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경영 분리 '2017년 SBS 10·13 합의'… 결국 공수표였나

TY홀딩스 승인조건 '성실협의' 이견… 노조 "대주주, 직접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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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지난 7일부터 매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빌딩 앞에서 집회를 연다. 이들의 요구는 대주주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과의 대면 협의다. 노조는 윤 회장이 대주주로서 SBS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만나 묻겠다고 했다. 사측은 윤 회장이 SBS에 공식 직함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대면 요구를 거절한 상태다. 노조는 윤 회장과 단독 협의가 성사될 때까지 집회를 이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위원장 윤창현·가운데)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대주주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과의 단독 협의를 촉구했다. SBS본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SBS에 대한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사측에 내건 '경영 계획 수립 시 SBS 종사자 대표와 성실 협의' 조항을 지키려면 이행각서 서명 당사자인 윤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지난 7일부터 '끝장 집회'를 벌이고 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제공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위원장 윤창현·가운데)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대주주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과의 단독 협의를 촉구했다. SBS본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SBS에 대한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사측에 내건 '경영 계획 수립 시 SBS 종사자 대표와 성실 협의' 조항을 지키려면 이행각서 서명 당사자인 윤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지난 7일부터 '끝장 집회'를 벌이고 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제공


대주주와 노조 간 대면 협의 문제는 지난 1일 SBS의 새 지주회사인 TY홀딩스가 공식 출범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는 SBS의 최다액출자자를 기존 SBS미디어홀딩스에서 신설회사인 TY홀딩스로 변경하는 것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방통위는 △태영건설(SBS 지배주주) 최대주주가 제출한 ‘이행각서’ 성실히 이행 △최대주주의 SBS 경영 불개입 등 방송의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 준수 △SBS 자회사, SBS미디어홀딩스 자회사 개편 등 경영 계획 마련 △경영 계획 수립 시 SBS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 등을 승인조건으로 부가하고 이행과정과 결과를 6개월 이내에 제출하라고 했다.


TY홀딩스 출범 이후 노사는 ‘성실 협의’ 주체를 두고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노조는 ‘이행각서에 서명한 윤 회장이 SBS 종사자 대표인 노조위원장과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측은 ‘회사 경영 문제는 대주주가 아닌 TY홀딩스, SBS미디어홀딩스, SBS 등 각 사 대표가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TY홀딩스 관계자는 “방통위가 신설회사 설립과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승인한 주체는 TY홀딩스이지 대주주 개인이 아니다”라며 “승인조건에 따라 자회사 개편안 등 경영 계획 마련을 위해 실무진인 각 사 대표들과 노조가 협의해야 하는 것이다. 대주주와의 단독 협의는 그동안 노조가 강조해온 소유·경영 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가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앞에서 대주주인 윤석민 회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SBS본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SBS에 대한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사측에 내건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 조항을 지키려면 노조와 윤 회장이 직접 만나 협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가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앞에서 대주주인 윤석민 회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SBS본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SBS에 대한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사측에 내건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 조항을 지키려면 노조와 윤 회장이 직접 만나 협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측 주장에 대해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지난 7일 집회에서 “윤 회장은 소유·경영 분리로 SBS에 개입하지 않는다더니 SBS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추석 전 방통위 고위 관계자를 만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노조가 ‘3년 전 대주주가 약속했던 소유·경영 분리 원칙이 파기됐다’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다.


노조가 대주주와 대면 협의를 강하게 요구하는 배경엔 대주주를 향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서 2017년 9월 당시 윤세영 SBS 회장과 그의 아들인 윤석민 SBS 부회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다음 달 노사와 대주주는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사장 등 각 부문 최고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실시에 합의하는 등 이른바 ‘10·13 합의’를 타결하며 상호 신뢰의 첫 단추를 끼었다. 지난해 2월엔 10·13 합의안에 담겼던 ‘수익구조 정상화’ 문제도 노사가 함께 해결했다. 노사는 ‘정상화 합의’ 세부 협약서에서 “본 협약 체결 이후 SBS 노사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SBS의 콘텐츠 유통 및 사업 수익과 관련한 일체의 논란과 갈등을 종결한다”고 못 박았다.


정상화 합의 체결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SBS 노조와 사측·대주주는 신뢰가 아닌 불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윤석민 태영건설 부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하면서부터다. 윤 회장은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측근을 경영진에 포함하거나 방송부문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강조해왔던 이사의 보직을 박탈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노조는 “태영건설의 방송 장악 신호탄”으로 규정했다. 이후 지난 1년여간 이들 관계엔 불신만 쌓여갔다. 그 사이 ‘SBS 매각설’이 돌기도 했고, 가파른 미디어 환경 변화로 방송산업이 휘청거리면서 구성원들의 위기감도 커졌다.


윤창현 SBS본부장은 “3년 전 10·13합의 이후 SBS 내부에선 우리 정말 달라지나보다, 이제 잘해볼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윤 회장은 합의의 바탕이 된 소유·경영 분리 원칙과 독립경영에 대한 신뢰를 모두 허물어버렸다”며 “노사 관계가 악화하면서 조직문화가 무너졌다. 체념과 무관심이 팽배하고, 구성원들은 입을 닫은 채 아무도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윤 본부장은 “조직 혁신은 말로 되는 게 아니라 이해의 대척점에 있는 노사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가능하다”며 “윤 회장과의 협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조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은 리더십이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를 묻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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