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도입의 전제조건

['언론보도 징벌적 손배제를 말한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 ⑤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2020.06.09. 정청래 의원 대표발의)에서 제시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문제되고 있다. 개정안 제30조의2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법원은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제30조 제1항에 따른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2항에 따른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법무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상법개정안에서는 여러 법률에 흩어져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상법에서 포괄적으로 규정해서 (언론사를 포함한) 기업 전체에 대해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에 앞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그것이 서구의 선진국들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제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마치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가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선진국들이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제도는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실제 발생한 손해 이상으로 몇 배를 더 배상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징벌적 손해배상이 널리 인정될 경우에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일부러 손해의 발생을 유도한 이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엄청난 액수의 배상을 청구하려는 도덕적 해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에 대한 찬반이 계속되었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특허법’, ‘공익신고자보호법’ 등 일부 법률에서는 실제로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렇게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일부 법률에서 이를 수용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손해배상액을 확인된 최소한에 대해서만 인정하는 법원의 소극적인 판단 때문이다. 실제 발생한 손해조차도 입증하기 힘들어 제대로 배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부담이 줄어들어 유사한 불법이 재발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문제제기 때문이다.


그러면 서구의 대다수 선진국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동안의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일부 법률에서만 제한적으로 도입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에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려 때문에 그동안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법률에서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그 손해액을 정확하게 입증하기 어려워 제대로 된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에 대해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그 액수도 10배 이상까지도 인정되는 미국과 달리 3배 정도까지만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할 경우 언론피해의 구제에는 확실하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언론매체들이 보도에 더 신중해질 것이며, 이를 통한 언론보도의 공정성이 제고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 효과로는 언론사의 이미지에 대한 심대한 타격과 더불어 언론자유의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 징벌적 손해배상을 노린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다는 점, 명예훼손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인정되는 상태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인정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 된다는 점, 법원이 손해배상액수를 판단하는 기준이 없어 어떤 판사가 사건을 담당하는지에 따라서 손해배상액 산정에 심각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우려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의 개정안에서는 ‘악의적인 인격권의 침해’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 제2항은 “제1항에서 “악의적”이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문제다. 이를 엄격하게 해석할 경우, 적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완화된 해석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적용이 문제될 수 있다.


결국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되면 현실적으로 ‘악의적인 보도’에 해당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에 부정적 효과를 억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서 기업활동에 의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괄적으로 도입하자는 것은 도덕적 해이로 인한 각종 분쟁을 양산할 우려가 클 뿐만 아니라, 특히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은 자칫 정부의 언론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매우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정당한 것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충실하게 갖춰져야 한다. 첫째, 언론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인정되어야 하며, 도덕적 해이에 대한 충분한 방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형법에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법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결정의 구체적 근거가 될 수 있는-예컨대 양형기준표와 유사한-상세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욱 바람직한 것은 언론사들이 언론피해의 예방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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