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시행령 개정… 수신료 분리징수 속도전

[대통령실, 다른 의도 있나]
온라인 찬반 투표 1회 후 개정 돌입
영국·독일 등은 공영방송 수신료 개편 놓고
논의부터 적용까지 수 년 걸쳐 신중

언론계 "수신료, 정치 쟁점 아닌 공론장 재건 관점으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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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TV수신료 분리징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통령실이 지난 3월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을 온라인 찬반 투표에 부친 지 석 달 만에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KBS 사장은 분리징수 추진 중단을 촉구하며 자진사퇴 카드까지 꺼냈지만, 정부는 강행 의사를 밝혔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부발 수신료 징수방식 변경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5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관계법령 개정과 후속 조치안 마련을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9일~4월9일 국민제안 사이트의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해 징수하는 현행 방식의 적절성’에 대한 여론을 수렴한 결과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함세웅 신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등 사회 각계 원로들과 언론단체 회원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TV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녕 박정희와 전두환의 길을 가려고 하냐”며 “협잡으로 KBS를 길들일 생각 말고 정정당당하게 언론을 대하라. 대통령 임기는 영원하지 않다”고 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국민참여토론 찬반 투표에서 전체 5만8251표 가운데 96.5%(5만6226표)가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에 찬성했다. 다만 한 사람이 여러 SNS 계정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어 조사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시스템상 하자가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실은 표면적인 수치를 부각해 분리징수를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대통령실 움직임에 KBS는 반발하고 있다. 현재 가구당 월 2500원인 수신료는 KBS와 위탁계약을 맺은 한국전력이 지난 1994년부터 전기요금과 통합해 징수하고 있다. KBS는 지난해 기준 연 6200억원 규모인 수신료 순수입이 분리징수 이후엔 1000억원대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추산한다.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뿐 아니라 회사 전체가 휘청일만한 삭감 규모다. KBS는 지난 5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수신료 분리징수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공영방송제도를 폐지할 것인가의 여부와도 직결된다”고 밝혔다.


분리징수가 가시화하자 김의철 KBS 사장은 자신의 자리를 내걸었다. 김 사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실의 여론 수렴 절차와 내용을 비판하고, 통합징수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위중한 상황 앞에 무거운 결심을 했다”며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사장직을 내려놓겠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철회되는 즉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식 면담을 요청했다.


대통령실은 KBS 사장 사퇴와 수신료 문제의 연관성에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사장의 기자회견 당일 오후 현안 브리핑에서 “KBS 사장 사퇴와 수신료 분리징수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며 “지금 국민이 KBS에 원하는 것은 수신료 분리징수, 공정한 보도, 방만 경영 개선이다. 분리징수는 경영진 교체와 관계없이 국민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 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신료 제도가 지난 1963년 국내에 도입된 이후, 여러 차원의 개편 논의는 이어져 왔다. 그러나 현 정부의 성급한 분리징수 추진은 우려를 낳는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영방송 BBC의 수신료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2027년까지 유예를 두고 논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핀란드에선 수신료 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해 적용하기까지 5년이 걸렸고, 독일의 경우 수신료 징수기관 변경에 10년이 소요됐다. 한 차례의 온라인 설문조사만을 근거로 불과 몇 개월 만에 공영방송사를 뒤흔드는 결정을 내린 우리 정부와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뜻’을 내세웠으나 급박한 행보에 그 의도가 의심받고 있다. 보도 공정성과 방만 경영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수신료를 삭감해 공영방송사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수신료 제도가 법과 사회적 합의 아래 존재하는 만큼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언론운동계 전·현직 언론인 모임인 새언론포럼은 정부와 정치권이 수신료를 정치적 쟁점으로 다루기보다 ‘공론장 재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새언론포럼은 9일 발표한 논평에서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정파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공론장을 재건하고 강화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역할과 재원인 수신료 인상과 배분, 투명한 회계처리 방안, 사회적 감시시스템 도입 등에 대해 발본적인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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