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한경)이 새 윤전기를 구매한다. 국내에서 가장 노후한 윤전기를 보유한 매체로서 안정적인 신문제작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대다수 언론사의 윤전설비가 사용 연한을 초과했지만 신문은 상당 기간 발행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대쇄 시장 공략도 염두에 둔 결정이다. 디지털로 쏠린 무게추, 신문부수 감소란 흐름 가운데 ‘신문의 수명은 윤전기의 수명’이란 현실적 조건에 대응한 언론사의 결정이 감행되며 이목이 쏠린다.
한경은 최근 사내보를 통해 “최신식 윤전시설을 새로 마련하는 수백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인천광역시 부평국가산업단지 내에 들어설 윤전공장 신축용 부지(부평구 청천동 424-10, 대지면적 3686㎡)는 이미 계약을 체결했다. 기존 공장 건물 2개동을 철거해 새로 짓고, 시간당 약 10만부(현 윤전기 시간당 4~5만부)를 찍는 신형 윤전기 2세트를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 도쿄기계제작소와 미쓰비시, 독일 고스 등 3개 회사에 대판용 기계 견적을 의뢰한 상태다. 한경은 “사옥 건설 이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2024년 8월에 마무리된다”면서 26개월 후 본격 가동될 예정이라 밝혔다.
신규 윤전시설 확보 이유는 “현재 설비가 너무 오래돼 안정적인 신문제작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국내 대다수 윤전기는 1990년대 초중반과 2000년대 초반에 설치돼 통상 ‘30년+a’로 거론되는 수명을 거의 다 한 상태다. 특히 한국경제 중림동 공장 미쓰비시 기계 1세트는 2007년 설치한 고스 기계와 결합해 구동 중이지만 본래 설치는 1986년 이뤄졌고, 나머지 1세트도 1997년 도입돼 노후화가 국내에서 가장 극심한 쪽이었다. 한경 관계자는 “윤전기 노후화에 대한 우려, 신형 윤전설비에 대한 필요성이 사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단 우리 신문을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찍는 것만으로도 최소 목표는 달성”이라며 “신문제작 불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한편 대쇄 시장에서 수익원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윤전기도 고령화...이 기계가 멈추는 날 신문은 어떻게 될까)
설비 도입은 대쇄 시장을 겨냥한 측면도 크다. 2019년 본보 조사에서 당시 한국신문협회 52개 회원사 중 서울·지역 일간지는 46개사였는데 윤전기를 보유한 곳은 22개사로, 상당수 주요 신문사가 타사에 신문인쇄를 맡기는 상황이었다. 종이신문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 고가의 윤전기를 선뜻 구매하긴 어렵지만 윤전기를 돌려야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할 때 선택지는 ‘대쇄’가 될 수밖에 없다. 한경은 사내보에 “온라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종이신문은 앞으로 상당 기간 발행될 수밖에 없다. 시간당 18만부를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신문을 대신 찍어줄 수 있는 대쇄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된다”면서 “윤전시설을 빌려 쓰려는 신문사들은 신형 설비에 대한 호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인쇄 품질 향상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실제 비교적 신형이거나 다수 윤전기를 보유한 신문사로 인쇄물량이 몰리는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2009년 전후 대당 250억원씩 총 6대 윤전기를 들인 중앙일보는 신문인쇄, 유통, 마케팅을 맡는 자회사 중앙일보 M&P를 통해 서울 강남, 경기 안산, 부산, 대구 공장 12세트 기계에서 일간지 36개, 주간지 68개, 대학보 47개 등 151개 매체 대쇄를 한다. 동아일보 자회사 동아프린테크는 서울 충정로, 경기 안산, 경남 밀양 등에 8세트 설비에서 15개 매체 외간을 담당한다.
디지털 전환이란 격변의 시기 가운데 윤전기 노후란 현실적 요인이 부상한 모양새다. 인쇄물에 광고나 협찬을 담는 대가로 유지돼 온 신문산업은 아직 디지털에서 대체 수익모델의 성공 사례를 찾지 못했다. 일단은 신문을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큰 비용지출을 각오한 신문사의 윤전기 도입 결정이 나왔다. 한경의 경우 지난해 국내 신문 중 가장 많은 23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주머니 사정이 특히 좋았던 매체였던 만큼 모든 신문사가 같은 결정을 하긴 쉽지 않다. 상당 인쇄물량을 수주하지만 자본잠식이 이어지고 지난해 중앙일보로부터 수백억원을 수혈 받은 중앙일보 M&P에서 나타나듯 신문업 자체의 침체는 분명하기도 하다. 다만 지금도 윤전기는 낡아가고 가까운 시일 내 신문부수, 발행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소지는 크다. 공통의 고민을 안은 신문사들로선 디지털 전환과 별개로 윤전기 대책에 대해 개별사 차원을 넘어선 깊은 논의가 필요해졌고 또 시급한 시점이라 하겠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