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사람과 사회 바꿔가는 모습, 흥미로웠죠"

[기자 그 후] (20) 허승 왓챠 매니저 (전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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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가 있다. 동료끼리 영어 이름을 부르는 문화다. 지난 16일, 스타트업 ‘왓챠’(WATCHA)의 허승 매니저가 건네준 명함에도 어김없이 ‘Lucas’(루카스)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이름을 택한 이유를 묻자 허 매니저가 웃으며 답했다.


“지난해 미국 사회보장국이 공개한 인기 이름 순위에서 골랐어요. 철자에 th 또는 r이 들어가서 혀를 굴러야 하거나 한국어 표기와 영어 발음이 헷갈리는 것, 사내 겹치는 이름을 빼니 루카스가 남더라고요. 사실 별 거 아니지만, 이런 자료를 찾는 데도 기자 경험이 도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2012년 한겨레에 입사해 기자로 일한 그는 2019년 1월 퇴사, 그해 6월부터 왓챠에서 근무하고 있다. 왓챠는 영화 평가·추천 플랫폼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를 운영하는 국내 스타트업이다.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불린다. 왓챠 서비스 이용자들이 남긴 영화 별점 누적 개수는 5억4000만건에 달한다. 네이버 영화(1300만건)의 4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그는 왓챠에서 홍보, 대관 업무 등을 담당하는 PA(Public Affairs) 매니저로 일한다.


지난해 초 언론사를 나올 때만 해도 그는 홍보일을 하고 싶기는커녕 하게 된다는 예상조차 못 했다. 그저 멋있어 보여 뛰어든 기자일을 7년간 해오며 ‘언젠가 그만둬야지’라는 마음이 커졌고, 그걸 실행에 옮긴 것뿐이다.


허승 왓챠 PA(Public Affairs) 매니저(맨 오른쪽)가 서울 강남구 왓챠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승 왓챠 PA(Public Affairs) 매니저(맨 오른쪽)가 서울 강남구 왓챠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행선지 없이 퇴사한 후 몇 달간은 쉬고 놀고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왓챠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길로 합류했다. 평소 IT에 관심이 많아 막연히 이 분야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해온 덕분이다.


허 매니저는 “새 기술과 서비스가 사람들의 생활양식, 사회구조를 바꿔 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다”며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른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였다”고 했다.


그는 기대했던 대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역할부터 새로 만들어갔다. 왓챠에서 PA 매니저란 직책은 그의 입사와 함께 신설됐기 때문이다. 기자들을 상대하고 공공기관에서 온 연락을 받거나 정책적인 자문을 구하는 일 등이 그의 몫이다. 현재 두 번째 PA 매니저를 채용 중이다. 허 매니저는 “대기업 홍보팀 자리였다면 아무리 급해도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스타트업이다 보니 저만의 방식대로 뭔가 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고, 그걸 조금씩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사회생활의 전부였던 그에게 스타트업 분위기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선배, 부장’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영 어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료들과의 관계, 업무상 커뮤니케이션에 호칭이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걸 느꼈다. 수평적인 호칭이 주는 긍정 효과를 체감한 것이다.


“이제 영어 이름 부르기는 익숙해졌어요.(웃음) 흔히 생각하는 스타트업 문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의사소통과 업무 실행이 빠르다는 거예요. 양면성이 있는 부분인데, 왓챠의 경우 좋은 면을 북돋우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스타트업 특성상 개인기가 부각되긴 하지만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기자에서 PA로 직무 자체를 바꿔 입사한 저도 이 문화 속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에 발 담근 지 8개월. “거창한 계획 없이 지금 하는 일 열심히 하는 게 목표”라는 허 매니저는 언론계를 바라보며 뒤늦게 깨달은 게 있다고 언급했다. ‘누구에게나 질문할 수 있고 답변을 받아낼 수 있는 권한은 기자만이 누릴 수 있다.’ 그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었다.


“기자가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답해주는 분들이 많잖아요. 답변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 데도요. 민주사회의 한 축을 언론이 담당한다면, 언론의 제 기능을 위해 알게 모르게 국민들이 협조해주고 있다는 걸 새삼 느껴요. 기자일 땐 잘 몰랐거든요. 20대 어린 나이에 기자가 돼 짧지 않은 시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어요. 기자였던 날들은 앞으로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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