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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터지면 검증도 않고… 받아쓰기 급급한 '학폭 보도'

당사자 접촉도 없이 일방적 주장 그대로 실어… 선정적 제목 남발

강아영 기자2021.03.02 22:46:16

프로배구를 뜨겁게 달군 학교폭력의 파문이 체육계에 이어 연예계, 심지어 일반인들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금 아니면 털어놓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며 이전의 ‘미투 운동’처럼 학교폭력 폭로도 하나의 사회적 흐름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악의를 가진 허위 폭로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언론이 최소한의 검증 없이 기사를 받아쓰고 있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전에도 시시때때로 나왔으나 최근 잇따르는 학교폭력 폭로는 여자 프로배구 선수 이재영과 이다영 자매에서 시작됐다. 지난 8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과거 함께 운동했던 피해자가 자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크게 일었고, 이후 남자 프로배구 선수를 비롯해 야구, 농구, 축구에 이어 연예인, 일반인들에 대한 폭로가 제기되며 학교폭력은 근래 가장 민감하고 뜨거운 주제가 됐다. 특히 피해자들이 인터넷 게시판과 SNS 등을 통해 폭로한 글들을 언론이 받아쓰면서 일반 대중에게까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중의 관심이 큰 만큼 자연스레 보도 양은 폭발하고 있다. 기자협회보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진 지난달 8일부터 28일까지 3주간 ‘학교폭력’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21개 언론사에서 총 1773건의 보도가 쏟아졌다. 하루 평균 84건의 보도가 나온 셈이다.

 

다만 언론사마다 보도 양에는 큰 차이를 보였다. 학교폭력을 가장 많이 보도한 언론사는 YTN(182건)이었고 그 뒤를 매일경제신문(156건), 세계일보(152건), 한국경제신문(124건), 국민일보(119건), 머니투데이(114건), 서울신문(107건) 등이 이었는데, 이들 언론사는 같은 기간 학교폭력을 상대적으로 적게 보도한 파이낸셜뉴스(9건), 한겨레신문(21건), 경향신문(33건), SBS(33건) 등에 비해 적게는 3배, 많게는 20배 가까이 많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중엔 폭로가 늘어나고 있는 최근의 사회적 현상을 조명하고 학교폭력을 구조적으로 분석, 해법을 모색하려는 기사도 있었으나 피해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반박을 단순 전달한 기사들이 사실상 대부분이었다. 가해자의 사과, 징계, 법적 대응 역시 건건이 쪼개져 기사화 됐다.

 

검증 역시 부족했다. 3주간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실명이 제목에 언급된 사람만 24명에 달했지만 언론사가 피해자나 가해자를 직접 접촉해 사실관계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증이 없고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검증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축구선수 기성용 등 일부 체육계 인사를 제외하곤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조차 없는 기사가 상당수였다. 이 때문에 일방적인 허위 폭로가 기사로 나가거나, 가해자의 주장만 믿고 감싸는 보도 역시 심심찮게 나왔다. 일부 언론사는 <누구 말이 맞을까> <이번엔 OOO이다> 등 ‘아니면 말고’ 식 보도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폭로 수위가 점점 높아지며 선정적인 내용이 제목 등을 통해 여과 없이 독자들에 전달되기도 했다. 피해자의 폭로 글을 그대로 옮긴 기사에선 피해자가 당한 폭행과 욕설이 직접인용을 통해 제목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고환’ ‘유두’ ‘구강성교’ 등 자극적인 내용 역시 걸러지지 않고 제목에 노출됐다. 일부 언론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삭제 처리된 사실을 전하며, 당시 선수가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을 재조명하는 식으로 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인터넷 매체에서 문화·연예를 다루는 한 기자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피해자에게 한 욕설이나 신체적 괴롭힘이 언론사 입장에선 정보 값일 수 있다. 하지만 소속사 입장도 없고 확인도 안 된 상태라면 적어도 주장글로만 ‘이랬다더라’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건 옳지 않다”며 “피해자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 허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많은 독자들이 기사를 클릭하니 폭로 글이 하나만 나와도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당사자 간 주장이 배치되는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써야할지 고심하며 일단 보도를 자제하는 일부 언론사도 있다. 김창금 한겨레 스포츠팀 선임기자는 “확인된 사실이 아무것도 없는데 주장들이 매체에 옮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괴물이 되어버린다”며 “그 상황 자체가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기에 가급적 보도하는 데 있어 신중을 기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스포츠부 내부에서 이 주장들을 기사로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부터, 쓴다 하더라도 실명 보도를 해야 하는지 여러 고민들을 나누고 있다”며 “양쪽 주장이 대립하고 새로운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장들을 계속 쫓아가며 반복해서 보도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일종의 노이즈가 되는 건 아닌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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