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언론의 윤리성·책무성 강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언론단체들이 저널리즘 실천 규범을 담은 언론윤리헌장(가칭·이하 헌장) 초안을 마련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지난 9월 언론윤리헌장 제정위원회(이하 제정위)를 출범했다. 현직 언론인 7명, 각 단체 소속 인사 3명, 언론학 교수 2명, 변호사 1명 등 총 13명이 참여한 제정위는 3개월여의 논의 끝에 이달 헌장 초안을 내놨다.
서문과 9가지 핵심 원칙으로 구성된 윤리헌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책임을 강조한다. 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현업단체, 각 언론사가 자체 제정한 기존 윤리강령이 언론의 자유를 가장 중시했던 것과 달리 이번 헌장은 진실, 투명성, 책무, 인권 존중 등 그간 소홀했던 가치를 부각했다. 헌장의 실행 주체를 ‘기자’, ‘우리는’, ‘언론사’ 등이 아닌 ‘윤리적 언론’으로 내세운 점도 눈에 띈다. 현업단체 소속 언론사 기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언론 행위를 하는 모든 이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취지다.
헌장 초안의 첫 번째 원칙은 ‘윤리적 언론은 진실을 추구한다’이다. 위원회는 세부 내용으로 “사실이 폄하되고 믿고 싶은 바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진실 추구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면서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한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고 의도와 기술방식이 진실을 가리지 않도록 양심에 따라 보도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투명한 보도와 책임 있는 설명’이다. 보도에 대한 의문과 비판에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잘못이 있다면 신속하고 분명하게 바로 잡자는 것이다. 뒤이어 ‘인권을 존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원칙은 취재 대상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합법적으로 획득한 정보라도 윤리적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한다.
뒤따르는 원칙의 주요 내용은 △공정하게 보도(특정한 가치와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는 사실과 견해만을 선택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독립적으로 보도(독자와 시청자의 의견과 비판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보도에 반영하되 건전한 비판 보도를 막으려는 의도적이고 집단적인 공격에 위축되지 않는다) △다양성 존중과 차별 반대 △디지털 기술로 저널리즘의 가능성 확장(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취재는 익명성을 악용한 허위정보와 여론 조작 위험 등을 감안해 더욱 신중하게 사실 검증) 등이다.
기자협회 추천으로 제정위 활동에 참여한 홍진수 경향신문 기자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헌장을 통해 언론계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언론인들이 실제 현장에서 매뉴얼로 삼을 수 있는 공통 기준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제정위원장을 맡은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언론계가 규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배 교수는 “언론을 수행하는 언론사, 언론인의 범위가 예전보다 넓어지면서 이들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원칙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헌장의 주어를 ‘윤리적 언론’으로 표현한 것도 저널리즘을 실천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어 배 교수는 “매체 종류와 규모를 떠나 수많은 언론행위자가 이 원칙들을 접하고 적용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언론계를 변화하는 자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정위는 외부 의견을 수렴해 헌장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주관·후원으로 오는 1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언론재단 미디어교육원 2층 가온 강의실에서 공청회가 열린다. 헌장 제정을 추진한 배경과 경과, 초안 설명에 이어 토론이 진행된다.
토론자로 박록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서울신문), 이종학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종엽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대변인(프라임경제 대표), 김춘식 전 한국언론학회장(한국외대 교수),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한다.
이날 자리에는 거리두기 3단계 수준의 방역 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최소 인원만 참석하며, 발표·토론은 현장과 화상 형식을 병행한다. 제정위는 공청회 의견을 반영해 연내 최종안을 확정한 뒤 내년 1월 중 헌장을 공식 선포할 예정이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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