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철 KBS 사장 "대통령께선 수신료 분리징수 철회해달라"
김 사장, 8일 기자회견 열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입장
대통령과 면담 요청하며 "분리징수 철회하면 사퇴하겠다"
김의철 KBS 사장이 대통령실에 TV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철회를 촉구하며 "철회 즉시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8일 KBS가 개최한 수신료 관련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의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은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이 위중한 상황 앞에 KBS 사장으로서 (사퇴라는) 무거운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사장직을 내려놓겠다"며 "그러니 대통령께서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달라. 저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이 철회되는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또 김 사장은 "KBS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전달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대통령님과의 면담을 정식으로 요청드린다"며 "권고에 따라 분리징수 업무를 담당할 유관 부처에도 KBS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TV수신료 분리징수 법령 마련 권고… 김의철 KBS 사장 "절차와 내용에 문제"
대통령실은 지난 5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현재 가구당 월 2500원인 수신료는 KBS와 위탁계약을 맺은 한전이 전기요금과 통합해 징수하고 있다. 실제 분리징수가 이뤄지면 KBS는 자체 징수를 하거나 다른 위탁사를 찾아야 한다. KBS는 현재 연 6200억원 규모인 수신료 수입이 분리징수 이후 연 1000억원대로 하락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의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안에 대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며 "공영방송의 의미와 역할에 성찰과 고민이 있었는지, 전문가들이 충분한 논의를 진행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대통령실이 내세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의 근거는 국민참여토론을 통한 여론 수렴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9일~4월9일 국민제안 사이트의 국민참여토론에서 현행 수신료 방식의 개선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총 투표 수 5만8251표 중 96.5%(5만6226표)가 징수 방식 개선에 찬성한다(추천)고 답했다.
그러나 해당 온라인 설문조사는 SNS 로그인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방식이어서 중복 투표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설문조사의 신뢰성이 지적 받았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그대로 인용해 분리징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대통령실, 수신료 분리징수 위한 법령개정 권고)
김 사장은 "여론 수렴 절차는 부정확하고 불충분했다"며 "특히 국민제안 심사위원회가 여러 차례의 활발한 토론과 격렬한 논쟁을 거쳐 이번 권고안을 결정했다는 소식은 접한 바 없다. 심지어 KBS는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으며 별도로 의견을 물어 온 바도 없었다는 점은 무척 유감"이라고 했다.
"KBS, 해외 공영방송사 대비 저비용‧고효율… 현행 통합징수 가장 이상적"
김 사장은 해외 공영방송 사례를 언급하며 현행 수신료 통합징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공영방송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사회적 제도"라며 "각국에서는 글로벌 OTT의 범람에 따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사장은 "대한민국과 1인당 GDP 수준이 비슷한 이탈리아의 수신료는 KBS의 4배가 넘는다"며 "직원 수를 비교하면 영국 BBC는 약 2만명, 일본 NHK는 1만명이 넘지만 KBS는 4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KBS의 TV도달률은 68.5%로 BBC(71.6%) 보다 약간 낮은 정도다. KBS가 방만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주요 공영방송사들과 정량적 수치로 비교한 KBS의 저비용, 고효율은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현재의 통합징수는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실현할 뿐 아니라 납부자간 형평성과 공정성을 구현해 납부 정의를 실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며 "수신료 수입 급감은 KBS가 공적책무들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직결된다. 수많은 불합리와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분리징수를 추진해야 할 만큼 중대하고도 긴급한 사유나 실익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김 사장은 "수신료 징수방식 논의는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는 지극히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번 사안을 계기로 국민들께서 보여주신 지적과 질책에 깊이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뼈를 깎는 성찰과 혁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이 입장문을 발표한 직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1시간가량 이어졌다.
김 사장은 왜 사퇴를 결심했느냐, 정권교체기마다 KBS 사장이 사퇴하는 역사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분리징수가 현실화하면 KBS의 존립 자체가 훼손된다.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이런 결정을 했다"며 "공영방송 KBS의 독립은 사장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제가 물러나도 KBS 구성원들이 방송독립을 유지하고 공영미디어로서 역할을 충실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KBS가 지적받아온 방만경영 문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김 사장은 "'무보직자도 억대 연봉 받는다'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치 무보직자라고 하면 일을 안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큰 오해"라며 "예를 들면 9시 뉴스 앵커도 무보직자다. KBS에선 각자의 전문 영역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보직을 맡지 않더라도 보직자 이상의 일들을 충실히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실제로 이뤄지면 삭감분의 재원을 조달할 현실적인 방안이 있느냐는 물음에 김 사장은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고 했다. 정치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정치권에 역할을 기대하는 특별한 입장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김 사장은 "KBS는 일개 방송사가 아니라 법에 규정된 여러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라며 "여러 비판과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다만 공영미디어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 변화가 있을 때는 우리 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 여러 언론인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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