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정정보도 요구하며 경향신문 기자 월급 가압류

법조계 "보복성 성격 있다"
KT&G 측 "최소한의 방어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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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자사에 비판적 기사를 쓴 경향신문 기자 등에 정정보도 및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기자의 급여 절반을 가압류했다. 언론 보도가 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기자 급여까지 가압류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는 점, 또 애초 신문사와 편집국장도 함께 소를 걸었지만 기자에게만 2억원의 가압류를 신청한 점 등을 두고 취재활동 위축을 염두에 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KT&G는 지난 2월28일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와 안호기 편집국장, 경향신문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총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강 기자가 지난 2월26일 보도한 <KT&G ‘신약 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 기사의 내용이 허위이며,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도 기사를 작성·게재해 KT&G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KT&G는 같은 날 강 기자의 급여 가압류도 함께 신청했다.


경향신문이 지난 2월26일 보도한 KT&G 관련 기사.

▲경향신문이 지난 2월26일 보도한 KT&G 관련 기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5부는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선 본격적인 재판 시작에 앞서 조정으로 풀라며 4월21일 조정회부 결정을 내렸다. 다만 KT&G의 급여 가압류 신청과 관련해선 서울중앙지법 59-2단독 재판부가 4월13일 “경향신문사로부터 매월 수령하는 급료 및 상여금 중 제세공과금을 뺀 잔액의 1/2씩을 2억원에 이를 때까지 가압류한다”고 결정했다. 


지난 8일에야 이 사실을 인지한 경향신문 측은 언론 압박의 일환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사건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진성의 남성욱 변호사는 “채무 변제 능력만을 놓고 보면 당연히 기자 개인보다 회사가 더 우위에 있을 것”이라며 “회사가 아닌 개인에게 급여 가압류를 걸었다는 것은 전략적 봉쇄소송, ‘재갈 물리기’의 일환”이라고 했다.


강진구 기자도 “초반부터 총체적 압박 작전을 쓴 것 같다. 통상적으로 기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면 언론중재위에 가고 거기서 조정이 불성립하면 소송으로 가게 되는데 KT&G의 경우엔 언론중재위 제소와 소송 청구를 동시에 했다”며 “제가 대략 40여건의 민·형사 소송을 경험했는데 KT&G 같은 큰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는 자체도 이례적이고 심지어 급여 가압류까지 건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는 회사가 손배를 건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금전을 취득하려는 목적보다 언론을 압박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들도 급여 가압류에 보복성 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언론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기자 급여에까지 가압류를 거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현금 공탁까지 하면서 가압류를 따로 걸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의도적인 것”이라며 “기업이 노조원들 상대로 급여를 가압류하듯 보복성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돈을 받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 고통을 줄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언론위원장을 역임했던 이강혁 변호사도 “회사와 편집국장을 제외하고 기자 개인에게만 급여 가압류를 걸었다는 건 기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일종의 위하효과라고 해서 해당 기자만이 아니라 여러 동료 선·후배 기자들에게 심리적 위축을 주기 위함”이라며 “게다가 KT&G는 동네 구멍가게 수준도 아니고 대기업 아닌가. 문재인 정권 들어 주요 국정 가치 중 하나가 언론 자유의 보장인데 과연 KT&G가 그 정신을 반영해 이번 조치를 취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반면 KT&G 측은 이번 조치가 불공정 보도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권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KT&G 측은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된 것에 대해 저희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나 언론 보도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회사는 지난해 14차례에 걸친 강 기자의 일방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법적 조치 없이 인내하면서 수십 차례 직접 기자를 만나 취재내용에 대해 최선을 다해 소명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강 기자는 금년 2월26일에도 영진약품과 관련해 일방적인 보도를 했다. 회사는 더 이상 명예와 신용이 실추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보도 건에 대해 외부 로펌의 자문을 받아 본 결과 언론피해구제의 대상이 된다는 법률검토 의견을 받았다”며 “이에 언론피해구제 관련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로 민사 본안소송을 제기하고 보전조치로서 가압류를 신청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가압류 신청에 대해 이유가 있다고 판단해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번 조치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사료된다”고 전했다. 


한편 강 기자는 법원의 가압류 결정에 이의나 취소신청을 제기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강 기자는 “좀 더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가압류 결정 자체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보다 일차적으로 조정에서 제 기사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며 “가압류 조치를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통해 기자에 대한 가압류 결정이 얼마나 부당한지 알려나가면서 다시는 이런 식의 저급한 방식으로 기자를 길들이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계기를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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