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일 서울 정동 미디어교육원에서 ‘코로나19, 미디어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집담회를 개최했다. 제한적인 오프라인 모임과 웹세미나를 병행한 이번 자리에선 코로나19에 따른 미디어 이용 습관변화가 신문, 방송, 영화, 게임, 소셜미디어 등 국내‧외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고 영향을 미칠지 논의됐다.
발표를 맡은 손재권 더밀크 대표(전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 특파원)는 코로나19가 단순한 전염병이 아닌 ‘세기적 사건’임을 언급하며 여러 미디어산업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감지된 변화 조짐을 제시했다. 우선 손 대표는 코로나19 발발이 신뢰를 잃었던 뉴스 브랜드와 언론인에 뜻밖의 반전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들었다. “코로나19의 급속 확산에 따라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은 빠른 정보 보다 믿을만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신뢰받는 정보 출처로서의 ‘브랜드 뉴스 미디어’가 컴백”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3월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 ‘코로나19 뉴스에 몰입한 미국인들’에서 미국인들은 자국 언론보도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응답자 70%는 매체가 ‘매우(30%)’ 또는 ‘다소 잘(40%)’ 수행했다고 평가했고, 미국 성인 62%는 자신이 사용한 여러 소스에서 동일한 사실을 봤다고 평가하며 ‘뉴스 소스’에 믿음을 보였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브랜드 미디어에 대해선 평가가 훨씬 좋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해외미디어동향 여름호 '펜데믹, 미디어의 본질을 묻고 근간을 흔들다' 중 일부.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취득한 경로와 신뢰도를 물은 질문에 대한 답.
이 같은 브랜드 뉴스 신뢰도 상승은 우리나라에서도 확인됐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신뢰할만한 소스로서 ‘브랜드뉴스 조직’을 꼽은 비중에서 한국은 77% 비중으로 미국(54%)과 영국(59%), 독일(47%), 스페인(74%), 아르헨티나(74%) 등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실제 뉴스 미디어 중 일부는 이 같은 여건을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1분기 58만7000명 신규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웹사이트 순방문자(UV)는 2억4000만명, 페이지뷰(PV)는 25억 뷰에 달했다. 지상파 방송 NBC의 간판 뉴스 ‘나이틀리 뉴스’는 코로나19가 급속 확산된 3월 둘째주 평균 1200만명의 시청자를 모아 지난 2000년 이후 20년만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CBS 이브닝 뉴스는 시청률이 21%p 증가하기도 했다.
손 대표는 “미디어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구글에 종속되며 트래픽의 종착점이 돼왔는데 반등이 됐다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반등할 수 있는 계기는 됐다고 본다”면서 “특히 뉴욕타임스처럼 비즈니스를 잘 한 경우는 자기 사이트에 찾아온 독자에게 기존 페이월 가격을 낮춰 새 독자를 구독자로 유도했다. 구독모델을 갖고 있던 회사엔 계기가 된 반면 버즈피드 같은 광고 기반 매체는 구조조정 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언론재단은 지난 1일 코로나19가 미디어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을 논의하는 집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웹세미나를 병행한 이번 자리에서 손재권 더밀크대표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코로나19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완전한 주류로 자리매김시키는 변화도 만들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OTT 서비스 소비시간이 증가되며 미국에선 3월 1~3주 스트리밍시청 시간이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85% 증가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2020년 1분기 가입자를 1600만명 가량 늘려 전체 가입자수가 1억8300만명에 달하게 됐고, 디즈니플러스는 지난 12월 이후 2800만명 가입자가 순증했다. 특히 디즈니플러스는 코로나19로 영화개봉, 캐릭터 상품판매, 디즈니랜드 운영 등 사이클이 깨지며 “(거의) 망했을 것”이란 피해까지 예상했지만 가입자를 크게 모으며 이를 벌충했다.
