS·TBS·YTN·MBC 등 5개 방송사 노조위원장 연속 기고를 통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협하는 권력의 움직임과 그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국정원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방송을 제작하는 기자, 피디, 간부진을 모두 퇴출시키고, MBC의 프로그램 제작환경을 경영진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방송사 장악의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되기에 이를 보고합니다.” “홍보수석 요청이 명시된 문건은 모두 방송사 관련 문건이고, 해당 문건은 2009.8.31. 이후로 홍보수석비서관 이동관일 때 집중되어 있으며 문건 내용으로 볼 때 방송사에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목적으로 작성되었던 것으로 보임.”
2017년 11월,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의 보고서 내용입니다. 검찰은 2010년 국정원의 대외비 문건, ‘MBC 정상화 전략’의 작성 지시자로 당시 이동관 홍보수석실을 지목했습니다. 해당 문건에는 인적 쇄신과 프로그램 퇴출(1단계), 노조 무력화(2단계), MBC 민영화(3단계) 등 MBC 장악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시나리오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문건 그대로 시행됐습니다. 문건을 작성했던 국정원 직원들도 검찰 수사에서 “이동관이 김재철에게 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고, 문건 내용이 그대로 이행되는 것을 보고 “MBC가 족보대로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동관씨의 방송장악 전과는 단순한 의혹 수준이 아닙니다. 제3자의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문건 작성에 관여했던 국정원 요원들이 직접 진술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했던 검찰 수사팀의 수사 내용입니다. 명백한 증거 문건들과 증언이 있었음에도 공소시효를 이유로 기소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동관씨는 방송장악 문건과 검찰 수사보고서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습니다. “언론은 장악될 수도 없고, 또 장악해서도 안 된다.”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어떤 지시와 실행, 분명한 결과가 나왔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겠나”라며, 유체이탈식 대응만 하고 있습니다. 검찰 보고서는 이동관 홍보수석실이 MBC 장악을 위해 문건 작성을 지시했고, 실제 실행됐고, 분명한 결과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청문회까지 시간만 끌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논란은 결국 사그라들 것이라 기대하는 듯합니다. 공직자의 기본자세도 아닐뿐더러 방송의 독립과 자유를 앞장서 지켜나가야 할 방통위원장 후보자로서는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대응 방식입니다.
이 후보자가 자신의 방송장악 과거에 대한 해명을 미루는 사이, 한편에선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재현되고 있습니다. 김효재 직무대행의 방통위는 여권 추천 상임위원 2명만으로 남영진 KBS 이사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의결했고, 정미정 EBS 이사를 해임했습니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해임안 처리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권 이사장에 대한 감사원 소환조사도, 방통위의 방문진 현장 검사도 이뤄지기 전에 해임 절차부터 개시했습니다. 법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묻지 마’ 해임입니다. 여기에 5·18 망언과 세월호 유가족 폄하 등으로 논란을 빚은 대표적 극우 인사 차기환씨를 방문진 이사로 또다시 임명하며, 차기 방문진 이사장으로 내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보다 오히려 더한 방송장악 폭거입니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과거는 되풀이되고, 역사는 더 후퇴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동관씨의 방송장악 전과가 명확히 규명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후보자의 선택지는 둘 뿐입니다. 방송장악 과거를 고백하고 사퇴하거나, 윤석열 검찰의 수사 내용이 엉터리였음을 입증하는 것.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습니다. 윤석열 검찰 보고서에 이제는 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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