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는 ‘2022 세계기자대회’가 25일 개막했다. 올해 세계기자대회는 세계 45개국 기자 7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예년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영상 환영사에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불가피하게 3년째 온라인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며 “아쉽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나마 만나 각국의 상황과 고민을 공유하고 언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은 ‘언론의 팩트체크와 언론자율규제’를 주제로 첫 번째 콘퍼런스가 열리는 날이었다. 해외 각국 기자 30여명은 언론 불신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자성과 함께 허위조작정보 퇴출을 위한 시스템 운영 사례와 관련 정책을 공유했다. 안형준 MBC 기자는 “2018년, 한국에선 세계 최초로 팩트체킹 공모전이 시작됐고 2020년엔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가 ‘팩트체크넷’을 출범시켰다”며 “또 같은 해에 JTBC 뉴스룸이 국제 팩트체킹 네트워크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 JTBC 외에도 주요 종합일간지와 공중파 방송, 뉴스전문채널 등 약 30개 매체에서 팩트체크팀이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외 각국에서도 팩트체크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란 ‘ISNA’ 통신사의 알릴레자 바라미 편집장은 “이란의 가짜뉴스 유형 중 하나가 유명인사, 특히 질병 이력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것”이라며 “이런 뉴스는 대개 이란 설날 연휴 동안 확대돼 거의 2주 정도 지속된다. 이 때문에 내가 일하는 곳에선 유명인이나 주요 인물의 사망 소식이 접수되면 가족 구성원에게 확인하거나 장례 준비가 파악되지 않는 이상 뉴스를 게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몽골과 네팔에서도 두 개의 팩트체크 기관이 활동하고 있었다. ‘라이징 네팔’의 비시누 고탐 편집장은 “네팔에선 2015년에 처음으로 ‘South Asia Check’가 팩트체크를 시작했고, 두번째 기관인 ‘Nepal Fact Check’가 2019년 3월 편집자와 연구원 2명으로 출범했다”며 “두 기관 모두 언론에서 보고 들은 내용이 사실인지 팩트체크해 독자들에게 바로 알리고 있고, 네팔 팩트체크의 경우 설립 15개월만인 지난해 6월까지 700만건이 넘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개도국에선 이런 활동이 부족하고 거짓 뉴스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가나에선 팩트체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가나 ‘뉴타임스’의 말릭 술레마나 선임기자는 “가나에선 소수의 미디어 조직만이 뉴스 보도 전후에 팩트체크를 하고 있다”며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팩트체크가 중요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자원이 제공되는 반면 가나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의 상황은 이와 반대다.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의 단호함 때문에 팩트체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소셜미디어 통한 허위조작정보 만연해
게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은 팩트체크를 더욱 어려운 과제로 만들고 있다. 파키스탄 ‘신드 쿠리어’의 나시르 아이자즈 편집장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출현하기 전에는 신문과 언론이 ‘정보로의 관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기사는 발행 또는 방송되기 전에 철저히 검토됐다”며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이 모든 시스템을 파괴하면서 정보들이 아무 제약 없이 통과할 수 있는 ‘무방비 관문’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정보의 진위를 검증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언론인도 많은 경우 이러한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해 허위조작정보가 만연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더욱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다. 독일 ‘디 벨트’ EU 특파원인 토비아스 카이저 기자는 “전쟁 상황에서 소셜미디어는 언론사의 중요한 취재‧정보원이 된다”며 “기자와 카메라맨은 현장에 나가기 전 소셜미디어에서 최신 정보나 사진, 동영상을 찾고는 한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이 종종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흘리고 선전에 이용하기 때문에 언론인들은 소셜미디어 정보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포르투갈 ‘디아니로 데 노티시아’의 레오니디오 페레이라 부편집장도 “분쟁과 관련해 우리가 보도하는 대부분의 정보는 AP, AFP 및 로이터, 그리고 미국의 주요 신문을 통해 입수된 것들”이라며 “비교적 평판이 좋은 이들 매체에 의존하는 덕분에 허위 기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반면 이들 매체에서 여과장치가 오작동해 가짜가 진실로 둔갑하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포르투갈에선 전쟁 정보를 국제 통신사에 의존해 인쇄‧디지털 매체 모두 잘못된 소식을 전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우려했다.
이탈리아 ‘아스카 뉴스’의 안토니오 모스카텔로 기자는 “매일, 매시간 전쟁 지역의 수많은 정보원으로부터 유입되는 대량의 정보를 어떻게 팩트체크할 수 있느냐”며 “더욱이 전쟁 상황에서는 많은 국가에서 당국의 압력이 더 강해지고, 그것은 때때로 검열로 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뉴스와 검열 사이에는 제3의 방법이 있는데, 바로 언론인의 자율규제”라고 말했다.
실제 각국에선 허위조작정보를 명분으로 언론을 검열하고, 억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나시르 아이자즈 편집장은 “파키스탄의 경우 신문, 방송, 소셜미디어 등 모든 언론을 ‘파키스탄 언론규제기관’ 관할 하에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한 법률안이 마련됐다”며 “언론단체, 그리고 인권단체들은 이 법률이 가혹하고 위헌적이므로 철회할 것을 주장한다. 어떤 좋은 법률도 언론에 대한 대중의 만족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율규제를 통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도 “지난해 한국에선 언론의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입법중지된 상태”라며 “허위정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 위축의 위험성이 있다. 미디어에 대해 요구와 불만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언론을 법적으로 강제하면서 귀책성을 묻는 모델보다는 답책성을 기반으로 문제를 제기한 시민과 대화하고, 언론의 문제를 스스로 교정해나가도록 하는 자율규제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자율규제를 넘어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자는 주장도 나왔다. 카자흐스탄 ‘LLP’의 카나트 아우예스베이 정책관은 “가짜정보에 좀 더 체계적으로 대항하고,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언론인과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전문가 설명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팩트체크를 가르쳐야 한다. 진정으로 위협이 되는 가짜정보 및 가짜가 트롤과 섞이는 지점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시민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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