반면 코로나19는 유료방송에 대한 코드커팅(cord cutting) 현상을 가속화했다. 특히 프로야구(MLB), 프로농구(NBA), 골프, 격투기(UFC) 등 스포츠 경기 중단이 미친 파장이 컸다. 실시간 중계되는 스포츠가 유료방송 플랫폼이 OTT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영역이었는데 스포츠가 2개월째 중단되며 이용자가 돈을 내고 유료방송을 시청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2019년 1분기, AT&T, 차터(Charter), 컴캐스트(Comcast), 디시네트워크(Dish network), 버라이즌(Verizon) 등 유료방송 사업자 총 가입자는 7650만명이었지만, AT&T는 2020년 1분기 300만명 가입자를 잃었고, 버라이즌은 전체 가입자가 400만명 수준으로 추락했다. 케이블TV 1위 사업자 컴캐스트는 1분기에 41만명을 잃었다.
손 대표는 “‘숏폼 비디어’인 퀴비는 넷플릭스의 라이벌이 될 것이라며 론칭했지만 5월 기준 150만 가입자에 머물며 성공적인 론칭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하철 등 이동 중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미디어인데,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 일이 생기며 코로나 유탄을 맞게 됐다”며 “미국 최대 극장 체인인 AMC는 아예 다시 극장에 가는 게 가능할까란 의문 속에 존재론적 위기를 맞은 상태”라고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해외미디어동향 여름호 '펜데믹, 미디어의 본질을 묻고 근간을 흔들다' 중 일부. 코로나19 발발 후 미국 주요방송사의 가입자수 변화.
이어진 토론에서 패널들은 코로나19가 미디어산업에 미친 영향을 두고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의견은 다양했지만 코로나가 기존 미디어산업 영역에서 진행되던 현상을 가속화시켰다는 평은 공통적이었다. 손 대표는 “코로나19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바뀐 이용자의 습관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예측이 있다”며 “앞으로 겪을 일은 2019년에 예상한 2028년, 2030년의 모습일 수 있다. 예상했던 미래가 빨라지는 결과”라고 했다.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는 코로나 펜데믹이 미국에서도 저널리즘 전체의 질을 하락시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위기를 겪는 미디어기업의 자리를 테크기업이 채울 것이라 분석했다. 박 디렉터는 “브랜드 뉴스 컴백은 확실히 이뤄진 거 같지만 뉴욕타임스가 너무나 큰 성공을 해 나머지 뉴스 산업 전체는 별 영향을 못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단순히 비즈니스 성공의 집중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저널리즘의 질적구현 역시 일부 매체에 편중될 수 있다는 지적에 가깝다. 그동안 과학이나 질병 관련 보도 시 검증할 시간이 있었다면 펜데믹 하에선 전염병 뉴스나 새로운 백신 소식 등에 대한 요구가 급박하게 나오고 이에 따라 검증할 수 있는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속보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트럼프 정부에선 허위정보들이 정부 등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상황이라 확인이 어려운 환경도 외부에 존재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 디렉터는 “AMC 같은 경우 파산신청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계속 나오는데, 만일 파산한다면 이를 가져갈 회사론 아마존이나 애플이 거론된다. 넷플릭스의 후발 주자이면서 주머니가 깊은 테크 기업들이 스트리밍으로 뛰어들며 픽업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임정수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코로나19 관련 논의가 “무엇이 바뀌는가라는 부분에 더해 바뀌지 않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임 교수는 “목격하고 있는 현상보다 더 강하고 장기적으로 진행시켜 나가는 건 사람들의 욕구라 본다. 교류하고 소통하고 싶은 그런 부분들”이라며 미래에 나타날 현상에 대한 과대해석에 우려를 드러냈다. 추후 미디어심리학, 사회심리학 등을 통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한 지점이다.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은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언론은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이 본격화하는 증거를 목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전염병 상황이란 게 100% 확실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정파성과 신뢰성의 문제에서 우리 언론이 충실하지 못하다고 본다. 맥빠지는 얘기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신의성실 원칙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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