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 1200일 동안 검증… "작지만 변화 준 것 같아 보람 느껴"

[인터뷰] '국회의원 예산 오·남용 취재'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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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한 주제를 끈질기게 취재하는 일은 중장기 취재를 담당하는 탐사보도팀이라 해도 쉽지 않다. 끈기와 치열함, 조직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 그 일을 해낸 기자와 팀이 있다. 박중석<사진> 뉴스타파 기자는 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국회 예산을 낭비했거나 빼돌린 국회의원들, 일명 ‘국회 세금도둑’을 파헤쳤다. 무려 1200일 동안이다. 이 기간 뉴스타파에서만 20여명의 인원이 기획에 투입됐다. 박중석 기자는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3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면서 “다만 처음부터 어려운 싸움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동안 국회와 관련해 알려진 정보가 없었고 특히 예산과 관련해선 공개된 바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취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촛불 집회로 인한 정권 교체였다. 당시 우리 사회가 켜켜이 묵혀놓았던 적폐 청산이 사회적 화두가 됐고, 뉴스타파 안에선 논의 끝에 1948년 제헌 의회 이후 한 번도 제대로 감시를 받은 적이 없는 국회를 파헤쳐보자는 결론을 냈다. 그 중에서도 예산 문제는 국회라는 조직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효과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였다. 국회 1년 예산 6000억원, 그 가운데 국회의원이 쓰는 돈 480억원, 그 안에서도 입법 및 정책개발비 40억원을 세세히 파헤치고자 했다.    


‘국회개혁 프로젝트’로 명명할 만큼 큰 작업인 데다 예산 및 정보공개청구 전문가들이 필요했기에 박 기자는 처음부터 시민단체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17년 5월경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첫 모임을 가졌고, 정보공개청구를 시작으로 본격 취재에 돌입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국회가 의정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박 기자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각 항목별 내역과 지출증빙서류, 또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등을 받기 위해 총 4번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며 “국회가 1심에서 지고도 항소하는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승소해 자료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료를 받은 이후에도 난관은 남아 있었다. 모두 종이 문서로 되어 있어 일일이 자료를 스캔하고 복사하는 작업만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 반출도 안 돼, 정책연구 보고서의 경우 10여명의 인력이 일주일간 국회 내 지정된 장소에 가서 1115건, 총 5만 쪽 분량의 문서를 복사해야 했다. 이후엔 밤을 새워가며 해당 자료들을 검증했다.


그 결과 3년간 100여편의 기사가 탄생했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71명, 약 4명 중 1명이 보고서를 표절하고 예산을 빼돌리는 등 혈세를 낭비했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들이었다. 취재 초반만 하더라도 “콧대 높았던” 국회의원들 중 일부는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나오자 잘못을 인정하고 관련 예산을 반납했다. 박 기자는 “지금까지 31명의 국회의원이 2억1000만원을 반납했다”며 “가시적으로 표절에 주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국회 사무처에서 지난해부터 정책보고서와 그 결과물들을 공개하고 있는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와의 협업도 많은 것을 남겼다. 박 기자는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인터뷰 정도로 그쳤던 게 아니라 처음부터 국회 개혁이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모여 시민단체들과 함께 고민하고 작업했던 기억이 가장 크게 남는다. 취재 및 보도에 그치지 않고, 보도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하고 1인 시위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사실 MBC, YTN과 기꺼이 협업한 것도 더 큰 스피커를 통해 개혁 의제를 널리 알리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뉴스타파의 좌우명처럼 세상에 아주 작지만 변화를 준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박 기자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고 했다. 개별 국회의원들은 정보공개청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의원실에서 만드는 수많은 자료들은 기록물관리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렇기에 의정 활동의 평가 대상이 될 수많은 문서들이 쉽게 폐기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직도 세비를 반납하지 않고 있는 국회의원 40명에 대한 아쉬움, 또 타 부처 예산만 감시하지 말고 국회 먼저 모범을 보여 스스로 투명하게 예산 내역을 공개하는 자세를 보였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박 기자의 취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1대 국회의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현재 또 다른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박 기자는 “다른 영역도 중요하기에 지금까지처럼 집중적으로 보도할 순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국회를 감시할 것”이라며 “정기적으로 자료를 수집해,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사이트를 구축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관련한 출판 작업 역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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