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대통령실의 TV수신료‧전기요금 분리 징수 추진에 “사회적 효용을 떨어뜨리는 방안”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KBS는 13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국민참여 토론 결과 등 수신료를 둘러싼 여론 논란에 입장을 밝혔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한 달간 국민제안 사이트의 토론 코너를 통해 ‘수신료 징수방식(현재 수신료‧전기요금 통합징수) 개선’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지난 9일 토론을 마감한 결과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5만6226명, 유지해야 의견이 2025명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실은 이 결과를 근거로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관련기사: 대통령실, TV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여론수렴 놓고 KBS 안팎 논란)
이날 간담회에서 최선욱 KBS 전략기획실장은 “하나의 사회 제도가 수용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데, 분리 징수 논의 역시 한 번의 의견 청취로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자리를 통해 공영방송 제도가 어떻게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논의될 수 있는지 설명드리겠다”고 말했다.
최선욱 실장과 오성일 KBS 수신료국장이 기자들과 나눈 질의응답 가운데 주요 내용을 선별해 정리했다.
-대통령실이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분리 징수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 시행령 개정만으로 분리 징수가 가능한지 이에 대해 법적 검토를 했나.
“정부 차원의 분리 징수 내용들이 아직 저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시행령의 구체적인 조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해당 내용에 대해 KBS 내부에서도 검토는 하고 있지만, 기사로 보도된 것 외에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서 지금으로선 따로 언급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방송법은 ‘TV수상기 소지자는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분리 징수를 하면 사실상 납부의 선택권을 주는 것이어서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 분리 징수 방식과 법에 명시된 수신료 부과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지금 진행되는 상황이 아마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지 않으냐는 맥락 속에서 진행되는 것 같다. 그런데 수신료 제도가 존치하는 이상 수신료를 내도 되고 안 내도 되는 제도는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의도든 의도하지 않았든 법을 어기게 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
“헌법재판소는 수신료를 특별부담금으로 규정한다.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공익사업에 들어가는 재원을 조성하는 데 수신료를 사용한다’는 판결 내용이 국민제안 설명 부분에 구체적으로 담기지 못한 것은 굉장히 아쉽다.”
-분리 징수가 KBS 방송의 품질이나 역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상하나.
“유럽방송연맹에 가입한 56개 국가 중에 23개 국가에 수신료 제도가 있다. 23개국 중에서 12개국은 전력회사, 3개국은 우체국, 3개국은 자체 징수, 2개국은 자체적으로 별도 설립한 회사, 2개국은 외부 대행사를 통해 수신료를 징수하고 있다. 나라별로 사회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최적화된 방식을 택했다. (KBS가 한전과 계약을 맺어 전기요금과 통합징수를 하는 이유도) 효용성 문제 때문이다. 만약 분리 징수가 되면 징수 비용이 추가되면서 콘텐츠나 공익사업에 영향을 미친다. 수신료를 납부하는 분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지 않은 부분부터 고려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국가 안보나 공공외교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 대외 방송이나 국제 방송, 장애인 방송, 클래식 같은 특정한 장르 등 일반적인 시청자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KBS가 감당해온 공익사업 자체가 위축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분리 징수를 하면 수신료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전은 그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효율성과 형평성 면에서 현재 한전에 위탁하는 징수 제도는 어느 나라 제도와 비교해도 매우 뛰어난 시스템으로 정착돼 있다고 본다. 그동안 법적으로 여러 다툼이 있었지만 법원은 일관되게 수신료 제도의 효율성 측면에서 현재의 위탁 징수 방식은 매우 적정하고 적법하다고 판단해오고 있다.”
-만약 실제로 분리 징수가 추진돼 당장 해야 한다면, 부족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있나.
“KBS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 수입은 45% 내외다. 상업적인 재원을 마련하려면 결국 일반미디어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아마도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지 않으면서 덜 상업적인 것들일 테고 KBS가 가진 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텐데 그 또한 제도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대통령실이 작성한 국민제안 설명글에 근거가 부족해서 아쉽다고 했는데, 사실 그 설명의 차이가 국민제안 결과나 공영방송 KBS에 대한 인식을 크게 좌우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나.
“국민제안의 설명 내용과 조사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중복 투표 가능성이 있고, 현재 찬반 수가 ‘명’으로 표현돼 있는데 과연 그게 맞는지, 과학적으로 표집된 여론조사가 아닌데 이 결과를 가지고 몇 퍼센트(%) 찬성‧반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까라는 개인적인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분기마다 외부 기관에 의뢰해 진행하는 KBS 신뢰도 조사에서 68%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KBS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분들도 분명히 있다. 어떤 한 가지만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겠다기 보다 전체적인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신료 이슈와 관련해 정치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미래 환경이 워낙 급변하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수신료 제도가 여전히 유효한지 등이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 정도가 수신료 폐지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있었고, 영국 정부도 수신료 제도의 적절성에 대해 검토를 진행한다고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영국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 동안 물가 인상률에 따라 수수료를 인상해가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2028년 이후에 수신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검토하고 고민하겠다는 거다. 공영방송의 나아갈 방향과 위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사회적인 합의나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는 공영방송 재원은 차질 없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영국의 현실이다. 조금 더 큰 틀에서 법적 논의와 제도적 논의를 하고 또 사회적인 합의점을 찾고 거기서 시대에 맞는 공영방송의 개선과 발전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에 중복 투표 가능성이나 여러 정보가 누락된 점 등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결과를 보면 많은 국민이 KBS에 대한 불신이나 불만이 누적됐다는 상황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수신료 문제를 설득하려면 꾸준히 지적돼온 방만경영 문제나 공정성 관련 지적들을 해소하는 구조조정이나 지배구조 개선 관련 KBS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국민제안 결과를) 굉장히 큰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걸 토대로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분야별로 검토해야 한다. 국내에서 KBS는 큰 회사처럼 보이지만 외국 공영방송사의 동료들은 저희를 굉장히 가성비가 좋은 공영방송이라고 이야기한다. 국가 간 공영방송 현황<바로 위 이미지>을 비교해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방만경영 문제는 국민들이 체감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저희가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공공 서비스들이 많아서 조금 더 방만하게 보이는 부분들도 있을 거다. 지배구조 관련해선 2000년대 초부터 여러 법안이 나왔는데 한 번도 고쳐진 바가 없다. KBS 스스로 어떤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다. 공정성 부분은 보도본부나 시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쪽에서 조금 더 나은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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