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인들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 100일간 기록하다

[인터뷰] 장기기증 100일간의 취재
'히어로콘텐츠팀' 임우선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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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허락해준 유족과 그들을 가까이에서 담담히 지켜보고 좋은 기사로 만들어준 취재진 모두 감사합니다.” 2월1일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하 히어로팀)이 내놓은 두 번째 기획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의 첫 기사에는 위와 같은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자다 깬 새벽에 기사를 읽다 눈물범벅이다” “모처럼 기사다운 기사를 읽는다”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사였다”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2월 초 동아일보는 총 7화에 걸쳐 뇌사 장기기증인과 수혜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또 절절하게 담아낸 ‘환생’ 시리즈를 보도했다. 약 18명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히어로팀 2기가 100여일간의 취재와 제작 끝에 내놓은 보도물이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 2기는 지난해 10월부터 100일간 뇌사 장기기증인과 수혜자 문제를 집중 취재했다. 사진은 히어로팀 2기인 곽도영(왼쪽부터), 임우선, 김은지, 김동혁, 이윤태, 이샘물, 김성규 기자.                                      (임우선 기자 제공)

취재의 시작은 지난해 10월이었다. 히어로팀 1기가 해산한 직후 구성된 2기는 1기와 마찬가지로 무제한의 자유를 받아들었다. 어떤 주제로 기사를 쓸지, 얼마나 취재할지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보도 주제부터 골라야 했기에 팀장인 임우선 기자는 팀원들에게 딱 한 가지를 주문했다. “기자 생활에 몇 없을 흔치 않은 경험이고 소중한 기회이니 잘 써야 한다. 잘 쓴다는 건 무엇이냐.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는 것이다.” 연차별, 성별에 맞춰 고르게 짜인 만큼 팀원들은 3일간 자유 시간을 갖고 각자 다양한 주제를 탐색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회의에서 무엇을 쓰고 싶은지 의견을 교환했고, 그 결과 장기기증이란 주제가 도출됐다. 다른 기획 후보들과 함께 10여일간 기초 취재를 한 뒤엔 장기기증이 최종 주제로 선정됐다.

히어로팀이 장기기증을 주제로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장기이식법이 생긴 지 만 2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장기기증을 제대로 다룬 보도가 없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그 말이 못 믿겨 최근 5년 치 보도를 모두 찾아봤지만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히어로팀 같은 조직이 아니면 불가능한 보도였다. 장기기증 과정 전체를 취재하기 위해선 기증인 가족의 이별과 이식대기자 선정 과정, 이식수술 준비 과정, 수혜자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는데, 일반적인 팀이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돌발적인 상황을 모두 취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생'은 동아일보 '디 오리지널' 페이지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형식으로도 볼 수 있다.

임우선 기자는 “게다가 지금 코로나에 양극화에 아이들 학대하는 뉴스 등이 쏟아지며 과연 우리 사회가 살 만한 세상인가, 따뜻함이란 게 있나 사람들이 지치고 부정적인 관념을 더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한 의지를 갖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언론이, 우리가 그걸 균형 있게 비추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때만이라도 주목받지 못한, 선한 의지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자. 그 중에서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짜 힘든 상황에서도 나누는 사람들,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는 이들을 이야기해보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취재 초기부터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누구보다 장기기증을 알리고 싶어 하는 관계기관 직원들마저 취재가 안 될 거라고 걱정했다. 장기기증 발생 자체가 드문 데다 설령 기증이 이뤄지더라도 유족들이 언론 취재에 전면 동의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이유였다. 히어로팀의 의지는 그래도 확고했다. 임 기자는 팀원들에게 ‘살아보니 안 될 일도 진심을 다하면 희한하게 되더라.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전문가 인터뷰하며 최선을 다해 기획을 탄탄하게 만들어보자’고 주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도 주제를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한 이틀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장기기증 전 과정 취재에 동의한 기증인이 나타났다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임 기자는 정신없이 그룹톡을 눌러 팀원들을 소환했고, 계획했던 대로 동시 취재를 지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다. 장기기증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도 우리 의지였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다”고 임 기자는 말했다.

 

동아일보는 2월초 총 7화에 걸쳐 '환생' 시리즈를 지면으로 선보였다. 사진은 지난달 2일 보도된 지면 캡처.

사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심지어 히어로팀이 움직이던 때는 코로나19 3차 유행이 본격화한 때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고 병원 진입도 점점 어려워져 나중엔 일반병실에 들어가는 것마저 금지됐다. 코로나19 검사까지 받으며 취재 열의를 불태웠지만 하루 종일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다 발걸음을 되돌린 적도 있었다.

가슴을 치는 사연들에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취재하면서 울고 기사를 쓰면서 또 울고 그걸 고치면서 한 번 더 우는 나날이었다. 취재하는 도중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머리에 막 물이 차오르는 느낌도 들었다”고 임 기자는 말했다. 길가에서 눈물을 쏟으면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참는데, 그래서 머리에 반쯤 물이 출렁출렁 대며 걸어 다녔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모든 회차, 한 명 한 명은 전부 각별하다. 보도에는 여러 이유로 크고 작게 나갔지만 기증인은 그 가족들에게 각각 우주고 전부일 것이기에 팀원들도 똑같은 가치로 중요하게 대했다고 말했다.

석 달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기사에 독자들은 크게 호응했다. 기증자들의 사연에 함께 울고, 한편으로 자신의 기증 사례를 나누는 댓글이 네이버에서만 2000여개 달렸다. 기사에 소개된 주인공들도 큰 위로를 받았다는 마음을 팀원들에게 전해왔다. 임 기자는 “사실 장기기증 캠페인을 위해 쓴 기사가 아닌데, 결론적으로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오해를 없앤 것 같아 보람차다”며 “KODA에서 한 얘기론 기증을 결정하는 그 짧은 순간 ‘누가 기증했다’ 그런 기사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가 기증을 결정한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우리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당장 기증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 몇 십 년 뒤에라도 세상을 떠날 때 우리 기사가 떠올랐으면, 많이 읽히는 것보다 그렇게 오래 숨 쉬는, 깊이 전달되는 기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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